3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24.80포인트(0.61%) 오른 4,105.95로, 원/달러 환율은 6.7원 내린 1,425.0원 시작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한국 주식시장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기대,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코리아 리밸류(가치 재평가)’ 전망이 겹치면서 증시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2025년 10월 30일 오전 코스피지수는 4,100선까지 돌파했다.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5000 시대’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JP모건은 “코스피 5000 달성이 12개월 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이 제시한 낙관적 전망의 핵심 근거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한국 주식의 PER(주가수익비율) 13.2배, PBR(주가순자산비율) 1.34배는 여전히 아시아 평균(각각 16.1배, 2.15배)보다 낮다”며 “정책적 리밸류, 즉 정부 주도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정책 확대가 본격화하면 시장 전체가 재평가받을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정부는 ‘코리아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의 자본효율성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발표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JP모건은 “이 같은 디스카운트 해소 이슈가 현 주가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며 “한국 증시의 구조적 리레이팅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또 하나의 동력은 AI 반도체 중심의 글로벌 공급 불균형이다.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2023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왔고, 2025년 들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증설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출하량이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JP모건은 “메모리 공급이 여전히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이 불균형이 최소 2026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반도체는 물론, 2차전지, 조선, 방산, 금융, 지주사 등으로 순환매가 확산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시장 관계자는 “그동안 반도체 중심의 편중된 장세가 이제는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특히 금융과 조선, 방산은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과 맞물리면서 구조적 강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 상승세의 또 다른 배경에는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이 있다. 2024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확산되면서 신흥국 중에서도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갖춘 한국 시장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25년 들어서만 40조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했으며, 특히 반도체와 금융, 지주사 종목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는 더 이상 단기 트레이딩 시장이 아니라 장기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코스피의 시가총액이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 중”이라고 분석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이번 상승장의 주역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동학개미운동’으로 시장에 진입한 개인들은 한때 급락장을 견디며 장기 보유를 이어왔고, 최근 들어 AI와 반도체 중심의 상승장 속에서 수익을 실현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이 단기 매매에서 벗어나 점차 장기 투자로 전환하고 있다”며 “국내 ETF, 리츠(REITs), 인덱스 펀드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장의 유동성이 더욱 안정적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거품론도 제기된다. 일부 기술주와 AI 관련주들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또한 미중 갈등, 중동 정세 불안, 원화 강세 등 외부 리스크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가 상승 속도가 기업 실적 개선 속도를 앞서고 있다”며 “금융완화와 과잉 유동성이 결합할 경우 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경우 외국인 자금이 다시 유출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과거 단기 급등 후 급락을 반복하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 이번에는 기업 실적 개선과 구조개혁이라는 ‘실체 있는 상승’이라는 평가가 많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김정훈 교수는 “한국 증시는 그동안 저평가의 늪에 있었지만, 기업들이 자본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며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시장으로 도약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스피 5000 돌파 이후에도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세 가지 과제를 꼽는다. 첫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실질적 이행. 둘째, 반도체 외 산업의 체질 강화. 셋째, 가계소득 증가와 내수 활성화다. 금융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외국인 자금에 의존한 랠리를 넘어, 국내 소비와 산업 경쟁력이 균형을 이루는 내생적 성장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JP모건의 낙관론은 단순한 투자 보고서를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지고, 대신 ‘코리아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평가가 자리 잡는다면 코스피 5000은 단순한 목표치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 시대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한국 주식시장 상승에 확실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예상보다 큰 훈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APEC 회담이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한국 경제의 신뢰도와 시장 체질을 동시에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이번 회담은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진행된 ‘다층 외교전’으로, 각국의 경제 협력 강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났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회담에서 조선업·방산 등 전략산업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이 시장 심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조선주와 방산주는 발표 직후 나란히 급등했고, 금융·지주사·철강 업종까지 순환매가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외교가 주가를 움직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뚜렷하다. 회담 직전까지만 해도 관망세를 보이던 외국인들은, 한미 간 안보 패키지 강화와 한중 경제 채널 복원 소식 이후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섰다. 특히 반도체와 에너지, 친환경 인프라 관련주 중심으로 유입이 늘면서 10월 들어서만 12조원이 넘는 외국인 순매수가 집계됐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일제히 한국 증시에 대한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경제 허브로 복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이번 회담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균형 잡힌 외교 노선’을 보여주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첨단산업 협력, 중국과의 교역 채널 복원은 양국으로부터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을 ‘위험 지역’이 아닌 ‘전략적 중간지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국가 신용등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수 경기 회복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APEC 회의 기간 중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한국 내 추가 투자를 발표했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산업 지원책을 잇따라 내놨다. 특히 반도체, 수소, 조선,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부총리 추경호는 “이번 APEC 회의가 한국 경제의 글로벌 신뢰를 높이는 전환점이 됐다”며 “기업과 투자자의 기대심리가 금융시장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상승장이 단기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 증권사 수석연구원은 “APEC 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외교·안보·산업의 삼각축에서 안정적 위치를 확보했다”며 “이는 단기적 유동성 장세가 아니라 구조적 리레이팅(가치 재평가)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회담 이후 반도체, 방산, 조선, 금융주 중심의 상승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 또한 장기 보유 비중을 늘리고 있다.

악수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연합뉴스


결국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외교와 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부의 안정적 외교 행보가 국가 신뢰도를 높이고, 그 신뢰가 자본시장으로 직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외교 이벤트가 일시적 상승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기업 실적과 산업정책, 국제협력이 맞물린 ‘지속 가능한 상승’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한국 증시는 지금, 외교력을 성장 동력으로 바꾸는 새로운 실험의 한가운데 서 있다. 국내외 증시 전문가들은 세계 정상들이 경주에서 보여준 협력의 메시지가 단순한 의례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투자와 산업의 실질적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면 코스피 5000 시대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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