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온라인 사기범죄./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이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 "앞으로 국제범죄조직이 한국인을 건들고 범죄 행위에 끌어들이면 패가망신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 "범죄 집단이 한국에 얼씬도 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캄보디아 등지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상 범죄와 관련해 한국정부의 대응이 반짝 하고 마는 식의 대응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어어 향후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23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민생침해 초국가범죄 근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단호한 어조로 "국제 범죄조직이 한국인을 건드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최근 캄보디아 범죄단지를 둘러싼 사건들이 외교 문제로 번지고, 국제적 비난까지 불러일으키자 정부가 국가적 대응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는 외교부, 법무부, 국가정보원, 경찰청, 금융위원회 등 주요 부처가 참석했다. 외교부는 현지 대사관을 중심으로 피해자 보호 전담팀을 강화하고, 범죄인 인도 협약 체결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해외에서 검거된 한국인 피의자뿐 아니라, 국내에서 조직의 자금세탁을 돕는 공범까지 신속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인터폴과의 공조를 통해 현지 조직의 이동 경로와 통신망을 추적 중이며, 금융위원회는 범죄에 활용되는 대포통장 거래를 전면 차단하기 위한 전산망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가정보원은 특히 “중국계 범죄조직이 캄보디아 단속을 피해 미얀마와 라오스, 필리핀 등으로 거점을 옮기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고했다. 범죄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고, 단속 강도가 세진 지역을 피해 옆 나라로 이동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얀마 북부 샨주(州) 지역에는 새로운 범죄거점이 형성되고 있다. 이곳은 통신망이 열악하고, 군벌 세력의 영향력이 커 외부 단속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현지인조차 접근을 꺼리는 이 지역에서 한국어로 된 온라인 사기 사이트가 개설되고, 국내 SNS 광고를 통해 피해자를 끌어모으는 정황이 다수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대한민국의 안전이 국경 밖에서 침식당하고 있는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더 이상 해외에서 약자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며, “국제 범죄조직의 먹잇감이 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범죄 수익 추적과 환수 조치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대응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통령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본부’에 대해 예산과 인력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이번 대응은 단순한 법 집행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치안 주권’을 국제 범죄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초국가범죄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며, 사이버 네트워크와 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을 매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찰청 외사과의 한 간부는 “지금의 범죄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 상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캄보디아 단속이 성공하더라도, 서버 한 대가 다른 나라로 옮겨지는 순간 새로운 범죄가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24일 시사의창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 문제를 오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서도 공식 의제로 제기할 예정이다. 그는 아세안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스캠 범죄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며, “다국적 정보공유 체계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공동협력 네트워크”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현재는 캄보디아 정부와 양자 협의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세안 전역의 공조가 필요하다”며 “범죄조직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법과 제도는 아직 각국에 묶여 있다. 이 격차를 좁히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단기적 단속을 넘어, 해외에서 자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외교 치안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법학자 김은정 교수(서울대)는 “국가가 국경 밖에서도 자국민 보호 의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앞으로의 외교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며 “한국은 이제 단순한 피해국이 아니라, 국제범죄 대응의 주도국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현지 교민 사회에서는 여전히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프놈펜에서 연락이 닿은 한 교민은 “단속 소식이 들리면 조직원들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며칠 뒤 다른 도시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며 “정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분위기가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현지 사람들은 여전히 무섭다”고 말했다.

한국인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의 발표를 지켜보며 안도와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최근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탈출한 한 피해자는 “그곳에선 돈이 아니라 생명이 거래됐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한편,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의 의미는 단순한 ‘정상 외교’ 이상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을 통해 ▲정부의 아세안 중시 정책 재확인 ▲아세안-한중일 간 다층적 협력 견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아세안의 지지 확보라는 세 가지 전략 목표를 제시했다. 위성락 실장은 “아세안을 매개로 한중일 3국 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순방에서 특히 주목받는 대목은 ‘캄보디아 문제’다. 훈 마네트 총리와의 회담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조율되어 왔지만, 최근 대학생 고문 사망 사건과 한국인 대상 스캠 피해가 잇따르며 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양자 협의의 주요 의제로 다루되, 동시에 다자적 공동대응 체계를 논의할 계획”이라며 “스캠 범죄는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범죄이기 때문에 다자 협력이 아니면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아세안 순방은 결과적으로 ‘범죄·경제·안보’를 모두 포괄하는 외교무대가 될 전망이다. 캄보디아 범죄 대응은 민생안전을 위한 실질 외교의 시험대이고, 한-아세안 협력은 한국 외교의 신흥시장 전략을 가늠할 잣대이며, 아세안+3 회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시험하는 무대가 된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한 외교 일정 소화가 아니라, 한국이 ‘지역 질서의 책임 있는 행위자’로 자리 잡는 것”이라며 “캄보디아 사건 대응과 아세안 공조는 곧 한국 외교의 신뢰도를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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