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16일 수요일 오전 김영관 용복회(용인대 복싱 동문회) 회장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 하였다. 1967년 충남 태안 출신의 김영관은 지난 3월 10대 회장직을 맡으면서 김왕순 사무총장 김학영 수석부회장과 삼각편대를 형성 용인대 복싱 발전을 위한 결속(結束)을 다지고 있는 인물이다. 삼국지에서도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었듯이 뜻이 같이하는 인물 3명의 뭉치면 팀과 조직발전에 촉매제(觸媒劑)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국시리즈를 한화가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99년도에 정민철 구대성 송진우등 3명의 특급 투수가 있었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가 10.26 거사(擧事)를 일으킬 때도 우덕순 조동하 유동하라는 3명의 동지(同志)들이 있었다.
김영관 회장을 축으로 움직이는 김왕순 김학영 트로이카는 200명에 달하는 용복회 회원들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면서 용복회 단합에 핵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거행된 2026 아시아 경기대회 2차 선발전 U22 국가대표 선발전 청양에서 벌어질 때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회원들과 대동단결 용인대학이 2개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할때 크게 일조하였다. 용복회 수장 김영관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마치 6.25 사변 때 낙동강 다부동 전투의 백선엽 장군처럼 선봉에서 진격하는 리더의 표본(標本)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김영관 회장을 만나면 필자가 우스게 소리로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 인천시장 안상수와 더불어 충남 태안의 3대 인물이라 부르곤 한다.
모교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김영관 회장
이날 체육관을 찾은 김 회장의 방문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송파구에서 프로 복서 출신으로 강력계 형사를 거쳐 가요계에 대뷔 '져주면서 살자구요', '행복의 탑' 등 여러곡을 부른 복서 출신 가수 장 필 선배와 만남이 예약되어 있어 함께 동행 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필자는 쾌히 승낙(承諾) 노래교실이 있는 문정동 사무실에 도착 그곳에서 노래교실을 운영하는 장필을 만났다. 1958년 경북 의성 출신의 장필은 선친이 유명한 소리꾼으로 지역에서 명성을 날린 분이다. 마치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자 서편제의 대가 박동실의 외손자로 33세에 요절한 <하얀 나비>를 부른 김정호처럼 그도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았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유단자 장필은 고교 시절 자연스럽게 복싱에 매진 메달을 획득하면서 1979년 용인대 격투기 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
그때 그시절 함께 운동한 동료 복서들을 기억하느냐란 질문에 그는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정한. 킹스컵 국가대표 호계천. 인천체대 재학시절 기록적인 3관왕 (학생선수권 대통령배 전국체전)을 달성하고 용인대에 편입한 조종득 3명의 복서를 꼽았다. 대학 재학시절 대학선수권 전국체전에 출전한 그는 34전 26승(8KO) 6패의 전적을 뒤로하고 1980년 4월 용인대학 복서 출신으로 최초로 전격 프로에 전향 이를 도화선(導火線)으로 용인대 출신 황정한(동양 챔피언)과 서북수가 차례로 프로에 전향하였다. 장필(천호체 최장현 관장)은 묵직한 파워와 민첩한 보디 웍 헤드 웍으로 9차례(7승2패) 경기에 출전하였다. 당시 천호 체육관에서 장필의 스파링 파트너가 훗날 동양 페더급 챔피언에 오르는 황재용이었다.
장 필은 필자에게 황재용의 근황을 물었다. 작년에 세상을 떴다고 말하자 그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묵상(默想)하듯 고개를 한동안 숙였다. 1963년 경북 청송태생의 황재용은 1986년 1월 동양 챔피언에 올라 5차 방어에 성공한 왼손잡이 복서였다. 장필은 대학 졸업 후 미련을 버리고 복싱을 접고 1983년 군에 입대한다. 36개월 군 복무를 마친 1987년 장필은 경찰 시험에 합격 강남지역 일대에서 강력계 형사로 본격적으로 근무한다. 그는 형사로 변신하자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종합격투기로 무장한 장필은 일대 조폭들을 수차례 일망타진(一網打盡)하면서 <신사동의 밤안개>라는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이런 괄목(刮目)할 업적으로 장필은 경찰청장 표창장 포함 38회에 걸쳐 각종 표창장을 받았다.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황금 시절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2019년 32년의 형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한 장필은 강원도 홍천에 밭을 구입해 농막 생활을 시작하면서 도라지와 더덕 농장을 일궜다. 파종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자 2020년 운명처럼 가천대 평생대학원 노래지도자 과정에 등록하고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다. 2021년 어느날 우연히 안산에 있는 편곡가 윤남근이 운영하는 녹음실로 놀러 갔다가 운명처럼 노래 한번 불러보라는 요청에 장필은 영탁이 부른 <막걸리 한잔>을 불렀다. 이를 전환점으로 그해 8월 '져주면서 살자고요' (장필 작사 유영한 작곡)란 곡을 전격 발표 가요계에 대뷔하였다. 이 노래를 작사한 배경에는 복싱과 형사 생활하면서 오로지 업적에만 집착하면서 살아온 지난날 삶의 여정에서 이제는 극한 대립을 피하고 한발씩 물러나 갈등(葛藤)을 해소하자는 깊은 뜻이 함축 되어있다. 그의 노래는 복서 국가대표 출신으로 먼저 가요계에 먼저 대뷔 한 김지원 박인규 등 선배 가수에 비견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가창력이 뛰어났다. 노래교실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될 때가 언제냐는 필자의 질문에 경로당 요양원 복지관 등을 돌며 무료 공연(無料公演)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그는 밝혔다. 고희(古稀) 문턱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업무에 매진하는 장필 원장의 건승을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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