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전국 5,000여 개 스크린골프장이 불륜 커플들의 은밀한 만남 장소로 악용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래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골프를 즐기는 건전한 여가시설로 출발했던 스크린골프장이 밀폐된 공간 구조와 허술한 관리 체계로 인해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골프 치는 소리만은 아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김모(23)씨는 충격적인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음료를 갖다주러 들어갔는데 민망해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 50대로 보이는 남녀가 골프는 안 치고 서서 부비적거리고 있었다"며 "방 청소할 때 이상한 냄새가 나서 그날로 그만뒀다"고 증언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골프 관련 게시판에는 이와 유사한 목격담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빠 따라 스크린골프장 가면 불륜 현장 개많이 본다", "벽이 가벽이라 옆방 소리가 다 들리는데 골프 치는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다"는 등의 글들이 공공연하게 공유되고 있다.
무인화 바람에 관리 감독은 '사각지대'
문제는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무인 운영 시스템이다. 인건비 상승과 구인난으로 전국 스크린골프장의 상당수가 무인 또는 반무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키오스크로 예약부터 결제, 입장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24시간 운영이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관리자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겼다.
실제로 무인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한 달 인건비 1,500~2,000만 원 절감", "24시간 무인 운영으로 월 매출 80% 증가" 등을 내세우며 점주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 스크린골프 업계 관계자는 "무인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매장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귀띔했다.
밀폐된 개별 룸, 술·담배까지… 유흥업소 방불케
스크린골프장의 구조적 특성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대부분의 스크린골프장은 2~4명이 이용할 수 있는 개별 룸 형태로, 창문 하나 없는 완전 밀폐 공간이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는 술과 담배가 허용되며, 일부 매장에서는 도우미까지 부를 수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스크린골프장 이용자의 40.1%가 '매장 청결 상태 미흡'과 '실내 공기 오염'에 불만을 제기했다. 2013년 MBC 보도에서는 일부 스크린골프장의 미세먼지 농도가 황사 특보 수준인 것으로 측정되기도 했다.
"10시간 연락 안 돼도 의심 안 해"
골프 전문가들은 골프가 불륜 스포츠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로 '시간'을 꼽는다. 필드 골프의 경우 왕복 이동과 라운드, 식사 시간을 합치면 최소 10시간이 소요된다. 스크린골프 역시 "연습한다"는 핑계로 장시간 연락을 끊어도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골프 동호회를 통해 만난 남녀가 불륜 관계로 발전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법률 상담 사이트에는 "스크린골프장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했다", "CCTV 영상을 확보하고 싶다"는 상담 글이 적지 않다.
2인 라운드 늘면서 '커플 이용' 급증
최근에는 4인이 아닌 2인 라운드가 가능한 매장이 늘어나면서 커플 단위 이용이 크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4명이 함께 라운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2명만으로도 예약이 가능해 은밀한 만남이 더욱 용이해진 것이다.
골프장 캐디와 업계 관계자들은 "정상적인 부부와 불륜 커플은 금방 구분된다"고 입을 모은다. 부부의 경우 골프 실수에 대해 서로 지적하거나 핀잔을 주는 반면, 불륜 커플은 신혼부부처럼 과도하게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 "시설 본래 취지 회복해야"
체육시설 전문가 A씨는 "스크린골프장은 '가상체험 체육시설업'으로 분류되는 건전한 스포츠 시설"이라며 "밀폐 공간 구조와 무인 운영이 결합되면서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소한의 관리 인력 배치 의무화, 정기적인 위생 점검 강화, CCTV 설치 확대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소수 일탈 사례… 대다수는 건전"
스크린골프 업계는 "일부 일탈 사례가 과대 포장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 5,500여 개 매장에서 연간 9,000만 회 이상의 라운드가 이루어지는데, 대다수는 건전한 여가 활동"이라며 "소수의 일탈 사례로 전체 업계가 매도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스크린골프장=불륜"이라는 등식이 굳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누리꾼은 "스크린골프 배운다는 배우자를 선뜻 보내기 어렵게 됐다"며 "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적 규제는 '손 놓은' 상태
현행 체육시설법상 스크린골프장은 단순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하다. 일반음식점이나 유흥주점과 달리 별도의 허가나 엄격한 관리 감독 없이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국 스크린골프장은 2020년 3,510개소에서 2022년 5,583개소로 3년 새 약 60% 급증했다. 골프 인구가 늘어나면서 건전한 스포츠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일부 시설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때다.
[취재후기]
이번 취재를 통해 만난 전·현직 스크린골프장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업주는 "장사가 되니까 모른 척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업계 전체가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전한 스포츠 문화의 확산과 여가 시설의 발전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시설 본연의 목적이 훼손되고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면, 이는 업계와 당국, 그리고 이용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