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방문 중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영국 시위대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5년 10월호=김문교 시사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내린 조치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신뢰를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우파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죽음을 두고 일부 외국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보인 조롱과 비난을 문제 삼아, 이들을 추방 절차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행동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법적 처벌, 나아가 추방이라는 극단적 제재로 이어지는 순간, 미국이 자랑해온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지금 미국은 도덕적 비난과 법적 제재의 선을 구분하지 못한 채, 권력의 칼날로 표현의 자유를 무참히 찢어버리고 있다.
죽음을 빌미로 한 정치 보복
타인의 죽음을 기뻐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는 인간의 도리에도 맞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같은 혐오스러운 언행마저 보호하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다. 자유는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이나 옳다고 여겨지는 주장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역겹기까지 한 발언도 자유의 울타리 안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건을 추모의 자리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정치적 보복의 무대로 만들었다. ‘표현’을 추방의 명분으로 삼은 순간, 미국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다. 찰리 커크라는 개인의 죽음은 슬픔의 이유가 될 수는 있으나, 타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조치는 추모가 아니라 권력의 보복이며, 정의가 아니라 복수에 불과하다.
자유 대신 권력의 광기
트럼프식 정치의 특징은 이미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내 편에게는 관대하고, 남의 편에게는 잔혹할 만큼 가혹하다. 이번 사건은 그 전형적인 모습을 다시금 보여준다. 찰리 커크는 생전에도 극단적인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애국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그를 조롱한 사람들을 국가 권력을 동원해 추방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권위주의 체제의 방식에 가깝다.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의 나라’라는 이름을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작 자국 내에서는 자유를 권력의 필요에 따라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정치적 무기로 소비하고 있다. 권력자가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곧 범죄로 낙인찍히는 순간, 미국은 더 이상 자유의 나라가 아니라 권력의 광기에 지배당하는 땅으로 변질된다.
무너져 가는 미국의 얼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국인 추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미국이 어디까지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조차 권력이 원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 민주주의의 본보기였던 미국은 지금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채 권위주의와 광기로 내달리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내세워 다른 나라의 인권 문제를 비판할 자격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생겨난다.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가치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외국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은 외국인이지만, 내일은 반대 진영의 미국 시민에게도 같은 방식의 탄압이 가해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칼날은 특정 집단만 겨냥하는 법이 없다. 일단 칼이 휘둘러지면, 그 다음 피해자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이제는 단호히 경고해야 한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미화된 ‘애국심 쇼’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자기 성찰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불편한 목소리를 견딜 때에만 비로소 지켜진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미국 사회는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언론, 시민사회, 그리고 국제사회가 단호히 경고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주는 폭주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협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권력의 보복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의 이름으로, 불편한 말조차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의 본보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름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해지고, ‘자유의 나라’라는 명성은 돌이킬 수 없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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