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시사의창 2025년 10월호=김세전 전략사업부 대표] K팝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풍경이 되었다
무대 위의 가수들이 노래하고 춤출 때, 전 세계의 군중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른다. 한국어의 발음은 낯설고 어렵지만, 그들은 발음을 흉내 내고 자막을 벗어나 원어의 소리를 좇는다.
한국 드라마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자막 시스템에 실려 전 세계로 흘러갔다. 어느새 해외의 청소년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 강의실에는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었다. 한글은 이제 교과서 속 문자가 아니라, 문화의 리듬에 실려 세계 곳곳의 입술 위에서 불린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문자로 알려져 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논리적이다. 하지만 문자의 구조적 우수성만으로 오늘의 세계적 확산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글은 한때 디지털 세계의 문턱 앞에서 서성였다.

고립된 문자를 벗어나다
1980~90년대 초반, 컴퓨터 화면에는 ‘한글 깨짐’이 흔한 풍경이었다. 운영체제마다, 프로그램마다 한글은 다르게 구현되었고, 호환되지 않는 문서들은 읽히지 않았다. 글자는 있었으나, 세계의 언어로 편입되지 못한 문자는 고립된 섬과 같았다.
그섬을 벗어나게 한것이 무명의 연구자들이었다. 1987년 완성형 코드, 1990년대 확장 완성형, 1996년 유니코드 2.0에 현대 한글 11,172자를 반영하기까지 지난한 논쟁과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중요한 점은 한글이 독자적인 유니코드 블록을 가진 완전 독립 문자라는 사실이다. 중국어와 일본어가 공통의 CJK 한자 영역에 의존하고, 일본어는 히라가나•가타카나를 별도로 묶어야 하는 반면, 한글은 온전히 하나의 체계로 유니코드 안에 자리 잡았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완결된 문자 체계라는 평가가 여기서 비롯된다.
세종대왕이 문자 자체를 창제했다면, 이 무명의 연구자들은 그 문자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남게 했다. 문화는 언어를 싣고, 언어는 문자 위에 놓인다. K-컬처의 파도는 한글이라는 디지털 코드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했다.

한글유니코드


디지털세계인이 쓸 수 있는 한글
오늘날 한류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한글이 있다. 한글은 국가의 정체성을 넘어 이제는 세계인의 문자로 자리 잡고 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기원의 사건이었고, 디지털 시대의 유니코드 반영은 완성의 사건이었다. 이름 없는 연구자들은 그 사이에서 다리를 놓았다. 그들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성취는 전 세계의 화면과 목소리 속에서 증명되고 있다.
한글은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언어와 문화는 바뀌지만, 한글은 그 모든 변화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우리는 한류의 찬란함을 말할 때, 그 바탕에 놓인 한글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살아남게 한 연구자들의 집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바로 시사의창이 선정한 10월의 K히어로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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