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전방위적인 관세 공세에 한국 주력 수출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15% 상호관세가 부과되면서 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업종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요구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부담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요구한 거액의 투자는 한시적으로 관세율 인하를 이끌어냈지만, 외환보유액의 85%에 달하는 규모라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제2의 IMF 위기’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형국이다. 한편 국내에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논의와 부동산 시장 반등 조짐이 맞물리며 경기 회복 기대가 나오지만, 대외 수출 부진과 투자 부담이라는 이중 충격 속에서 한국 경제는 시험대에 올랐다.

2025년 4월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새 관세 정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상호관세’ 도입을 골자로 한 이 조치는 9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관세 부과로 이어졌다. ©엽합뉴스


[시사의창 2025년 10월호=김세전 전략사업부 대표] 트럼프발 관세 공세: 상호관세 15%, 수출 산업 직격탄
2025년 8월 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조치가 전격 발효되면서 한국의 대미 수출 현장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상호관세란 미국이 상대국의 관세만큼 보복 관세를 매기는 개념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다. 당초 모든 국가에 일률 25% 관세를 예고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여지를 내비치며 각국과 개별 담판에 나섰고, 그 결과 디테일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한국·일본·EU 등에 15%의 차등 관세율을 적용하기로 최종 확정했다. 이는 해당 국가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얻어낸 양보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15% 관세라 해도 충격은 막대하다. 그간 FTA로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던 한국산 자동차, 가전, 전자 부품 등이 갑작스런 관세 장벽에 직면하면서 미국 시장 수출 채산성 악화는 불가피해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계는 미국 판매 차량의 상당 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해왔는데, 이번 조치로 차량당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즉각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현대차는 미국 현지 공장 증설과 전기차 생산라인 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철강 등 일부 품목은 이미 트럼프 1기 때부터 관세(25%) 또는 쿼터 제한을 받아왔으나, 이번 협상에서 한국산 철강·자동차에 부과되던 관세도 15%로 조정되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놓고 한국과 경합하는 일본, 유럽 기업들 역시 15% 관세가 적용돼 형평성은 맞췄지만, 한국으로선 대미 수출 여건 악화가 뼈아프다.
수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반도체, 전기전자 업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의약품 등 전략 품목에 추가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만약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생산한 메모리•디스플레이 등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비용이 증가하여 가격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게다가 미국이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도 무역협상 중이고, 인도에는 5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전방위적인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연결된 한국 수출 기업들은 다층적인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이러한 대외 충격으로 한국의 수출 지표는 한때 급격히 냉각됐다. 실제 2024년 한 해 한국 총수출은 전년 대비 6.7% 감소하며 역성장했고, 2025년 상반기까지도 반도체 경기 침체와 중국 경기 둔화로 수출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다만 2025년 중반 들어 반도체 수출이 저점을 찍고 반등하면서 8월에는 수출이 전년 대비 소폭 증가세(1.3%↑)로 돌아섰다는 집계도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발 관세 장벽이 본격화된 하반기에는 주요 품목별로 수출 차질이 다시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상호관세로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과 수익성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향후 수출 감소→무역수지 악화→경제성장 둔화의 악순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관세 충격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대응도 분주하다. 관세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각국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 현대차, SK 등이 앞다투어 미국 현지 공장 투자 계획을 확대하거나 앞당기면서, 투자 재원의 해외 유출과 국내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후 글로벌 제조업 흐름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선 제조업 일자리 유치라는 목적에 부합하지만, 한국 등 제조강국 입장에선 산업 기반 약화와 고용 정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보호무역 공세는 단순한 무역 마찰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수로 부상했다.

2025년 7월 30일, 한미 무역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뒤 국내 언론들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조건부 관세 인하 합의를 긴급 타전했다. ©연합뉴스


3,500억 달러 ‘투자 딜’의 압박: 협상과 딜레마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형 관세 폭탄을 잠시나마 피해간 것은 한국 정부의 거액 투자 제안이었다. 상호관세 발효 시한을 이틀 앞둔 지난 7월 말, 한국은 미국산 에너지 1,000억 달러 구매와 함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당초 25%로 예고됐던 대미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사실상 돈으로 관세를 낮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한국, 일본, EU 등 동맹들의 대미 투자를 “미국이 갚지 않아도 될 선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국부 유출 논란을 감수한 울며 겨자먹기 딜이었다.
협상 막전막후에는 진통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반에 한국을 향해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라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고, 이에 이재명 정부는 일본, EU 등과 공조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초기 10% 기본관세만 부과한 채 발효를 두 차례 유예하면서 협상을 끌고 갔고, 영국, 일본, EU 등 68개국과 차례로 양자 무역합의를 체결해나갔다. 한국은 협상 막판까지도 미국과 이견 노출을 보였고, 결국 마감 직전 거액 투자 카드를 꺼내들어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 지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투자 대부분이 대출·보증 형태”라며 국부 유출 우려를 진화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집행 방식을 둘러싸고 한미 간 줄다리기는 이어지고 있다.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 이는 한화 약 460조 원에 달하는 돈으로, 2023년 말 기준 한국 외환보유액(4,180억 달러)의 85%에 해당한다.
물론 실제 투자 집행은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일시에 조달해야 할 유동성 압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장성민 전 의원 등 야권 인사들은 “외환보유액 파악도 못 한 채 이런 합의를 했다면 국가경제를 이끌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정부를 직격했다.
실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한 경제원로는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 없이 3,500억 달러 현금을 미국에 보낼 경우 즉각 외환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국내 다양한 매체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면 한국이 IMF 때와 같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가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중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간 투자 합의의 구체적 구조에 이견이 있어 최종 서명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즉, 투자 방식과 조달 주체를 둘러싸고 한국은 ‘대출·보증’ 형태를, 미국은 ‘현금 투입’을 원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이다.
만약 한국이 투자 약속 이행을 거부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25% 혹은 그 이상의 관세폭탄을 투하할 위험이 있고, 약속을 이행하면 외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되는 ‘이중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딜레마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미국에 통화스와프 체결 등 안전판을 요구하며 협상 고삐를 죄고 있다. 한 협상 소식통은 “미국이 한국과의 통화스와프를 거부하면 한국의 외환위기 위험은 심각해질 것”이라며 한미 통화 협력이 투자 이행의 전제조건임을 시사했다.
국내 여론도 이번 ‘투자 딜’에 극명히 갈려 있다. 수출 업계와 경제관료들은 “수출 관세 10%포인트를 낮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실리를 강조하는 반면, 시민사회와 야권에선 “국민 세금으로 미국에 조공 바친 격”이라며 분노를 표출한다. 언론에서도 “사실상의 강탈이나 다름없다”, “속국형 경제협상”이라는 신랄한 비판이 나왔다.
투자 규모도 문제지만, 투자 대상과 형태 역시 쟁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장,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등 민간 대기업 투자분과 미국 국채 매입, 인프라 펀드 출자 같은 공공부문 투자분을 조합해 3,500억 달러를 맞출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측은 ‘현금 투자’를 강조하며 한국 공기업이나 연기금 등이 직접 투자자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은 현재 교착 상태에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혈맹으로서 최소한의 합리적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며 조속 타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결국 향후 몇 달 내 투자 이행 조건과 범위를 둘러싼 한미 간 재협상이 한국 경제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기준금리 인하와 부동산 반등: 내수의 한 줄기 희망
대외 여건이 급랭하자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내수 부양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2023년부터 2024년 초까지 3.50%로 고정돼 있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5년에 접어들며 완화 기조로 선회했다. 2025년 2월 25일 3.00%에서 2.75%로 첫 인하가 단행되었고, 이어 5월 29일엔 2.50%까지 인하되었다.
불과 반년 만에 1.0%p 가까이 내린 것이다. 한국은행이 이처럼 선제적으로 움직인 배경에는 물가 안정과 경기 둔화가 있다. 2024년 중반까지 3% 안팎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5년 들어 2% 수준으로 안정되면서 긴축 명분이 약해졌고, 같은 기간 GDP 성장률이 1%대 초반으로 주저앉는 등 경기 부진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제조업 생산과 고용 지표가 예상치를 밑돌자 한국은행은 “실물경기와 조화를 고려한 금리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금리 인하는 꽁꽁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022~2023년 급락세를 겪은 뒤 2024년 봄부터 완만한 반등세로 돌아섰다. 특히 금리 인하 신호와 함께 전세가격이 상승 전환하면서 매매 수요를 자극하는 모양새다. 서울대학교 김경민 교수는 “역대 최악의 공급 부족, 금리 인하 기대, 전셋값 상승이 겹치며 서울 부동산의 모든 지표가 상승을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5년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 중 매매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나, 수요자들이 임대시장에서 매매시장으로 본격 회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남권 인기 아파트의 경우 올 들어 한 달 새 수억 원씩 호가가 뛰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는 단지도 나타났다. 부동산114 등 민간 조사에서도 전문가 다수가 ‘서울 집값이 향후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주택 공급 부족과 양극화 심화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2025년 서울 입주 물량은 3만7천 가구 수준에 그쳐, 수요 대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 정부는 내수 회복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건설 경기가 바닥을 치고 반등하면 관련 산업 전반에 활력이 돌고, 가계의 자산 효과로 소비가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로 가계대출 부담이 완화되면서 주택 매입 여력이 다소 회복된 것도 사실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연합뉴스



실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일부 4% 초반까지 내려와, 억눌렸던 갈아타기 수요가 살아나는 중이다. 다만 금융당국이 2025년 7월부터 스트레스 DSR 3단계를 시행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하면서, 과도한 대출 쏠림을 억제하려는 장치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저금리로 빚내서 집 사는 과거 행태를 막아 부동산 버블 재발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그럼에도 내수 회복의 체감 온도는 높지 않다. 자영업, 서비스업 등은 여전히 코로나 이후 회복세가 더디고, 고금리 여파로 소비 심리도 완전한 신뢰를 되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기업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어 민간 소비 여력이 제한적이다.
상반기 중 청년 체감실업률이 9% 내외를 기록했고, 실질임금 상승률도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해 소비에 제약이 되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부동산 등 자산시장 반등은 국한된 계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수출 부진을 상쇄할 정도의 강한 내수 모멘텀이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내수 진작과 수출 위축이라는 불균형이 한국 경제의 이중 충격 구조로 남아 있다는 진단이다.

회환 보유고 추이(계엄사태 이후 환율방어선이 상승하였다.) ©연합뉴스


커지는 ‘제2의 IMF 위기’ 공포, 그 배경은?
대외 수출환경 악화와 대규모 해외투자 압박, 그리고 고금리 여파로 인한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선 “제2의 IMF 외환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이 용어는 그만큼 경제 불안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현재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4천억 달러를 웃돌고 대외채무 구조도 단기보다는 장기비중이 커 예전만큼 취약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대두된 몇 가지 징후들은 당시 위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첫째, 무역수지 악화와 원화 약세다. 2022년부터 국제 원자재가 급등과 주요 수출품 단가 하락이 겹치며 한국은 수십 년 만에 무역적자를 경험했다. 2023년에도 상반기 내내 무역적자가 지속되다가 하반기 겨우 흑자로 전환했으나, 2024~2025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 회복이 더뎌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줄었다. 그 결과 원·달러 환율은 한때 1달러당 1,400원에 넘어서며 불안을 자극했다. 비록 2025년 들어 미 연준의 긴축 종료로 환율이 1,300원대 초반까지 안정됐지만, 상호관세 시행 이후 원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조짐이 보인다. 이는 해외투자 자금 유출 우려와 맞물려 외환당국의 고민을 깊게 한다.
둘째, 앞서 언급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이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단기간에 막대한 달러를 인출해 미국에 투자하게 될 시, 외환보유고가 급감하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와 투자 합의를 공식 체결하기 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신용불안국으로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다행히 한국 정부는 미국과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함께 논의 중인데, 만약 성사되지 못한다면 심리적 불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1997년 위기도 애초 달러 유동성 부족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셋째, 국내 정치·정책 리스크의 부각이다. 야권에서는 “현재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반시장·반기업 정책 기조가 지속되면 제2의 IMF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실제 한때 검찰개혁, 대법원장 탄핵 시도 등으로 정치권은 극한 대립을 지속하고 있고, 한국사회의 극우들의 돌출행동으로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내란에 대한 정리도 지지부진한 과정이어서 정치적 불안정과 국론의 분열은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외국 자본 이탈을 부추길 위험 요인이다.
넷째, 높은 부채 수준이다. 비록 1997년 위기는 기업들의 외화부채가 뇌관이었지만, 현재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부채 등 내수 부문의 부채 문제가 잠재적 뇌관으로 꼽힌다. 2025년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10%를 넘어 세계 최상위권이고, 금리 상승기 영향으로 금융 취약계층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다. 만약 부동산 경기가 다시 꺾여 담보가치가 하락할 경우 금융권에 신용경색이 올 수 있고, 이는 곧 외국 자본의 한국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은행권 건전성이 양호하고 정부의 선제 대응으로 직접적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지만, 부채 문제가 경기 하강과 겹치면 언제든 위험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우려가 97년식 외환위기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지나친 공포 확산을 경계한다.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무엇보다 기축통화국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G20 경제대국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 외신은 “한국은 30-50클럽(1인당 GDP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에 속하며 국제사회가 함부로 붕괴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정부도 긴급 외환 조치 매뉴얼을 갖추고 있으며, 위기징후 발생 시 IMF 등과 공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IMF’라는 단어가 회자되는 것 자체가 한국 경제의 복합불안을 보여주는 신호인 만큼, 선제적 대응과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계엄직후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대를 훌쩍 넘어서며 외환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위기 환율’ 수준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이중 충격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는 내우외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중 패권경쟁과 보호무역 회귀 속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생존 전략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자유무역 질서는 크게 후퇴했고, 한국은 그 여파를 정면으로 맞았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고금리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유동성을 다시 풀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부채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대외 충격을 흡수할 내수의 힘은 예전보다 커졌다 하나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응하면 IMF와 같은 위기가 올 것이라며, 미국의 양보를 압박했다. ©REUTERS


결국 관건은 정교한 균형 잡기다. 대미 통상 마찰에 대응해 협상력을 높이고 외교 네트워크를 다변화하는 한편, 일방적 요구에 끌려가지 않을 국익 중심 원칙을 세워야 한다. 3,500억 달러 투자 협상도 단순히 시간 벌기용 미봉책이 아니라, 향후 한미 경제협력의 새 틀을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거시경제 안정을 최우선에 두고 재정·통화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환율 안정과 금융시장 신뢰 확보를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외환보유액 관리 등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민간 부문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정책 리스크를 줄이는 노력도 시급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은 수많은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기초체력의 중요성이다. 기업의 혁신 역량, 견조한 재정과 금융시스템,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과 사회안전망은 위기 때 빛을 발했다.
지금의 이중 충격 국면 역시 슬기롭게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펀더멘털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 때 다시 한 번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는다면, 한국 경제는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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