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본령은 자유와 책임, 법치와 안보에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태극기 집회와 ‘아스팔트 우파’에 기대며 극우 담론을 일상화했고, 통일교·전광훈·손현보 등 강경 종교 세력과의 결탁 의혹까지 뒤집어쓴 채 보수의 상식을 스스로 훼손해 왔다. 장동혁 대표 선출 과정에서 확인된 강경 노선, 권성동 구속을 계기로 드러난 통일교 연루 의혹, 전광훈 집회 무대에 오른 의원들의 행태는 보수정당의 길이 어디까지 벗어났는지 웅변한다. 해외 사례가 말해주듯 극우의 단기 동원은 가능하지만, 중도와 사실을 외면한 통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건전한 보수의 재건 없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은 작동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21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에 참가해 여당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5년 10호=김성민 기자] 보수정당 변천사 : ‘합리적 보수’에서 ‘아스팔트 극우’로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진 한국 보수정당은 산업화 세력의 유산과 민주화 이후의 제도권 경쟁을 통해 오랫동안 ‘합리적 보수’의 틀을 유지해 왔다. 균형 재정, 성장과 복지의 병행, 한미동맹과 현실적 대북정책이 핵심축이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는 급격한 균열을 겪었고, 광화문 태극기 집회로 상징되는 강경 거리 세력이 당 안팎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노선의 우경화가 가속됐다. 그 결과 정당 내부의 합리·중도 회로가 마모되고, 강경 동원의 유혹이 일상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교 극우와의 결탁 : 통일교·전광훈·손현보의 교차점
권성동과 통일교 한학자 교주의 구속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특검 수사선상에 선 통일교 지도부는 김건희 전 여사 및 국민의힘 핵심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으로 연속 소환과 영장 심사를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특검은 통일교 측의 정치권 접촉 정황과 금품 제공 의혹을 집중 검증하는 한편, 통일교 신도들의 조직적 ‘당원 대량 가입’이 2023년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특검은 국민의힘 당원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한 외부 업체를 압수수색하며 약 11만 명 규모의 통일교 추정 명단을 확인했다는 정황을 확보했다. 이는 전당대회 선거인단의 유의미한 비중이었다는 점에서 당내 민주주의 훼손 논란을 낳는다.
세계로교회 예배 참석해 종교탄압 입장 밝히는 장동혁 ©연합뉴스
강경 개신교 진영과의 결합도 노골적이었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광화문·한남동 집회 무대에 국민의힘 중진들이 잇따라 올라 발언했고, 일부 의원은 행사장에서 주최자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와 맞물려 ‘반(反)탄핵’ 정서를 결집하는 통로로 기능했다. 당내에서조차도 “전광훈 목사와 자매결연 맺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점을 비추어보면 국민의힘과 강성 종교 세력과의 결탁이 공공연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대선·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사전선거운동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종교탄압’ 프레임으로 사법절차를 거칠게 비난하며 강경 지지층과의 접착을 택했다. 법치의 일관성보다 동원 정치의 효율을 우선한 셈이다.
당 대표 취임 후 부산을 방문한 장동혁 대표는 첫 일정으로 부산 세계로교회 예배에 참석해 “손 목사 구속은 모든 종교인에 대한 탄압”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어 “2025년 대한민국에서 종교 탄압을 막는 게 제 소명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불법행위에 대해서조차 극우 성향 종교인이라면 두둔하고 감싸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장동혁 대표와 당권 레이스의 극우화
2025년 8월, 국민의힘은 장동혁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본선 여론조사에서 열세였던 그는 당원투표에서 강세를 보이며 김문수를 근소 차로 꺾었다. 경선 기간 내내 장동혁은 윤석열 전 대통령 옹호와 ‘반탄핵’ 정서를 전면에 내세웠고, 극우 성향 유튜버 전한길이 주최한 토론회에 잇따라 참석해 “극우 프레임은 좌파의 공격”이라고 역공했다. “극우인지 아닌지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고 일축한 장 대표의 발언은 본인이 극우 성향 담론을 정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가 되면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겠다고 공언하며 결집된 강경 지지층에 신호를 보낸 장 대표의 언행에 당내 중도·개혁 보수는 우려를 표명했고, 국민의힘이 제도권 보수에서 극우 대중정당으로 기울었다는 진단을 낳았다.
또한 새롭게 출발한 국민의힘 최고위 지도부가 합리적 보수의 길을 포기하고 음모론과 반헌법적 주장을 거침없이 수용하는 여러 장면에서 국민의힘이 이제 건전한 보수정당이 아닌 극우 세력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있는 현실은 국민의힘이 가야 할 험난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장동혁 의원(오른쪽)이 지난 7월 31일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한길뉴스 유튜브 갈무리]
‘계엄–내란’ 프레임의 위험 : 헌정질서와 법치의 침식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 이후 내란(계엄 시도)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되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통일교 로비 의혹과 더불어, 집권기 권력 운용 전반에 대한 특검·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들은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권·시민단체의 과잉 주장을 배제하더라도, 전직 대통령과 측근·종교 세력이 동시에 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가 통치의 기본 신뢰를 흔들었다. 정당 지도부가 이를 두고 ‘정치 보복’으로만 호도하는 사이, 보수의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전직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고 특검과 재판에 불출석하는 것도 모자라 체포영장 집행을 속옷 차림으로 거부하는 해괴망측한 행태, 이를 옹호하는 국민의힘 주장 어디에도 법치를 찾아볼 수 없다. 법을 집행하던 검사 출신 대통령이 법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민국 법치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극우화가 국민에게 남긴 비용
첫째, 거짓·음모론의 일상화다. 부정선거·색깔론·가짜뉴스는 상대를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는 언어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회 신뢰를 갉아먹는다.
둘째, 정책 역량의 고갈이다. 동원과 선동에 에너지를 탕진한 정당은 민생·경제·외교의 실질 아젠다를 만들지 못한다.
셋째, 정치 폭력의 전조다. 전직 대통령 탄핵과 사법절차를 ‘체제 전쟁’으로 규정하는 순간, 법률과 제도의 합의는 쉽게 깨진다.
넷째, 보수의 외연 축소다. 합리적 보수 유권자는 이미 발길을 돌리고 있고, 젊은 층의 이탈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극우 이념에 경도된 정당에게 국정 운영 능력을 기대할 순 없다. 음모론과 이념 논쟁에 치중하며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개발과 대안 제시는 뒷전인 정당에 국민의 혈세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탄핵 정국과 극우-온건 노선 갈등에 몰두하는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은 폭락해 16%까지 추락했던 반면 합리적 정책 노선을 견지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0% 중반을 기록하여 양당 격차가 3배 가까이 벌어졌고, 보수의 심장부라는 대구·경북(TK) 지역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앞서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은 극우로의 경도 현상이 얼마나 많은 국민의 신망을 잃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 축을 담당하는 정당이 극단으로 흐르면, 건강한 정책 경쟁 대신 음모론 싸움이 판치고 결국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혐오성 발언을 일삼는 중앙우체국 앞 혐중 시위대 ©연합뉴스
해외가 남긴 교훈 : ‘단기 승리’와 ‘장기 취약성’의 딜레마
해외에서도 보수 정당이 극우 성향으로 기울면 민주주의와 거버넌스에 비용을 치른다는 경고가 반복해 왔다.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 전·현 대통령 체제에서 당내 합리 보수 인사들이 주변화되고(예: 리즈 체니 축출) 2020년 대선 패배와 ‘1·6 사태’로 국제적 비판을 받았지만, 2024년 선거에선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312명의 선거인단과 약 7,730만 표로 백악관에 복귀했고 2025년 1월 20일 취임했다. 다만 집권 이후에도 직무평가는 40% 안팎의 ‘보합권’에 머물고(여론조사에 따라 37~45%), 무리한 음모론·강경 노선이 중도층 확장과 안정적 국정 운영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 대목이 한국 보수정당에 주는 교훈은 단기 동원으로 승리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상식적 중도와의 접점을 회복하지 않으면 통치 정당성은 취약해진다는 사실이다.
영국 보수당은 브렉시트 강경 노선을 거치며 2024년 총선에서 역사적 참패를 기록했다. 노동당이 압승하는 동안, 보수표 일부는 포퓰리즘 성향의 개혁당(Reform UK)으로 이탈했다.
기성 보수정당이 극우적 구호에 끌려가면 기존 지지층마저 분산되고, 장기적 재건이 더 멀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당장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대한민국 보수정치 전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견제와 균형은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 내 건전한 정당들이 선의의 경쟁을 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스스로 극우의 길을 걷는다면, 유권자들은 대안을 찾아 움직일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보수정치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 ‘이것은 아니다’라는 성찰과 결단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의 보수정당은 결국 아스팔트 극우의 늪에 빠져 자멸하고 말 것이다.
국민의힘이 하루빨리 극우의 손을 놓고 건전한 보수로 돌아와야만, 비로소 대한민국 정치권에 健全한 균형추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보수정당 스스로가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며, 현명한 유권자들도 이를 주시하며 역사적 평가를 내릴 것이다.
9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국민의힘 '야당 탄압 독재정치 규탄 대회'에 성조기, 부정선거 등 극우집회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보수의 재건 로드맵 : ‘건전한 보수’로 돌아가는 다섯 가지
① 극단과의 결별
통일교–전광훈–손현보 등 강경 종교·유튜브 정치와의 조직적 연결고리를 끊고, 불법 연루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특검이 확인한 조직적 당원 동원 의혹은 당 자체의 조사와 제도 개선으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
② 중도·합리 보수 인재의 복권
당내 온건파의 발언권을 회복시키고, 외부의 상식적 보수를 과감히 영입해야 한다. 실제로 보수권에서 이탈해 민주당으로 옮긴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 김상욱 의원 사례는 극우화 속에 사라진 ‘보수의 공간’을 방증한다. 이탈을 나무랄 게 아니라, 왜 떠났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③ 당내 민주주의의 재설계
전당대회 룰과 권리당원 제도를 손봐 강경 소수가 당권을 장악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 대의기구의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외부 세력의 조직적 ‘입당-몰표’가 통하지 않도록 검증·감시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④ 사실·정책 중심의 경쟁 복귀
색깔론과 음모론 대신 일자리·주거·연금·과학기술·안보에서 측정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가 ‘국가 운영의 전문가 집단’이라는 원래의 이미지를 되찾을 때만 외연 확장이 가능하다
⑤ 법치와 책임의 회복
사법 리스크를 ‘정치 보복’으로만 포장하지 말고, 구성원 개인의 위법에는 원칙적으로 책임을 묻는 문화를 복원해야 한다. 법치의 자해는 보수의 자해다.
민주당으로 본회의 참석한 김상욱 의원 ©연합뉴스
결론 : ‘극우의 늪’을 건너 ‘건전한 보수’로
국민의힘은 지금도 극우의 단기 동원과 건전 보수의 장기 생존 사이에서 기로에 서 있다. 통일교 사안과 권성동 구속, 전광훈·손현보와의 결합 의혹, 장동혁 대표의 강경 선회는 당장의 결집에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중도 다수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치명적이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극우화는 일시적 승리를 허락하지만, 통치의 내구성을 갉아먹는다.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되찾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며, 그것이야말로 합리적 보수를 기다리는 다수 시민에게 주는 최소한의 예의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지도부는 건전한 보수로의 길을 찾아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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