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장정구에게 다운 당하는 도카시키


1984년 8월18일 프로복싱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는 포항실내체육관에서 4차방어전을 펼쳤다. 상대는 전(前) WBA 동급 챔피언이자 6위에 랭크된 일본의 도카시키. 도전자 도카시키는 1981년 12월 16일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김환진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타이틀을 탈취하면서 일본의 28번째 챔피언으로 탄생한 복서다.

그는 82년 10월에는 김성남, 83년 1월에는 김환진을 연달아 3ㅡ0 판정으로 꺾고 도합 5차 방어에 성공한 전직(前職) 챔피언이었다. 당시 24전 19승(4KO) 2무3패의 도카시키는 묵직한 한방은 없어도 속사포(速射砲) 같은 연타를 주무기로 치고 빠지는 철저한 포인트 위주의 복싱을 구사하는 복서였다. 한편 24전 23승(11KO) 1패를 기록한 21살의 챔피언 장정구는 1984년 3월 치탈라타 (태국)와 3차방어전을 마친 후 실로 5개월 만에 펼쳐지는 방어전이었다.

도카시키 (왼쪽)와 챔피언 장정구


당초 5월에 예정되었던 이 경기는 장정구 챔프가 3차방어전을 끝으로 이영래 트레이너를 임현호 사범으로 교체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었다. 더불어 훈련 부족으로 인해 라이트 플라이급 한계체중(48.987Kg)에 무려 14Kg이나 오버(Over) 되는 극심한 체중감량으로 인해 타이틀이 3개월이나 연기되는 진통 끝에 펼쳐지게 되었다. 1984년 8월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엄청난 반일 감정이 극(極)에 달해 있을 때였다. 하필이면 도카시키와 대전 날짜인 8월18일 그날은 광복절 주간이었다. 장정구의 4차방어전 도전자 도카시키는 한국 복서를 상대로 1패 후 4연승을 기록하며 한국 복서 킬러로 불리고 있었다. 1회전 공이 울리자 도카시키는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마치 제2차 대전 말기 일본군이 자살 공격을 감행한 특공대인 가미카제식으로 챔피언 장정구를 향해 총알처럼 돌진한다.

예상밖의 돌진에 노련한 챔피언 장정구는 침착하게 어깨를 로프에 기대고 회심의 레프트훅 일발을 발사하자 도카시키는 총 맞은 꿩처럼 풀 석 그대로 주저앉는다. 이후 환상적인 전술로 도카시키에 맹공을 가한 장정구는 7회 지나친 감량으로 인해 체력이 소진되면서 잠깐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9회 전열을 추스린 장정구의 집요한 좌우 연타 공격을 뿜어내자 터프한 도카시키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리면서 로프에 등을 의지한다. 잠시후 도카시키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지켜본 레퍼리가 카운트 없이 장정구의 TKO를 선언한다. 경기 후 도카시키는 챔피언 장정구에 대해 "귀감(龜鑑)이 될만한 챔피언이다. 특히 적절한 타이밍에 스위칭(Switching)을 구사 함부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챔피언은 경기 운영과 지략이 한 수 위인 위대한 챔피언"이라고 밝혔다.

장정구 챔프 (좌측)구시껜 요꼬


WBA 동급 챔피언을 지낸 도카시키는 장정구와의 대결을 끝으로 명예롭게 링을 떠난다. 사실 도카시키는 장정구를 꺽고 그가 동경한 구시껜 요꼬( 13차방어 성공)를 뛰어넘는 복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장정구와 벌인 타이틀전에서 승전보(勝戰報)를 울리면 일본의 복싱 영웅 구시껜도 이룩하지 못한 WBA. WBC 양대 기구 챔피언에 올라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장정구와 대결에 사나이 모든 걸 걸고 필사적으로 사투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게 9회 KO패로 종결되면서 그 꿈이 유리창 깨지듯 좌절되었다. 이에 도카시키는 깔끔하게 복싱계를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도카시키는 말했다. 나는 그동안 여러 차례 세계 타이틀 전을 치루 면서 값진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있는 강렬한 경기는 바로 장정구와의 싸움이었다. 이유는 비록 패했지만 원 없이 싸웠기 때문이다. 도카시키의 사무라이 정신이 뼈 깊숙이 스며든 그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도카시키 말마따나 장정구는 세계 복싱계에서 인정하는 위대한 챔피언이다. 장정구 그가 싸운 세계챔피언 만해도 헤르만 토레스, 소트 치탈라타, 도카시키 가쓰오, 알폰소 로페즈, 오하시 히데유끼, 곤잘레스, 정종관, 신희섭 등 8명이었다. 이들을 상대로 17차례 진검승부를 펼쳐 순도 높은 13승 4패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복싱 사이트 복스렉(Boxec)에서 라이트 플라이급 올 타임 1위에 선정된 장정구는 새천년에는 WBC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되었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85년 86년 87년 WBC가 인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3년 연속 수상하면서 2010년 6월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FOH)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되었다. 이런 화려한 스펙을 뿜어낸 장정구 챔피언에게 정점(頂點)일 때 패하자 군말 없이 링을 떠난 도까시키 역시 그를 위대한 챔피언이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41년 전 그날 경기에서 장정구에게 패하고 고개를 묻고 포항 실내체육관 경기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도전자 도까시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학창 시절 교과서에 수록된 이형기 시인의 대표적인 시(詩) 낙화 한줄이 떠올랐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입장하는 복싱팬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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