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이 10월의 장성 역사인물로 망암 변이중 선생(1546~1611)을 선정했다.장성읍 장안리 봉암마을에서 태어난 망암 선생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도 소모사로 임명돼 1593년 6000여 명의 병력을 모아 죽산전투에 참전했다. 이 전투에서 선생은 일본군의 조총에 맞서기 위해 사재를 털어 제작한 ‘화차’를 처음 선보였다.[시사의창=송상교기자]


[시사의창=송상교기자] 장성군(군수 김한종)이 10월의 역사인물로 조선 국방과학의 상징인 망암(望巖) 변이중 선생(1546~1611)을 선정했다.

망암(望巖) 변이중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화차(火車)’를 제작해 행주대첩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조선 최고의 실천형 유학자이자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장성읍 장안리 봉암마을 출신인 변이중 선생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에 올랐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소모사로 임명돼 약 6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죽산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그는 일본군의 조총에 맞서기 위해 사재를 들여 40정의 승자총통을 일제히 발사할 수 있는 이동식 무기 ‘화차’를 제작했다.

망암(望巖) 변이중 선생이 만든 화차는 앞서 개발된 문종 화차의 개량형으로, 방호판을 두른 수레 안에서 병사가 운용하는 형태였다. 전장에서 높은 효용성을 입증한 이 무기는 이후 300여 대가 제작됐고, 그중 40대가 행주대첩에 투입돼 조선군의 대승에 큰 역할을 했다.

망암 선생은 군사전략뿐 아니라 실천적 유학과 기술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학문과 철학은 『망암집』에 기록돼 있다. 오늘날 장성 봉암서원과 경기도 고양시 행주서원에 배향되어 있으며, 후세에까지 실천적 학문과 과학정신의 본보기로 전해지고 있다.

장성군은 봉암서원 내 시징당을 철거하고 ‘화차 체험장’ 건립 공사를 추진 중이며, 지역 역사·문화 자산으로 선생의 업적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장성군 김한종 군수는 “전란의 위기 속에서도 과학기술로 나라를 지킨 망암 변이중 선생의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장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인물로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송상교기자 sklove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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