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복 80주년을 맞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한글문학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고통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고려인 한글문학의 불꽃을 다시 밝히는 자리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남철(1933–1999)이다. 그는 때로 남해연, 혹은 남해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여러 이름을 거쳐간 그의 삶은 곧 고려인 문학이 걸어온 망명과 생존의 역사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수십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내몰렸다.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고향을 잃고, 언어를 잃었지만 끝내 글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철 역시 그 대열에 있었다.
*고려인 시인이자 소설가 남철(1933-1999)/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그는 말한다. “말이 사라지면, 나라도 사라진다.” 그에게 시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었다. 모국어를 쓰는 일은 곧 자신과 민족을 지켜내는 행위였다.
고려인문화관 자료에 따르면 남철은 강태수·김광현·양원식·리진 등과 함께 합동 소설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 중 한 명이다. 또 그를 “해방 이전 북한에서 태어나 이후 소련으로 망명해 활동한 문인”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그의 문학은 조국과의 단절 속에서 언어를 되찾으려는 디아스포라의 투쟁 기록이었다. 그는 작품마다 이름을 달리했다. 남해연, 남해봉, 그리고 남철. 이름은 바뀌어도 문장의 혼은 하나였다.
그에게 필명은 단순한 가명이 아니었다. 검열과 망각의 벽을 넘어 살아남기 위한 또 하나의 언어, “고향은 잃었으되, 말은 잃지 않았다” 는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게 한 새로운 ‘고향’이었다.
남철의 시에는 고향을 잃은 자의 슬픔이 흐르고, 그의 소설에는 낯선 중앙아시아 황무지에서 유랑민으로 살아야 했던 한민족의 아픔이 배어 있다. 그는 ‘고향’, ‘정체성’, 그리고 ‘말의 기억’ 을 시의 리듬 속에 새겼다.
비록 그는 조국의 땅을 다시 밟지 못했지만, 언어 속에서 늘 조국을 불렀다. 그의 펜끝은 유랑의 손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문장은 민족의 심장에서 피어났다. 여러 이름, 하나의 목소리 지금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광주 고려인마을의 고려인문화관에는 그가 남긴 이름과 문장들이 하나하나 복원되고 있다.
오늘날 누군가는 그를 남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남해봉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의 문학은 “우린 유랑민이 아니라, 역사를 품은 사람들이었다.” 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고려인 시인이자 소설가 남철, 그의 이름은 잊혀진 문인이 아니라 언어로 조국을 지킨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상징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여러 이름과 그의 시와 소설은 지금도 “고향은 잃었으되, 말은 잃지 않았다”는 진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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