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케이티(KT)광화문빌딩 웨스트 지하 브리핑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매일 오후 진행하는 정례 브리핑 현장에 최근 낯선 얼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언론만이 자리를 채웠지만, 최근 들어 일본 주요 매체 기자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계기는 특검팀이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정교유착’ 의혹 수사망을 한학자 총재로 확대하면서부터다.
지난 7월 17일, 일본 교도통신 등 외신 기자들이 처음으로 브리핑룸을 찾았다. 이날은 한학자 총재가 특검팀의 세 차례 소환 요구 끝에 처음 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이어 지난달 23일, 한 총재가 김건희 여사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자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유력지 기자들이 줄줄이 특검 브리핑에 참석했다.
그들은 “한 총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는가”,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무엇인가”, “구속 전 심문에서 어떤 발언을 했는가”, “독방 수감 여부는 사실인가” 등 꼬치꼬치 묻는 열띤 취재 열기를 보였다. 일본 현지 언론은 한 총재 구속 사실을 새벽 속보로 전하며 큰 관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일본 언론이 한국 특검 수사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일본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일본에선 이미 ‘통일교–자민당 유착 의혹’이 거대한 정치적 파문으로 번져 있다. 지난해 도쿄지방법원이 통일교의 불법 헌금 모금 문제를 이유로 종교법인 해산을 명령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한 일본 매체 기자는 “한국 수사 결과가 자민당 정치인들과 통일교의 관계를 다시 흔들 수 있다”며 “한국에서 어떤 증거가 나오는지에 따라 일본 정치 지형이 뒤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안의 뿌리는 2023년 7월 발생한 아베 신조 전 총리 피격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가 “통일교로 인해 가족이 파탄났다”고 진술하면서 일본 사회는 통일교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민당 내 다수 의원이 통일교 관련 단체 행사에 참석하거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이 잇따라 불거졌다.
통일교 문제는 일본 내부의 사회적 갈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일본 통일교 피해자 지원단체에 따르면, 매년 약 3800억 원에 달하는 일본 내 헌금이 한국으로 송금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통일교를 탈퇴한 일본인 신도 200여 명은 통일교를 상대로 6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에는 통일교 신자 자녀들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새로운 소송에 나섰다.
피해대책변호단은 “일본에서 모인 거액의 헌금이 한국 내 통일교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 확대에 사용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며 “일본 신도들의 돈이 왜곡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통일교를 둘러싼 의혹은 한국의 특검 수사와 일본의 정치 현안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특검팀이 향후 수사에서 통일교의 자금 흐름이나 정치권 연루 정황을 어디까지 규명하느냐에 따라, 그 파장은 국경을 넘어 일본 정치권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로 출발한 특검팀의 조사 결과가, 양국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뒤흔들 ‘한일 동시 충격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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