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행정정보시스템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고개를 숙여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금융 지원의 공백에 직면하고 있다. 대출보증과 긴급 운영자금을 담당하는 서울신용보증재단의 업무가 전면 중단되자, 자금줄이 막힌 영세 자영업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정부 주요 전산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불은 곧바로 서버 장애로 이어졌고,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전산망 다수가 동시에 멈췄다. 이로 인해 각종 증명서 발급 서비스와 신용평가 자료 확인이 불가능해졌으며, 금융지원 기관의 창구 업무 역시 사실상 마비됐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서울시 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신용보증과 저리 대출, 경영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핵심 기관이다. 그러나 현재 온라인 상담은 물론, 대출 심사와 보증 발급에 필요한 국세청 및 정부24 서류 조회가 전면 차단된 상태다. 한 재단 관계자는 “창구에 직접 방문해도 필요한 증빙서류가 조회되지 않아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며 난처함을 드러냈다.

특히 큰 타격을 받은 사업은 ‘안심통장’이다. 서울시가 올해 3월 전국 최초로 도입한 이 제도는 제도권 금융 접근이 어려운 자영업자에게 최대 1천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을 지원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됐다. 출시 두 달 만에 2천억 원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호응이 뜨거웠고, 지난달 2천억 원 규모의 2호 상품이 추가 출시됐다. 하지만 전산망 마비로 신규 지원은 물론, 기존 신청 절차도 멈춘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은 경기 침체와 매출 부진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자금난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추석 자금 수요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4분의 1 이상이 “올해 자금 사정이 작년보다 더 어렵다”고 답했으며, 가장 큰 원인으로 ‘판매·매출 부진’(72.2%)을 지목했다.

자금 경색이 심화되는 가운데, 소상공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추석을 앞두고 직원 월급과 원자재 대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대출 보증이 멈추면서 길이 막힌 상황”이라며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서울신보 측은 정부 전산망 복구가 지연될 경우 소상공인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단 관계자는 “현재 경기침체로 소상공인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데, 금융 지원 시스템까지 멈춰버려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의 신속한 복구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발생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화재 사고를 넘어, 공공 전산망 의존도가 높은 행정·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공공 데이터센터의 관리·보안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하며, 분산 관리 체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유사한 피해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발생한 지 사흘째, 일부 서비스가 재가동되면서 복구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소된 전산실에 있던 주요 시스템은 재가동까지 최소 2주가 걸릴 것으로 전망돼 국민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현재 46개 행정정보 서비스가 정상화됐다”며 “국민 이용률이 높은 정부24와 우체국 금융서비스도 재개됐다”고 밝혔다. 윤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큰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6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였다. 불길은 7-1 전산실을 전소시켰고, 이곳에 설치된 96개 핵심 시스템이 한순간에 마비됐다. 해당 전산실은 행정정보서비스의 중추 역할을 해온 곳으로, 국세·민원 발급, 금융 연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기능이 집중돼 있었다.

윤 본부장은 “전소된 전산실의 시스템을 바로 재가동하기는 어렵다”며 “대구센터의 민관협력형 클라우드로 이전 복구를 추진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대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의 직후 직접 대구센터를 방문해 현장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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