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수원지법이 아리셀 경영진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무거운 형량으로, 법원은 이 참사를 '예측 가능한 인재'로 판단했다. 이제 안전은 비용 항목이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직접 챙겨야 할 핵심 전략 과제가 됐다. 판결은 한국 산업안전의 좌표를 ‘사후 보상’에서 ‘사전 통제’로 이동시켰다. 기업도, 정부도, 현장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성도, 브랜드도, 시장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수원지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사실상 방치했고, 사고는 불가피한 천재가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인재였다고 적시했다. 같은 혐의로 대표와 총괄본부장(아들)에게 나란히 징역 15년이 선고되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래 최장기 실형 기록을 새로 썼다. 그간 동일 법에 따른 최고 형량이 징역 2년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원의 기준선이 확연히 높아졌다.
이번 선고는 안전을 ‘컴플라이언스 체크리스트’가 아닌 ‘경영 성과’로 다루라는 주문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진 개인 책임을 전제로 하고, 정부는 3명 이상 연속 사망사고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최대 5% 과징금 부과 등 제재 상향을 예고했다. 안전은 더 이상 안전팀의 업무가 아니라 이사회의 KPI다. 안전예산·조직·권한을 이사회 결의로 고정하고, 외부 점검 결과를 주주와 이해관계자에게 상시 공개하는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
사망자 다수가 파견·단기·외국인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한국 제조업의 취약한 고리를 다시 드러냈다. 화재 당시 현장에는 3만5천여 개의 리튬전지가 쌓여 있었고, 작업 전 안전교육·공정 통제 미흡, 품질 결함 신호 방치 등 복합적 실패가 확인됐다. 고용노동부 잠정치로 2024년 산재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89명으로 집계됐다. 다국어 안전교육과 하청·파견 전 과정 통합관리, 위험 공정의 숙련도 기준 상향은 더 미룰 수 없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처럼, 선제적 투자가 가장 경제적이다. 경영진 보상 구조에도 안전 지표를 직접 연동해 책임과 유인을 맞바꾸는 설계가 필요하다.
중소 제조 밀집지엔 지자체-보험사-안전공단이 함께 운영하는 ‘공동 안전지원센터’를 두어 다국어 교육, 공정점검, 모의대피 훈련을 묶어 제공하자. 반복사고 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페널티와 반대로, 무재해 장기 지속 기업에는 보험료·정책금융 인센티브를 확대하자. 정부 통계에서 화재·폭발 유형 비중이 늘어난 만큼, 소규모 사업장 대상 전기·화학 위험성평가를 상시화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번 아리셀 1심은 '안전은 비용, 사고 나면 합의'라는 과거의 관성을 공식 폐기했다. 법은 기준을 세웠고, 시장은 ESG로 압박한다. 남은 것은 경영진의 선택이다.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로 대우하는 기업만이 인재를 막고, 공급망 신뢰를 얻고, 글로벌 고객을 붙잡는다. 결국 안전이 곧 한국 제조의 경쟁력이다. 더 버틸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김성민 기자 ksm9500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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