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간 진행 중인 무역 협상과 북핵 문제, 최근 불거진 미국 내 한국인 대규모 체포 사태 등을 두고 연이어 발언을 내놓으며 국내외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가 그대로 수용될 경우 한국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 한편,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이중 메시지를 전했다. 이러한 발언은 미국 로이터통신과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되며 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무역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의 투자가 한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이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이는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위기를 다시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한미 통화스와프 같은 금융 안전장치 없이 이런 방식의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관세를 각각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아직 문서화되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의 사례를 따르라고 요구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선택은 명확하다”고 말해 사실상 양자택일을 압박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미는 혈맹”이라며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했지만, 일본과 단순 비교하는 미국의 태도에는 반박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으며, 미·일 간에는 안정적인 스와프 라인도 존재한다. 국제 통화로서의 엔화와 원화의 위상 역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일본과 같은 조건을 감당할 수 없다”며 현실적 제약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협상이 ‘상업적 실행 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한 이 대통령은 “지금 협상 과정에서 제시되는 많은 안들이 현실적인 사업 환경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합의의 간극을 좁히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은 명확하다는 점을 미국 측에 알린 셈이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발 물러섰다. “한국이 더 큰 책임을 지는 것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안보 문제와 무역 문제는 반드시 분리해서 다뤄져야 한다”고 이 대통령은 강조했다. 아울러 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불안정한 상황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답하며 조속한 타결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인 300명 체포, 충격적 사건
무역 갈등과 더불어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한국인 체포 사건도 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300명 이상을 체포했다. 이 중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근무하던 이들도 포함돼 논란이 커졌다.
이 대통령은 BBC와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이 당한 대우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인들이 직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특히 미국 당국이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수갑을 채운 모습을 공개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이 양국 동맹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근로자들이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이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지시라기보다는 과도한 법 집행의 결과라고 믿는다”며 동맹에 대한 신뢰를 유지했다.
미국 정부가 사과 의사를 밝히고 재발 방지 조치를 논의 중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의도적인 사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이번 사태가 오히려 한미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북핵 완전 폐기보다 동결 합의가 현실적
북·중·러 밀착, 한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남북 대화가 낙관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한국의 여러 제안을 거부하고 있어 대화의 동력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미 간 협상이 진전돼 북한이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합의가 나온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매년 15~20기의 핵무기를 새로 생산하고 있다”며 “동결만으로도 확산을 막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가능한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는 시도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일부라도 달성할 것인지가 문제”라며 실질적 성과를 강조했다. 이는 비핵화를 향한 ‘단계적 접근’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국제 정세와 관련해서는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를 거듭 표했다. 이달 초 중국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이 연출된 데 대해 그는 “사회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 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미일 협력이 강화될수록 중국·러시아·북한이 더욱 긴밀히 공조하게 되고, 그 결과 경쟁과 긴장의 악순환이 심화될 수 있다”며 “이는 한국 안보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군사적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반드시 대화와 조율을 통해 긴장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은 위기 경고와 협력 강조라는 상반된 메시지가 교차한다. 무리한 대미 투자 요구는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미국 내 한국인 체포 사건은 동맹을 강화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북핵 문제 역시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상적 목표보다는 동결이라는 현실적 조치를 우선 고려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언들이 한국 정부의 복합적 과제를 반영한다고 평가한다. 경제적 안전판을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안보 환경에서는 실질적 대응책을 찾고, 외교적으로는 대립과 긴장이 고조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한국이 처한 복잡한 지정학적·경제적 현실을 반영한 복합 전략으로 풀이된다. 향후 한미 협상의 향방과 북핵 문제, 그리고 동북아 정세의 흐름 속에서 그가 제시한 구상이 어떤 실체로 구현될지가 관건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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