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은 한글문학 기획전을 통해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의 고통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고려인 한글 문학의 불꽃을 다시 밝히고 있다. 이름 없이 잊혀진 무명의 작가들, 그러나 그들의 시와 글은 민족의 기억을 이어온 뜨거운 증언이었다.

그 가운데 고려인 시인 김인봉(1907~1976)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낯선 땅, 끝없는 황무지에서 그는 작은 제비에게 말을 걸었다. 날개를 펴고 자유롭게 하늘을 가르는 제비는 그에게 단순한 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자, 잃어버린 자유,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넘어서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고려인 시인 김인봉(1907~1976)/사진=고려인마을 제공

1907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고려사범대학을 졸업한 김인봉은 젊은 시절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려인 예술단 무대에 올라 ‘춘향전’ 같은 고전극을 공연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연극을 통해 청년들에게 조국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내몰린 그는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한국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언어조차 빼앗기던 시절, 그는 끝끝내 모국어를 붙잡으며 ‘우리가 누구인가’를 지켜내고자 했다. 1950년대 사할린으로 건너간 뒤에도 교단을 지켰고, 교사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의 시는 고려신문 등 한글 매체를 통해 퍼져나갔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로 〈작은 제비야〉다.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 치며/천하를 다 보는 저 작은 제비야,/내게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들렸다면/높이 높이 날아올라 속 시원히 살펴보련만…”

이 짧은 시 한 편 속에는 날개 없는 디아스포라의 현실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절절히 담겨 있다. 그의 시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려인 공동체가 고난 속에서 모국어를 지켜내고 미래 세대에게 전하려 한 의지의 증거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자를 남기고, 언어를 이어준 그의 삶은 곧 고려인 한글문학의 씨앗이자 영원한 불씨였다.

오늘날 '역사마을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은 잊혀진 수많은 고려인 문학인 가운데 김인봉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빛바랜 시 구절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한 시인의 목소리를 넘어, 일제강점기 국권 상실과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로 피어린 삶을 살아야 했던 고려인 전체의 눈물과 희망을 듣는다.

작은 제비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그의 눈길은 이제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 후손들의 가슴에 날개가 되어,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미래를 향해 꿈을 펼치는데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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