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기자] 정당 현수막은 싸고 눈에 띈다. 그래서 선거철마다 거리가 먼저 선거를 맞는다.

시사의창 전북동부취재본부장 소순일기자


문제는 소음처럼 익숙해질 뿐, 설득으로 이어졌는지 확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22년 12월 법 개정으로 게시 요건이 풀린 뒤 2023년 내내 난립이 논란을 키웠고, 2024년 1월부터 읍‧면‧동별 2장 제한 등 재규제가 시행됐다.

그 사이 시민은 안전과 미관, 혐오 메시지를 호소했고 지자체는 민원과 철거 업무에 매달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내년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수막이 정말 ‘표의 통로’인지 ‘반감의 증폭기’인지 데이터로 판정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공직자 110명을 대상으로 정당 현수막의 효과를 물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유익성, 설득성, 호감 모두 낮게 나왔다. 안전 위해성 인식과 회피 반응은 높았다. 정치 성향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가 일부 관찰됐지만, 큰 줄기는 같다. 업무 최전선의 응답자들조차 “효과는 약하고 불편과 위험은 크다”고 본 것이다.

언론 노출량도 2023년에 급증했지만, 이슈의 증폭이 설득의 증거는 아니다. 결국 “많이 걸면 이긴다”는 직관은 경험칙이지 근거가 아니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하주 버스정류장 옆 현수막 게첨대


현수막이 설득에 실패하는 구조적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일방향 단문 메시지는 맥락과 근거를 담기 어렵다. 표현이 거칠어질수록 반대 진영 결속만 돕는다.

둘째, 반복 노출이 피로를 부른다. 시야를 가리는 물리적 점유는 시민 일상과 충돌한다.

셋째,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 설치·유지·철거의 생애주기 관리가 허술하면 비용과 분노는 지자체와 시민에게 전가된다.

그렇다면 올해 가을부터 본격화될 예열기와 내년 6월 3일까지, 정당과 후보자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메시지의 목적을 바꿔라. 현수막은 ‘최초 접점’만 담당하라. 공약의 핵심 문장과 해시태그, 검증 가능한 수치, 그리고 QR을 통한 심화 콘텐츠 연결에 집중하라. “누구를 공격”이 아니라 “무엇을 해결”을 제시하라.

둘째, 위치를 가려라. 아동·노약자 통행 동선, 교차로 시야 확보 구간, 대중교통 환승로는 금지에 가깝게 보수적으로 접근하라. 규정 준수는 최소 조건이고, 시민에게 ‘배려의 신호’가 된다.

셋째, 생애주기를 설계하라. 설치 전 안전 체크리스트, 24~48시간 단위 점검, 기간 만료 12시간 전 자진 철거, 수거 후 사진 아카이브를 공개하라.

넷째, 어조를 낮춰라. 혐오·조롱·낙인어휘를 쓰지 말라. 표현의 자유는 책임의 의무와 쌍을 이룬다.

다섯째, 대체매체를 결합하라. 지갑이 얇으면 현수막을 줄이는 대신, 상호작용형 디지털 채널과 동네 단위 커뮤니티 브리핑으로 보완하라. 질문·피드백을 받아 공약을 수정하는 ‘참여의 루프’가 신뢰를 만든다.

지자체와 선관위에도 주문이 있다.

첫째, 실시간 공개 대시보드다. 읍‧면‧동별 현수막 잔여 쿼터, 신고·철거 현황, 안전사고 접수·조치 결과를 공개하면 규제의 투명성이 생긴다.

둘째, 표준 디자인 가이드다. 최소 글자 크기, 대비비, 가독성 기준, QR 크기·위치, 설치 높이·로프 결속 규격을 현장 사진 예시와 함께 배포하라.

셋째, 페널티의 실효성이다. 반복 위반 정당·후보에 대해 다음 분기 게시 쿼터 감경 등 ‘행태 교정형’ 제재를 도입하라.

넷째, 시민 참여 점검단이다. 생활권 사진 제보와 위험 신고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행정의 눈이 촘촘해진다.

후보자와 캠프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남긴다. ①한 문장 공약: 지역문제 한 개를 숫자로 정의하고 해결 기준을 명시했는가. ②근거 링크: QR로 예산·일정·담당부서를 투명하게 연결했는가. ③톤 앤 매너: 상대 비난을 덜고 시민 일상 언어로 바꿨는가. ④위치 윤리: 법을 넘는 자율 기준으로 안전을 확보했는가. ⑤철거 약속: 기간 준수와 자진 철거를 캠프의 신뢰지표로 삼았는가.

결론은 간단하다. 현수막은 ‘보여주는 정치’의 낡은 버릇을 드러낸다.

내년 6월 3일을 향한 경쟁에서 이기는 쪽은 ‘많이 거는 팀’이 아니라 ‘덜 걸고도 더 설명하는 팀’이다. 시민은 요란함보다 성실한 데이터, 선동보다 책임의 태도를 기억한다. 거리의 천을 줄이고, 증거와 대화로 채우는 캠페인이야말로 표를 만든다.

시사의창 소순일 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