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이믿음기자] 광주 광산구 월곡동 ‘역사마을 1번지’ 고려인마을은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고려인 동포 장뾰토르(60세) 씨의 장례식을 조촐히 치렀다. 장례식에는 고려인마을 지도자와 친지 등 10여 명이 참석해, 낯선 조국 땅에서 쓸쓸히 삶을 마친 고인의 영면을 기렸다.

장 씨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난민이 되어 폴란드로 피신했다. 같은 해 5월, 고려인마을의 항공권 지원을 받아 광주에 입국했으나, 당뇨와 신장질환으로 곧 노동력을 잃었다. 이후 지난 3년간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투병하며 버텼지만, 끝내 지난 14일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았다.

*고려인마을은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고려인 동포 장뾰토르(60세) 씨의 장례식을 조촐히 치렀다./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그에게는 한국 땅에 혈육이라 할 만한 이는 함께 입국한 조카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형편이 넉넉지 않아, 병원비와 생활비는 오롯이 고려인마을이 후원처를 찾아 마련해 지원하며 장 씨의 투병과 고독을 결코 홀로 두지 않았다.

또한 이번 장례식도 고려인마을은 주민들과 함께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진행했다. 공동체가 손을 잡아주었기에, 장 씨는 고향도 친척도 없는 타향에서 쓸쓸한 무연고자가 아닌, 고려인 동포로서 존엄을 지키며 마지막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장뾰토르 씨의 삶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1937년 강제이주의 상처를 안고 세대를 이어 살아온 고려인 후손들이, 오늘날에는 전쟁난민으로 또다시 길 위에 서야 했다. 하지만 광주 고려인마을은 그 고난의 길목에서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었고, 끝내 한 사람의 생애를 품어 안았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비록 낯선 조상의 땅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고려인 동포의 삶과 고난이 헛되지 않도록, 그 기억을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장뾰토르 씨의 짧지만 고단했던 생은 오늘날 처참한 전쟁과 이주의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동시에, 그 고난을 함께 짊어진 광주 고려인마을은 여전히 고려인 공동체의 따뜻한 품이자 희망의 터전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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