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시상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정청래 당대표의 발언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사법부를 향한 본격적인 공세의 출발을 알렸다. 정 대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혹에 대해 대법원장은 책임져야 한다”며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과와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불과 하루 전,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조 대법원장이 자리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관망에 가까웠다. 그러나 정 대표의 발언을 기점으로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일제히 가세하면서 ‘조희대 퇴진론’은 순식간에 여권의 전면전 구호로 확산됐다. 대통령실 역시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국회에서 나오는 이유를 사법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는 브리핑을 내며 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누가 봐도 기획된 듯한 조직적 공세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집중포화가 조 대법원장을 향한 것은 지난 12일의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 임시회의에서 법원 수뇌부는 “사법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며 민주당의 사법개혁 구상에 사실상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조 대법원장 역시 같은 날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코로나19 대책 논의를 위해 열렸던 2022년 회의 이후 처음 열린 임시회의라는 점에서, 사법부가 집단적으로 정치권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민주당은 이를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조직적 저항’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주말을 거쳐 지도부 차원에서 전선을 형성, 추미애 위원장의 선제적 메시지를 ‘예광탄’ 삼아 집중 포화를 쏟아부은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개가 군사적 함포사격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한다. 적진에 상륙하기 전, 반격의지를 꺾기 위해 화력을 퍼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이다.

여권이 공세의 화살을 조 대법원장에게 집중시키는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이미 강하게 형성돼 있는 ‘반(反)조희대 여론’과 무관치 않다. 나아가 향후 사법부가 사법개혁 법안에 반발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여권의 드라이브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지난 5월 조 대법원장이 이끌던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2심 무죄를 파기 환송한 전력을 다시 끄집어내며, 조 대법원장의 존재 자체를 ‘기득권을 지키는 상징’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사법개혁이라는 난도가 높은 과제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에 앞서 전선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지도부 인사는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자초한 논란들을 떠올린다면, 사법개혁은 결국 그의 사퇴 요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내부의 우려도 적지 않다. 충분한 여론 조성 없이 대법원장에게 곧장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이 자칫 야당의 역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끌어내려 이재명 대통령의 사건 판결을 흔들려는 것”이라고 반격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문제가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개혁=이재명 구하기’라는 프레임이 재점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자칫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대통령 재판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조 대법원장의 정치적 발언력이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피력했다.

정기국회를 앞둔 민주당의 전격적 공세는 이제 막 불을 지핀 상태다. 현 상황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해석은 향후 이 흐름이 여론을 등에 업은 사법개혁 드라이브로 이어질지, 아니면 반대로 ‘이재명 구하기’라는 역풍에 휘말릴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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