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온 고려인 선조들의 삶은 늘 고통과 망각 사이에 놓여, 그들의 이야기는 기록에서 지워졌지만, 노래와 시, 연극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마련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은 바로 그 잊혀진 불씨를 되살리는 자리다.

따라서 전시장은 단순한 유물의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다시 묶어내는 작은 무대가 되고 있다.

*고려인 시인이자 극작가 맹동욱(1931~2018)/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그 무대 위에서 관람객을 붙드는 이름이 있다. 맹동욱(1931~2018)이다. 그는 북한 유학생 출신이지만 망명을 통해 중앙아시아로 넘어간 제2세대 고려인 작가 그룹에 속한다. 그는 《레닌기치》(나중의 고려일보) 문예면 등에 참여하면서 고려인 한글문단에 이름을 알린 시인이자 극작가였다.

한 사람의 피어린 고난을 통해 고려인 디아스포라 굴곡진 삶을 온전히 품어낸 인물인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6·25 전쟁을 겪고, 아오지 형무소를 거쳐, 결국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망명과 유학의 길을 선택한 사람. 그의 인생은 끝없는 이동과 단절의 연속이었지만, 그 고통이 바로 예술이 되었다.

맹동욱은 고려극장 무대에서 수많은 작품을 올렸다. 대표작 「북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귀향 드라마가 아니다. 고향을 잃은 이들의 울음, 강제이주의 상처, 그리고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을 관객의 눈앞에 펼쳐냈다. 무대 위에서 군홧발 소리와 어머니의 흐느낌은 관객의 가슴을 저미며, “조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도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자전적 소설 『모스크바의 민들레』(1992)는 이름 그대로, 낯선 땅에 뿌리내린 한 송이 민들레 같은 고려인의 삶을 보여줬다. 전쟁과 망명,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피어난 디아스포라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 속에서 다시 호흡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 소개된 탈북 시인 양원식이 시를 통해 “나는 잊지 않았다 / 바람 속에 묻힌 고향의 언덕을 / 그 언덕 위 흘리던 어머니의 눈물을” 이라고 기록하며 잃어버린 조국을 불러냈다면, 맹동욱은 무대를 통해 집단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렸다. 언어와 무대, 서로 다른 형식이었지만, 두 사람은 같은 울림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이번 기획전은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남긴 시와 희곡, 소설, 그리고 예술 자료를 통해 “언어와 무대는 곧 조국” 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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