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의 상처 속에서도 한글 문학의 불꽃을 지켜낸 고려인 작가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주목받는 이는 고려인 시인이자 소설가, 언론인이었던 김세일(러시아명 김세르게이, 1912~2003)이다.

김세일은 1912년 러시아 연해주 박석골에서 태어나 고려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령에 따라 스물여섯의 나이에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내몰렸다. 이후 그는 단순히 생존에 머물지 않았다. 민족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켜내는 기록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시인이자 소설가, 민족의 증언자 ‘김세일’ /사진=고려인마을 제공

그는 『레닌기치』 기자로 활동하며 고려인의 삶과 목소리를 세상에 전했을 뿐 아니라, 시와 소설로 공동체의 아픔과 희망을 담아냈다. 「시월의 흐름」(1953), 「치르치크여」(1954), 「청춘대지여」(1962) 등은 고향 상실과 새 땅에서의 희망이 교차하는 언어였다.

김세일 문학의 백미는 단연 장편소설 「홍범도」(1968~69)다. 이 작품은 고려인들에게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장군의 투쟁과 삶을 그려낸 이 소설은,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에게 “우리는 역사의 당당한 주인공이다”라는 자긍심을 되찾아주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미 전설 같은 이름이었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는 멀어진 조국의 상징이자 희망의 불씨였다. 김세일은 이 인물을 문학으로 복원하며, 흩어진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1989년, 그는 한국에서 소설을 전면 개작해 출간했고, 1990년에는 후반부를 새롭게 보강해 완성했다. 이는 단순히 한 작가의 집필이 아니라, 조국과 디아스포라를 잇는 다리였다.

김세일은 시에서 “내 고향 원동을 자랑하노라”고 노래하며 뿌리를 잊지 않았고, “우리는 새 땅에 살아요”라고 외치며 이주지에서 살아남은 강인함을 기록했다. 그의 문학은 늘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새 땅에서의 생존, 그리고 역사적 자긍심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따라서 김세일은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붙잡은 증언자였다. 그의 작품은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역사와 갈망을 압축한 기록이었다. 이에 김세일의 문학은 지금도 고려인 공동체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믿음기자 sctm03@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고려인마을 #고려인 #재외동포 #광주광역시 #역사마을1번지 #광주여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