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그림에 대한 나름의 정의가 흔들리고 세워지고, 다시 심하게 흔들리고. 세워지고를 반복하는 긴 세월이 그림 그리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포기 때문인지. 진실을 파악했다는 말도 안 되는 조그만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에 진리는 아무 곳에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든,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다른 직업을 선택했든 살아가는 과정 중에 생기는, 생활에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신념을 염두에 두는 일이 진리라는 생각을 한다. 하잖다고 이야기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단 자기 생각이 자신 안에서 편하면 된다.
[시사의창 2025년 9월호=이두섭 작가] 진리라는 것의 실체는 사실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 감정이 쓸데없이 소비되고 자신 안에 연민이 공존한다. 그림에 생명이 있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도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겠지. 그림을 그리면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은, 일단 작가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완성되는 시점부터 아름다움이라는 추상명사가 박제되지만, 그 자체가 동사화되는 방법이 없을까. 어스름한 빛들이 창가에 기웃대는 저녁 무렵 화실에 불을 켠다는 생각을 잊은 채 제작 중인 작품들을 바라본다. 화실 공간이 어항이라면 나는 어항 속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물고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외라는 말이 어떤 건지 제값을 알 것 같은 오늘. 눈으로 그림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꽤 오랜 시간 그림들을 붓 대신 눈으로 그림들을 더듬었다.
완벽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혼자서 다닐 때가 많다.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지역에서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혼자 술을 하다 보면 그 혼자의 시간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내 이야기를 내가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와의 대화가 이루어져 또 다른 나와 소통하는 시간. 이 시간이 좋아 그 상황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편이다. 전에 오사카에서 기차로 30여분 걸리는 사야마(狭山)라는 지역에 간 적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길이었다. 계획 없는 여행. 그래서 우연히 마주치는 약속 없는 풍경이나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라서 유명 관광지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여행이다. 그래서 오게 된 사야마. 평범한 동네이다.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길을 가다 보니 언덕 위로 여름날의 흰 뭉게구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길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를 오르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넓은 저수지. 일본에서 최초로 조성된 저수지라고 안내가 있었다. 그 옛날 백제와 중국에서 저수지 축조 기술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야마 이케(狭山池, Sayama-ike). 넓은 저수지의 풍경이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인근의 오사카 사야마 이케 박물관. 그곳의 건물이었다. 저수지를 염두에 두었을까. 물의 정원이라는 컨셉트로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그의 특유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의 아름다움이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대하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한 분위기가 압도하는 그의 건축에서 물의 정원이라는 주제답게 건물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만들어낸 그사이의 공간 속을 걸었다.가끔 연락하며 지냈던 건축가가 그랬다. 건물에서 중요한 것은 동선이라고. 동선이 물이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울 때 그 건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한걸음, 두걸음, 하나씩 누적되는 발자국 위로 물소리가 발걸음 소리를 덮는다. 물소리가 들려도 지금 나의 세상은 실로 고요하다. 누적되는 시간의 중심에 서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누적된 붓 자국의 의미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로 발전되는 이곳 사야마에서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안도 타다오의 건물이 만들어낸 물소리는 나를 각성시킨다. 다른 시공간에서 나를 확인하는 스스로 소속감과 혼자라는 것의 타당과 합리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행복을 느낀다. 물질보다 앞서는 나만의 세상에서 안도한다. 무의미한 붓질이 만들어내는 나만의 세상에서 탈 기술적인 접근을 통해 우연성과 무의식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신뢰한다. 전통적 재현의 틀, 테크닉 중심의 표현은 그냥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고 싶다. 구름 얼마나 아름다운 유기적 형상인가. 인정하자. 전통적 테크닉을. 그러나 나의 것은 증발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 간주하자. 길을 걸을 때 길옆으로 시키지 않아도 피어 있는 풀들의 아련한 향기. 그것으로 나의 것을 완성하자.
사야마 이케(狭山池, Sayama-ike)를 걷다가 작은 언덕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과 바람과 풀들과 접촉하는 오늘, 역시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냥 보기로 했다. 의미 이전에 있는 무한한 지역의 어두움에서 아직은 사유하며,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한 정도만큼만 인지 하기로 했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각들의 어지러움과 난해함을 피하지 말자. 어느 곳에 던져져도 나를 잃지 말자는 믿음으로 이번 생을 유지하자. 부드러운 노래는 사람의 귀에 거슬리지 않고 좋은 그림은 비가 오나 바람 불거나 흐리거나 맑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느낌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미술 수집 전문가가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세상에서 남들과 다른 부분의 수준까지 오른 사람이므로 그들의 이야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자기 세계에서 진리를 찾느라 마음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내야만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겠지.
오늘도 혼자의 세계에서 우왕좌왕, 그리고 갈등의 모든 상념의 늪에 깊게 빠졌다. 모든 것들이 무르익느라 비바람을 맞는다는 생각으로 위안 삼는다. 깊은 밤 소리 없이 캔버스를 스치는 붓질들이 속절없이 퇴색되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복잡한 상념의 갈등으로 생긴 결과는 정확한 목표를 세워 스트레스받거나 강박에 빠져 스스로 묶이지 않는 모습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나가기로 결정되었다. 풀잎을 스친 바람이 상큼한 냄새를 묻혀 내 곁을 스친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