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한국 마술계는 전례 없는 부흥기를 맞이했었다. 세계 최초로 정규대학에 마술학과가 개설되고, 전국 규모의 마술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며,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는 매년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마술의 신비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마술 관련 협회들이 순차적으로 설립되면서 한국 마술은 양적 성장을 거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마술계의 현실은 냉혹하다. 2004년 개설되어 20년간 한국 마술 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아보건대학 마술학과는 2024년 결국 폐과되었고, 2008년 동부산대학에 개설된 매직엔터테인먼트 학과는 2020년 학교 폐교와 함께 사라졌다. 이는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나 지방대 소멸의 문제가 아니라 마술 전공자들의 진로 한계와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시사의창 2025년 9월호=하지훈 (전)동아보건대학교 마술학과 교수] 20년째 명맥을 이어오는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조차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잡지 못하고 마술사들의 프로데뷔 무대와 동호인들의 축제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 마술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십 개로 난립한 마술협회들은 저가의 마술도구 판매와 자격증 발급에만 치중하며 진정한 마술 발전에서 멀어졌고, 방과후 마술교실은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 시국에서 단절된 경력직의 이직으로 인해 전문 강사가 부족해져 수업의 개설과 운영이 급격히 쇠퇴했다.
지적재산권 보호 : 창작 의욕 되살리는 핵심 과제
한국 마술계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지적재산권 보호의 부재다. 마술사들이 창작한 독창적인 공연과 기법들이 무단으로 복제되고 유통되면서 창작 의욕이 저하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자신의 공연에 대해 수백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은 마술 관련 지적재산권 전담 변리사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술계와 정부기관이 협력하여 (가칭)'K-매직 IP 원스톱 지원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변호사·변리사 등 전문 인력을 배치하여 창작 초기부터 저작권 등록, 표준 공연계약서 작성, 기술보호를 위한 비밀유지협약(NDA) 체결, 해외 특허 출원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마술 공연의 도구 및 연출에 대한 저작권 등록비 지원, 무대장치의 디자인·특허 출원 지원, 신작 개발 단계의 'IP 시드펀드' 운영 등을 통해 창작자들이 법적 리스크 없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미국의 'Volunteer Lawyers for the Arts'처럼 예술가를 위한 전문 법률 지원 체계를 벤치마킹하여 국내 실정에 맞게 새로운 체계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다.
국가 차원의 강사 자격 인증 시스템 구축
현재 마술강사 자격은 수십 개 협회에서 각기 다른 기준으로 발급하고 있어 품질 편차가 심하고 사회적 신뢰도가 낮다.
독일의 경우 마술강사 자격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Zauberlehrer’ 시스템을 운영하며, 3단계 역량 평가와 지속적인 보수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마술을 정식 예술교육 과정에 포함시켜 국가 공인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한국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연계하여 ‘문화예술교육사(마술 분야)’ 자격을 신설하고, 이론·실기·교수법을 포괄하는 표준화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아동 안전교육, 무대 안전 관리, 교육심리학 등 전문 영역을 포함한 종합적인 역량 평가가 필요하다.
기존 강사들을 위한 경력인정제와 함께 연간 16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의무화하여 지속적인 전문성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이는 기존 활동강사들은 소정의 경력검증을 거쳐 보수교육이수 만으로 신규 자격을 발급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인증제도의 보급과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교육으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퍼포먼스·교육·테크니컬 3개 트랙의 마이크로자격 과정을 표준화하여 다양한 진로 경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 시스템은 독립 학과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공연예술학과나 문화콘텐츠학과 내 마술 전공 트랙을 신설하여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은 도심 버스킹 루트, 가족 체험존, 야간 라이브 쇼케이스를 묶는 ‘도시형 라우팅’으로 전환하고, 마술도시 부산의 주요 거점과 연계한 마술 관광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난립한 협회들은 전국 단일 협의체로 통합하고, 자격·공연안전·아동보호·저작권 4대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지원은 행사 건수 중심에서 유료관객 비율, 외부 관람객 유입률, 지역매출 파급효과 등 성과지표 중심으로 전환하여 실질적 성과를 추구해야 한다.
마술을 단순한 공연예술에서 벗어나 심리치료나 정신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소통 도구, 기업 교육 프로그램,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으로 활용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의 마술치료 프로그램이나 삼성휴먼센터의 창의성 교육 사례를 확산시키고, AR·VR 기술과 결합한 디지털 마술 콘텐츠로 메타버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K-매직 IP 원스톱 지원센터 구축, 표준계약서·NDA 보급, 문화예술교육사(마술) 시범 연수와 지역 거점 확보 등을 시작으로 국제매직페스티벌의 쇼케이스 위크 정례화, 강사 1,000명 인증, 국내외 바이어 초청 프로그램을 안착시키고, 해외 투어·라이선스 계약 추진 등의 중장기적인 사업계획을 목표로 설정하여 추진해야 한다.
한국 마술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선사할 수 있는 강력한 문화 콘텐츠다. 지적재산권 보호와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두 축이 굳건히 설 때, 한국 마술은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서 K-컬처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