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ne-Antoinette Poisson, marquise de Pompadour, duchesse de Menars, 1721.12~176.4
[시사의창 2025년 9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핑크는 인간 감각 속에서 가장 모순적인 색 중 하나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욕망과 권력, 심지어 정치적 정체성까지 품고 있는 색이다. 우리는 흔히 핑크를 ‘사랑’이나 ‘여성성’과 연결하지만, 그 이면에는 강렬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역사적으로 핑크는 단순히 장식적 색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 욕망의 구조를 드러내는 기호였다. 마담 퐁파두르의 살구빛 핑크에서부터 현대의 정화와 치유의 핑크, 그리고 퀴어 정치성을 띤 핑크까지 핑크는 늘 이중적 의미를 띠며 욕망을 자극하고 또 억제해왔다.
마담 퐁파두르에서 정치성을 띈 핑크까지
18세기 프랑스 궁정에서 마담 퐁파두르는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으며 화려한 색채 문화를 이끌었다. 그녀의 이름을 딴 ‘핑크 드 퐁파두르’는 은은한 분홍빛으로, 여성적 매혹과 귀족적 세련됨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는 단순히 색채 취향이 아니라, 권력과 미학이 결합된 욕망의 기호였다. 당시의 핑크는 오늘날처럼 ‘순수’나 ‘아동성’의 코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성숙한 여성의 매혹, 향락적 사교문화, 그리고 소비의 권력을 드러내는 색이었다. 핑크는 여기서 욕망의 장식이자 권력의 무대 장치로 기능했다.
반대로 현대 사회에서 핑크는 ‘정화’를 위한 색으로 전환되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교도소나 병원 벽에 ‘베이커 밀러 핑크’라 불리는 톤을 칠해 폭력성과 불안을 진정시키려 했다. 부드럽고 안정적인 핑크가 인간의 심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는 핑크의 또 다른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한때 향락과 권력의 욕망을 상징했던 색이 이제는 통제와 치유, 순응을 위한 도구로 변모한 것이다. 색채 심리학적 실험에서 확인되듯, 핑크는 ‘저항’을 무디게 하고 ‘순응’을 유도하는 색으로도 작동한다. 욕망을 자극하던 색이, 역설적으로 욕망을 억제하는 색으로 기능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핑크는 또 다른 층위를 얻었다. 그것은 정치적 색으로서의 의미다. 1980년대 에이즈 위기 속에서 퀴어 커뮤니티는 나치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표시하던 분홍 삼각형을 저항의 상징으로 재전유했다. 핑크는 억압의 흔적을 전복해 연대와 해방의 기호로 바뀌었다.
또한 현대의 여성주의 운동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서 핑크는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더 이상 단순한 장식의 색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핑크색은 약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거꾸로 이용하여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로 탈바꿈한 셈이다.
색의 이중성과 욕망의 철학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왜 핑크는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른 의미들을 품을 수 있는가? 철학적 관점에서 이는 색의 이중성—즉, 욕망의 이중성과 맞닿아 있다. 라캉의 시선으로 보자면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 ‘결핍의 구조’다.
핑크는 이 결핍을 달콤하게 장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억누르는 기능을 수행한다. 욕망을 자극하면서도 억압하는 색, 바로 그것이 핑크의 본질적 아이러니다. 푸코의 권력 담론으로 본다면, 핑크는 권력의 전략적 장치다.
권력이 향락을 허용할 때는 매혹의 핑크를, 억제를 원할 때는 치유의 핑크를, 그리고 저항의 언어가 필요할 때는 정치적 핑크를 호출한다.
핑크의 역사는 곧 욕망의 역사다. 마담 퐁파두르의 궁정에서, 교도소의 차가운 벽에서, 거리의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핑크는 늘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욕망의 화려한 장식에서부터 정화의 도구, 그리고 정치적 저항까지 핑크는 우리에게 색의 단순함이 아니라 색의 복잡성을 말해준다.
결국 핑크는 욕망 그 자체처럼 결코 단일하지 않다. 욕망이 늘 결핍과 충족, 자극과 억제,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움직이듯, 핑크도 늘 양가적인 아이러니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물들여왔다. 핑크는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모순을 품은 색채적 은유이며, 우리 시대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철학적 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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