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누구나 공감하듯이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서의 갈등과 해법에 대해 들여다보았습니다. 흡연자도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고, 비흡연자 역시 담배냄새를 맡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두 권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위해 우리 사회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요즘은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는지, 대놓고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고야 맙니다. 그리고 다 피우고 버려진 담배꽁초는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도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어지러운 상황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관련 주제에 대해 2회에 걸쳐 연재 보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토끼굴 주변은 깨끗해졌지만, 풍선효과로 인해 시믽들이 주변 거리에서 흡연을 하고 있다.
[시사의창 2025년 9월호=정용일 기자]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버려지는 단일 폐기물은 무엇일까. 플라스틱 빨대도, 일회용 컵도 아니다. 바로 담배꽁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연간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약 7억 6600만㎏에 달하며, 국가와 지역, 장소를 불문하고 마구 버려지는 이 작은 쓰레기가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의 대표적 사례로 떠오르며 우리 모두가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롯데월드타워 100개를 쌓아 올린 무게…지구촌이 몸살
서울서 수거되는 담배꽁초 연 수억 개, 처리비용 수십억
그들의 ‘한 대’는 반드시 피워지고 또 반드시 ‘버려진다’
권리로 무장한 흡연자들, 공공장소는 언제나 ‘사각지대’
흡연자·비흡연자 모두의 권리, 균형을 위한 첫걸음이 중요
‘편의 대 건강’이라는 이분법적 접근, 문제 더욱 악화시켜
금연 확대보다, 흡연자 위한 합리적 공간 제공 여론도 팽배
금연 구역 확대하는 것만큼 흡연 구역 합리적 배치도 중요
개방형 흡연부스가 내뿜는 거대한 연기에 점령당한 인도
금연구역 지정하고 흡연부스 만들어도 끊이질 않는 잡음...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 출근 시간이 지난 8월 20일 오전 10시. 걷기 좋은 햇살 아래 산책을 나온 시민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하지만 보행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곧 도로변 화단, 보도블록 틈, 심지어는 하수구 입구였다. 그곳에는 여전히 익숙한 풍경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필터, 발로 밟혀 뭉개진 종이 껍질,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 수많은 담배꽁초들.
서울시 한 구청 환경미화원 김성찬(59) 씨는 하루 평균 3천 개 가까운 꽁초를 쓸어 담는다. 그는 “꽁초가 없는 날이 하루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많은 시민이 담배꽁초가 땅에 버려지면 그냥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건 하루 만에 분해되는 게 아니잖아요. 플라스틱 필터가 자연 분해되려면 10년 넘게 걸린다고 하잖아요.”
8월 26일 오전 11시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토끼굴의 모습. 담배꽁초 불법 투기로 악명높았던 장소다.
이렇게 버려진 담배꽁초는 도시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지만 건강과 환경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친다. 하나부터 열까지 백해무익한 것이 담배다. 담배는 재배에서 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환경에 부담을 준다. 담배 한 개비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드는 물은 평균 3.7리터. 1킬로그램의 담배를 줄이면 한 사람이 1년간 마실 수 있는 물을 절약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생산 공정에서도 막대한 탄소와 자원이 사용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소비 이후다. 필터에 쓰이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는 자연 분해에 수십 년이 걸리는 합성 플라스틱이다. 무심코 길에 버려진 꽁초가 빗물에 실려 하수구로 흘러가고, 결국 하천과 해양으로 유입돼 미세플라스틱으로 남는다. 해양 생물은 이를 먹이로 착각하고 삼키고, 그 피해는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도시 곳곳에 쌓이는 꽁초는 미관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 도시 홍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여름 장마철, 하수구를 꽁초로 막아 침수를 유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담배는 ‘공공의 적’이 맞는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수많은 담배꽁초가 길가에, 하수구에 버려지며 우리는 여전히 담배와의 싸움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있다.
흡연 절대금지 경고장 앞에서 버젓이 흡연을 하고 있는 한 여성.
2025년 현재, 대부분의 공공장소와 건물 내부는 금연 구역이다. 이에 따라 흡연자들은 건물 뒤편, 주차장 모서리, 혹은 인적이 드문 골목 구석으로 밀려났다. 또한 그곳에도 공식적인 흡연구역이 마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들의 ‘한 대’는 반드시 어디서든 피워진다. 그리고 끝난 뒤 또 반드시 ‘버려진다’.
직장인 박지훈(35) 씨는 “흡연자도 숨 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요즘 흡연자는 마치 죄인처럼 취급받아요. 하지만 회사에 흡연실 하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건물 뒤에서 피우고, 재떨이도 없으니 땅에 버릴 수밖에 없어요.”
흡연자들의 항변은 단순한 책임 회피만은 아니다. 실제로 공공기관과 민간 건물 다수가 금연 정책만 앞세운 채 흡연 공간 확보에는 소극적이다. ‘담배는 팔지만 피울 곳은 없다’는 현실에, 흡연자들은 음지로 몰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늘어만 간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비흡연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대학생 박나연(24) 씨는 “길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마시는 일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흡연자는 피울 권리를 주장하지만, 저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어요. 제 코앞에서 연기를 뿜고, 꽁초를 툭 버리는 건 명백한 타인에 대한 침해입니다.”
비흡연자들이 느끼는 불쾌감은 단순히 냄새나 연기뿐만이 아니다. 담배꽁초가 도심 환경을 훼손하고, 하수구를 막아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과 사례들을 매스컴을 통해서도 충분히 봐왔다. 서울시 자원순환과에 따르면, 매년 시에서 수거되는 담배꽁초는 최소 1억 개에 달하며, 수거와 처리 비용만 수십억 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매년 약 45억 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진다.
토끼굴 주변 비공식 흡연구역.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흡연 금지 구역이로서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전 세계 길거리에 버려지는 담배꽁초가 무려 4조 5000억 개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담배꽁초의 양은 7억 6,600kg으로서 이는 롯데월드타워를 무려 100개를 쌓아 올린 엄청난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하지만 그 방대한 양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당 문제는 이미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다.
환경운동연합의 김나은 활동가는 “담배꽁초는 단순한 개인의 쓰레기가 아니다. 그것은 공공의 환경에 미치는 유해한 요소이며, 권리라는 이름으로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금연 정책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갈등은 정책 공백의 틈에서 깊어지고 있다. 흡연부스 설치는 일부 도심과 지하철역 주변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설치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흡연자들은 흡연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불법 흡연이 늘어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상습 흡연 구역을 정비하고 흡연금지 구역으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해당 구역 주변의 또 다른 길거리나 골목길에서 흡연을 하고 담배꽁초 투기를 하는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등 부작용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주변에 유흥주점이 많은 도심의 골목길은 어김없이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들로 가득하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남역 주변이다. 오랜 시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길거리 흡연 및 담배꽁초 투기와 관련해 강남구청이 문제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 풍선효과를 막아내진 못한 모양새다.
강남역 8번출구 앞에 마련된 개방형 흡연부스. 타 흡연부스와 다른 점은 보행자들의 동선과 다소 떨어져 있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금연구역 지정에 ‘풍선효과’는 예견된 일...
취재진은 그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8월 2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토끼굴’이라 불리던 좁은 골목을 찾았다. 강남역 일대가 담배꽁초 불법 투기,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배수로 불법 투기에 더욱 민감한 이유는 강남역 일대는 항아리 모양 지대여서 상습 침수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배수로가 막히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찌됐든 기자가 찾은 해당 골목은 담배연기로 자욱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과거 흡연자들이 몰리며 담배 연기로 가득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이 골목이 이제 초록 인조 나뭇잎과 흰 토끼 조형물이 설치된 산뜻한 분위기의 금연 구역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총 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강남대로 환경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이 중 1억원이 투입된 ‘토끼굴’ 정비는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다. 기자가 이곳에서 1시간가량 지켜본 결과 이곳에서 흡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바닥에 담배꽁초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사람이 지나갈 때면 주변 스피커에서 “여기는 흡연 금지구역입니다. 꽁초 투기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표면적으로는 충분히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옆 골목으로 고개를 돌리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여러 장의 금연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음에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른바 ‘풍선 효과’였다. 흡연자들이 몰려있던 공간을 인위적으로 비워내자 그 인원들이 고스란히 옆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인근 건물 관리인 A씨는 “흡연자들을 쫓아냈더니 바로 옆 골목으로 옮겨갔다”며 “이건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탁상행정의 결과”,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변 골목에 한 두 명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같은 장소에서 흡연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기자가 해당 골목에서 1시간가량 주변을 살펴본 결과 흡연 금지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족히 40~50명에 달했다. 주변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토끼굴이 시작되는 지점 바로 앞에서 옆 건물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조차 흡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관리인 바로 옆에서 ‘흡연금지’라는 경고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주변은 무언의 합의가 된 흡연구역처럼 보였다.
그래서 현장에서 흡연자들의 입장도 들어봤다. 직장인 최모(27)씨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주변에 전혀 없다”며 “강남역 주변은 유동인구가 많아서 어차피 피할 수 없고, 숨어서라도 피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강남역 일대에는 서초구청이 설치한 개방형 흡연부스가 하나 있을 뿐이며, 그것도 12차로 너머 반대편(삼성전자 사옥 주변)에 있어 왕복에만 10분 가까이 걸린다. 현실적으로 이곳에서 흡연부스를 이용하러 가는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33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러한 수고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신분당선 6번 출구 앞 골목에서도 흡연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장소로서 상습 꽁초 투기 지역이다.
비흡연자들은 여전히 골목을 지날 때마다 담배 연기를 마셔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한 시민은 “공식 금연구역은 깨끗해졌지만 담배 냄새는 도리어 넓게 퍼졌다”며 “누구를 위한 정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물 관리인들도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매일같이 부탁해야 한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강남구는 “‘토끼굴’은 금연 문화 조성의 성공 사례”라고 자평하며, 하반기 중 민원이 많은 세 곳에 흡연부스를 시범 설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보여주기 식 정비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흡연 부스와 금연 구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사이의 동선을 고려한 공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자는 강남역 토끼굴 주변에 이어 삼성전자 사옥 주변의 이면도로(골목)의 흡연 및 꽁초 투기 실태와 강남구에서 1억원을 들여 설치한 개방형 제연 흡연시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시설과 주변 시민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취재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양재 방면으로 도보 2~3분 거리에 대로변 옆으로 좁은 골목길들이 있다. 예상대로 어김없이 흡연자들이 흡연을 하는 비공식적 흡연 장소다. 하지만 골목 곳곳에는 흡연금지와 꽁초투기 금지를 알리는 여러 개의 현수막과 CCTV까지 설치되었지만,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무단투기단속’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채 해당 골목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기자는 “꽁초 무단투기 단속을 하나보다”하고 단속 장면을 사진 찍으려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단속원들은 흡연자들을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흡연자들이 너무 많아 그냥 포기하고 가는 듯 보였다.
바닥에 이어 화단까지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곳곳에 수북히 쌓여 있다.
해당 골목 바닥에는 버려진 담배꽁초들 및 앞 화단에까지 수많은 담배꽁초와 기타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비흡연자들이 이 골목길을 지나가기엔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어 보였다. 공공의 통로인 그 길은 흡연자들의 전용 공간으로 보였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제연 흡연시설 쪽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서부터 해당 시설임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로가 옆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피우는 담배연기가 작은 구름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시설의 양 옆 인도로 나와 흡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설 맞은편 인도에 걸터앉아 희뿌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도 보였다. 인도를 지나가던 몇몇 여성은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막은 채 해당 구간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해당 제연 흡연시설과 앞 건물 사이의 인도 폭은 1m 60cm정도였다. 비흡연자의 입장에서 양옆에서 뿜어대는 담배연기 사이의 인도를 지나가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해당 구간을 지나던 한 여성은 “집이 근처라 자주 지나가는 길인데, 이렇게 흡연시설이 생기고부터 정말 이 길을 지나다니는 게 고역”이라며 “맞은편에는 보시다시피 인도가 따로 없고 이쪽에만 있는데 이렇게 개방된 형태의 흡연부스에서 하루 종일 담배연기가 가득하니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가 며칠간 강남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관찰한 결과, 단순한 공간 정비나 흡연부스 및 조형물 설치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흡연은 막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때 그 행동은 다른 장소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한다. 금연 조치가 성공하려면 흡연자에게도 일정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접근이 필요하다. 금연 구역을 확대하는 것만큼 흡연 구역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도심 속 흡연 문제는 단순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갈등의 문제다. 담배 연기를 피하고 싶은 사람과 피울 수밖에 없는 사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강남역의 토끼굴이 보여준 이 아이러니가 그 증거다.
담배꽁초 무단 투기는 남녀노소, 직업, 학벌, 연령을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에서조차 담배꽁초 투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근 벤치 주변에는 ‘금연’이라는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었지만 벤치 주변에는 족히 백여 개가 넘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담배꽁초 투기 앞에는 장사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흡연금지 경고장은 흡연자들에게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인다.
흡연 부스 개방형VS밀폐형 두고도 잡음
취재진은 같은 날 오후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또 다른 한 곳인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겨 보았다.
지난 6월 1일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지 두어 달이 지난 서울역 일대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금연구역 지정 안내’ 문구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현수막과 보도블록 표식이 곳곳에 설치됐다. 하지만 광장 곳곳에서는 여전히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을 하려다 단속원의 제지를 받은 시민 중 일부는 “고작 담배 하나 마음대로 못 피우게 한다”며 언성을 높였고, 노숙자 몇몇은 금연 안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도 위에 앉아 흡연을 이어갔다. 금연구역이라는 새로운 규칙이 시작됐지만, 그 실행은 아직 낯설고 불완전해 보였다.
서울역 주변이 흡연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안내 현수막이 서울역 곳곳에 걸려 있다.
서울역광장은 하루 유동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서울의 대표 관문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과 환승객이 많이 오가는 이곳은 버스 환승센터, 택시 승강장이 밀집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서울역광장 전역, 축구장 8개 넓이에 해당하는 약 5만 6800㎡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지하철 1번, 3번 출구 인근에 흡연 부스 두 곳을 설치하고, 그 외 구역에서 흡연 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중구와 용산구는 사전 계도기간을 두고 안내 문구를 수십 개 설치하며 시민들에게 새 제도를 알렸다.
서초동 삼성타운 인근 개방형 제연 흡연시설의 모습
하지만 현장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이날 오후 기자가 확인한 결과, 흡연자 상당수가 흡연 부스를 외면한 채 인근 보도나 부스 입구 등에서 흡연을 이어갔다. 단속원들은 반복적으로 안내 문구를 외쳤지만, 실질적인 과태료 부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시민은 “아직 불도 붙이지 않았다”며 단속원과 실랑이를 벌였고, 어떤 이는 “흡연 부스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되묻기도 했다. 흡연자와 단속자, 비흡연자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서울역광장 공기 곳곳에 깔려 있었다.
작지 않은 공간의 흡연부스가 설치됐음에도 부스 굳이 부스 밖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흡연자에게 그 이유를 묻자 “저도 담배를 피우지만 부스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피우는 게 좀 찝찝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다른 흡연자는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싫어서 부스 밖으로 나와 피운다”고 말했다. 이렇게 흡연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1시간 동안 60~70명에 달했다. 또한 재떨이가 6~7개나 설치되어 있음에도 부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날 서울역광장 앞 흡연부스에는 총 6개의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아침부터 정오까지 이미 천여 개에 달하는 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흡연자가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연시설과 맞은편 인도 주변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 사이 폭 1m 70cm 너비의 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은 담배연기로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서울역 주변 일대 금연구역 지정과 흡연부스 설치에 대한 비흡연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환영 일색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에 담배 연기는 국가 이미지에 해롭다”는 대학생 정씨, “길에서 담배 피우는 걸 볼 때마다 불쾌했다”는 40대 직장인 등 이들은 서울역 금연구역 지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흡연자들의 반응은 갈렸다. 일부는 “비흡연자 입장을 이해한다”며 조용히 흡연 부스를 이용했지만, 다른 이들은 “흡연구역이 너무 부족하고 동선이 멀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실제로 문화역서울284 인근이나 경의중앙선 방향에는 흡연 부스가 없어 해당 구역을 지나는 흡연자들은 마땅히 담배를 피울 곳이 없다. 단속이 강화되자 예상대로 “그냥 몰래 피우는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비교적 넓은 공간의 흡연부스가 있음에도 부스 밖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흡연 부스를 둘러싼 논란도 있다. 서울역광장 내 흡연 부스는 개방형 구조로 되어 있어 흡연 시 담배 연기가 외부로 그대로 퍼진다. 부스를 지나가던 시민 C씨는 “코를 막지 않으면 안 될 정도”라며 “차라리 밀폐형으로 연기 제거 장치라도 달았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에 보건소 관계자는 “흡연자 밀집 속도를 생각하면 연기를 부스 안에 가둬 제연기만으로 처리하기는 어렵다”며 “개방형이 오히려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에게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서울역광장 내 흡연부스 운영 주체가 코레일인 점도 행정적인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흡연과 금연, 권리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서울역 금연구역 확대는 분명히 의미 있는 첫걸음이지만, 시민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더 세심한 설계와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흡연자들에게는 충분한 공간과 선택지를, 비흡연자에게는 쾌적한 이동 환경을 제공하는 양립 가능한 대안이 없다면, 그 정책은 거리의 실랑이 속에서 무뎌질 수밖에 없다. 서울역 광장의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시사의창 10월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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