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교 시사의창 전문위원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LG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 단속은 충격을 넘어 모욕이다. 9월 4일(현지시간)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과 현지 경찰, 연방 요원들이 헬기와 장갑차까지 동원해 단일 장소에서 475명을 체포했다. 이 중 300명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단순한 불법체류 단속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의 규모와 성격이 너무도 무겁다. 이번 사태는 한미 동맹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경제 협력의 근본을 뒤흔드는 국제적 사건이다.

특히 체포 대상이 단순 불법 노동자가 아니라 고급 기술 인력이라는 점에서 분노가 커진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세운 배터리 공장은 미국이 주력하는 전기차 산업 경쟁력의 핵심 거점이다. 한국에서 파견된 엔지니어와 설치 전문가들은 공장 설비를 안정화하고 현지 인력 양성을 돕기 위해 파견된 인력들이다. 이들을 범죄자처럼 체포하고 조롱하듯 결박한 채 호송하는 장면은 미국이 ‘법 집행’이라는 명목으로 동맹국의 인력을 희생양 삼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협력의 상호 신뢰를 무너뜨린 외교적 결례다.

단속 현장의 장면은 한국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양손이 뒤로 묶인 채 군용 차량에 실려가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퍼지자, 국민들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수십 년간 한미 동맹은 ‘혈맹’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신뢰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 신뢰가 얼마나 취약한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조차 가차 없이 희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냉혹하게 확인시켰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단지 한 번의 과잉 단속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미국은 최근 이민 정책을 강경하게 추진하며 자국 내 여론을 달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조차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는 현실은, 우리 외교의 허술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 정부가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하고 경제 협력의 기반을 다져도,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동맹의 배려가 아닌 ‘법의 철퇴’였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한국 정부의 발 빠른 대처는 다행스럽게 보였다. 긴급 태스크포스를 즉시 가동하고, 체포된 한국인 약 300명을 전세기로 귀국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 것은 국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외교적 무력함이 드러난 만큼, 이번 대응은 진정한 ‘위기관리’가 아닌 ‘사후 수습’으로 남을 위험이 크다. 정부가 이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다음 위기 때도 같은 무력함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한미 관계를 동맹이라는 단어 하나로 포장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투자와 인력 교류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과 존엄이 최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한국이 단순한 ‘투자국’이나 ‘하청국’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줬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체면을 지킬 능력이 없다면, 경제 협력의 화려한 수치는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조지아 사태는 단순한 이민 단속이 아니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며, 국제 사회에서 당당한 목소리를 낼 것인지 시험하는 무대다. 이번 사건이 한 번의 해프닝으로 지나간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무례와 차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파견 인력 관리와 외교적 협상력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중받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값비싼 투자를 무기 삼아 굴욕을 감내하는 나라가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존엄을 철저히 지키는 국가,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조지아 사태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대한민국 외교의 무력함을 드러낸 사건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강한 외교 전략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정부와 국민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문교 전문위원 kmk47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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