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해체를 약속처럼 믿고 기다리던 시민들이 다시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가 내세운 강경 개혁론과 달리,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속도와 방식에서 신중론을 강조하며 발을 빼는 듯한 메시지를 연달아 냈다. 말은 개혁인데 체감은 지연이라는 인식이 쌓이자, 검찰 권한을 구조적으로 쪼갤 것이라는 기대는 “또 미뤄진다”는 체념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영장 기각이 겹치며 “내란 관련 사안은 특별재판부에서 다뤄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다시 불붙었다. 정권과 진영을 떠나, 고위 권력 사건에서조차 영장 판단의 기준과 논리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신뢰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사법부 역시 자유롭지 않다. 대선 전후로 이어진 대법원장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 지귀연 판사를 둘러싼 석방 결정과 재판 지연·뇌물 의혹까지 맞물리며 “사법은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하나”라는 질문이 더 날카로워졌다. 사실관계는 철저한 수사와 감사를 통해 밝혀야겠지만, 이번 파동이 내부 통제 실패로 인식되는 순간 사법 신뢰의 침하는 더 깊어진다. 결국 시민이 요구하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작동하는 절차와 보이는 데이터다. 제도를 없애느냐 유지하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권한 행사 전 과정을 시민 앞에 투명하게 드러내는 운영 기술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첫째, 영장 발부·기각 사유를 개인정보 비식별화 후 표준양식으로 공개하고, 유형별 통계를 분기마다 공표하면 된다. 고위공직 사건일수록 상세 요지를 공개해 ‘밀실의 추정’ 대신 ‘데이터의 검증’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둘째, 특별재판부 논쟁은 헌법 합치형 설계로 풀 수 있다. 상설 특별재판이 아니라 무작위 배당을 강화한 전문 패널 제도, 이해충돌 자동 배제, 공개 변론 원칙을 결합한 준-특별화 모델로 정치적 개입 시비를 최소화하면 된다. 셋째, 수사·기소 분리는 선언이 아니라 실무다. 대형 사건의 기소 판단을 독립 라인에서 표준 기준과 함께 기록·공개하고, 경찰·특검·공수처와의 보완 수사 프로토콜을 공개 표준으로 고정하면 된다. 넷째, 전관예우 차단은 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사건관리시스템에 전관·친소 정보를 연동해 자동 경고·자동 배제를 기본값으로 두면 된다. 다섯째, 재판 지연에는 ‘타임라인법’이 필요하다. 중대 사건에 법정 심리 데드라인을 두고, 넘길 때는 공개 사유서와 일정 재조정안을 의무화하면 된다.
정성호 장관의 신중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언제·무엇을·어떤 지표로 바꾸겠다는 로드맵을 데이터로 제시해야 한다. 특별재판부를 둘러싼 찬반도 ‘정치적 카드’가 아니라 ‘헌법과 신뢰를 함께 세우는 절차 설계’로 승부해야 한다. 검찰 해체 요구의 심층에는 권한 남용 가능성을 최소화하라는 시민의 명령이 놓여 있다. 제도를 허무는 과격함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열어 시민이 점검할 수 있게 만드는 운영 기술이 진짜 개혁이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보이는 절차에서 태어나며, 그 절차는 데이터와 시민 통제로만 유지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개혁은 구호의 단호함이 아니라 절차의 정교함이며, 그 길만이 사법 정의를 정치의 소음으로부터 구해낼 현실적 해법이다. 그렇게 할 때만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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