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시사의창 2025년 8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계급·경제적 불평등과 개인의 욕망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시각적 충격을 주는 근본적 장치는 ‘색채’다. 참가자의 유니폼, 게임 공간의 벽면 및 구조물, 운영자와 경비요원의 복장까지, 각양각색의 색이 서로 다른 욕망의 층위를 드러내며 시청자를 몰입시킨다. 본고에서는 초록·분홍·빨강·노랑·파랑 등 대표색들을 중심으로, 이들이 구현하는 욕망의 역학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1. 초록색 유니폼 : 희망의 허상과 동질화된 고통
전통적으로 초록은 생명·회복·평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착용한 초록 유니폼은 ‘재생’과 ‘치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써 경제적 절망과 사회적 배제를 함의한다. 막대한 빚과 가족 부양 책임에 시달리는 이들은 유니폼을 통해 동일한 ‘생계형 피해자’로 집합되지만, 그 속에서 개개인은 고유한 삶과 고통을 지닌 존재다.
초록색 유니폼은 참가자를 ‘통제 가능한 무리’로 전락시킨다. 탈개인화된 복장은 심리적 동질감을 조성하지만, 역설적으로 동시에 개인의 개별적 욕망(삶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 가족을 지키려는 욕구)을 가려버린다. 이로써 시청자는 ‘희망’이라는 상징에 속아드는 동시에, 동일한 운명 공동체로 포획된 인간 군상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2. 분홍색 경비복 : 유토피아적 폭력의 은유
경비요원과 운영자가 입은 분홍색 의상은 언뜻 ‘장난감같이 귀여운’ 인상을 준다. 그러나 분홍은 곧 ‘가짜 유토피아’를 드러내는 장치로 전환된다. 아동용 놀이복과 비슷한 디자인은 보호와 안락을 환기하지만, 실제로는 참가자를 감시하고 처형하는 도구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순진함 뒤의 잔혹함’처럼, 분홍은 가해자가 스스로의 폭력을 ‘유쾌한 게임’으로 합리화하도록 돕는다. 이 이중적 감각은 폭력과 욕망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한편, 그 이면에는 타인을 통제·처단하려는 극단적 욕망이 내재한다는 역설이다.

3. 경고색(빨강·노랑·파랑) : 규율·긴장·몰입
빨강은 경고·위험을 알리는 색이다. 게임 내 무대장치나 조명, 총구 끝의 레이저는 순간적으로 참가자의 공포를 자극하고, 그로 인해 생존에 대한 본능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시청자는 화면 속 빨간 빛에 반응하게 되고 심리적으로 동일시되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반면, 노랑과 파랑으로 보여지는 시각적 통제는 빨강과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 경로로 초점을 유도하고 있다. 노랑은 ‘주의’의 메시지를, 파랑은 ‘냉정함’과 ‘질서’를 암시한다. 집합된 색채의 조합은 일종의 ‘시각적 규율 장치’로 기능하여, 참가자와 관객 모두를 규칙 준수와 감정 통제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4. 라캉·푸코의 시선으로 본 색채의 권력
자크 라캉은 욕망을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분홍색 경비복이 ‘타자의 순진함’을 연출하듯, 색채는 욕망의 대상을 구성한다. 시청자는 분홍 너머의 폭력을 욕망하고, 동시에 게임 이면의 권력 구조를 욕망한다. 미셀 푸코가 언급한 ‘생명정치’는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오징어 게임』의 집단적 색채 시스템(참가자의 초록 유니폼, 게임장의 구조물, 분홍 경비복)은 모두 생명정치적 통제 장치다. 색으로 코딩된 규칙은 생명의 가치를 차등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가른다.

『오징어 게임』에서 색채는 단순한 미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 욕망의 파편을 조각내는 언어다. 초록은 희망의 허상을, 분홍은 유토피아적 폭력을, 경고색은 생존 본능을 설계한다. 이 드라마가 묻는 질문은 명료하다. “우리는 왜 색으로 코팅된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처단하며, 그 구조를 욕망하는가?, 당신은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떤 몸으로 살아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어떤 색을 품고 미래를 맞이해야할 것인가? 욕망과 권력의 거대한 언어의 숲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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