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8월호=김지아 칼럼니스트] 프랑스의 마카롱, 일본의 와가시, 중동의 바클라바처럼 디저트는 각국의 단맛을 넘어 정서와 철학을 품고 있다. 단순한 후식 또는 간식이 아닌 각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는 달콤한 언어인 것이다. 그 가운데 한국의 전통 디저트 이른바 K-디저트(Korean traditional Desserts)가 한류 문화와 함께 주목을 받으며 “서두르지 않는 달콤함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으로 빚는 맛 - 마음을 담는다
대부분의 현대 디저트가 설탕과 버터 등의 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단맛과 풍부한 지방의 풍미를 앞세운다면, 한식 디저트는 계절에 맞는 각종 재료를 준비하여 손질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손끝의 감각으로 조율하며 때로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리 방식조차 달라진다.
그 조리 과정에는 기능적인 기술뿐 아니라 세대를 거쳐 전승된 감각과 기억,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가 녹아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음식에 대한 문화적 가치의 재발견이자 공동체 정체성의 상징화 과정으로 바라본다. 즉, 음식 문화의 자본화(cultural capitalization of food)로 보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한식 디저트는 조리자의 정성과 섬세한 손길이 재료의 본질과 만나며 ‘정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손수 만든 것을 함께 나눈다는 점에서 정서적 연결과 공감을 이루는 ‘관계적 먹거리’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단순한 ‘맛’을 넘어서 기다림과 배려 그리고 조용한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은 강한 자극이 없어도 오래 기억되고 또 그 여운은 누군가의 손길과 계절의 풍미를 느끼게 된다.
▶계절을 담는 맛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재료도 한식 디저트의 매력이다.
한식 디저트는 봄에는 진달래 화전, 여름에는 막걸리로 발효한 증편과 오미자화채, 가을에는 밤단자 그리고 겨울에는 유자청과 약과를 내어놓는다. 이처럼 자연의 순리를 담아내는 것은 다른 어느 디저트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한식 디저트의 미학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한식 디저트는 자연의 순환을 미각으로 기념하는 행위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각 계절의 정점에 나오는 재료를 ‘지금 이 순간’ 가장 알맞게 쓰는 것이며 그 안에는 24절기와 함께 공존해 온 한국인의 시간 감각과 심미관이 깊이 자리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식재료들과 음식들이 ‘비계절적 소비’로 변하고 있지만, 한식 디저트는 여전히 계절과 24절기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단순한 맛의 기억이 아니라 봄날의 꽃내음, 여름의 싱그러움, 가을의 바람, 겨울의 군불 같은 감각적 추억을 동반한다. 떡 한 조각, 식혜 한 잔에도 계절의 기운과 만든 이와 먹는 이의 시간이 조용히 깃들어 있다.
이렇듯 한식 디저트는 계절성과 정서성을 동시에 담은 ‘감각의 문화유산’이다. 서양의 디저트가 조리법 중심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강조한다면 한식 디저트는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이는 단순한 ‘로컬 식문화(食文化)’를 넘어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 즉 기후와 풍토, 노동과 함께 만드는 시간, 그리고 거기에 녹아낸 삶의 리듬을 음식으로 번역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식 디저트는 한국인에게는 어머니의 손맛, 조상의 슬기, 추석과 설날의 기억이자 정서이다. 또한 외국인에게는 새로운 식감과 재료가 어우러진 ‘느린 단맛’의 발견이다. 바삭한 유과에서 느껴지는 고소함, 약과에서 베어 나오는 은은한 조청의 달콤함, 오미자의 오묘한 다섯 가지의 맛은 그들에게는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미각 경험이 된다.
놀랍게도 지금 한식 디저트는 북촌 한옥카페를 넘어, 뉴욕, 파리, 런던의 베이커리에도 등장하고 있다. 약과를 활용한 ‘약과 파르페’, 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크림 인절미’, 흑임자 크림 브륄레처럼 전통 재료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메뉴들이 글로벌 디저트 시장에 신선함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일시적인 트렌드로서의 확산만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슬로우 푸드’와 ‘로컬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식 디저트가 가진 정성과 자연 친화적 철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식 디저트는 그저 전통의 맛만을 고집하며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와 실험을 거듭하며 새로운 감각을 더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영양학적인 면이 아닌 문화의 언어임을 증명하는 여정이다.
결국, 한식 디저트는 단순한 후식이 아닌 한국의 사계절, 미의식, 인문학적 사유, 지연철학이 녹아 있는 ‘감각의 문화자산’이라 할 수 있다. 느리게, 그러나 깊이 스며드는 이 단맛이 더 많은 이들의 입과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어 한국 음식 문화의 깊이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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