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삶의 대명제다. 정해진 성공의 방정식을 풀어내느라 오늘도 해야 할 일에만 매달리며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 것인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면 가능하다. 또한 좋아하는 재미를 즐기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더 재밌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일상 곳곳에 있으니 함께 누려보자.

윤기가 잘잘 흐르는 감동이라는 깊은 맛이 우러난 번데기


[시사의창 2025년 8월호=서병철 작가] 세계 곳곳을 다니는 여행 관련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꼭 가야 할 명소 소개에 이어 유명한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은 단골 메뉴다. 한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지역 특파원이 음식 표현을 제대로 못 한다고 짓궂게 지적한다. 막상 본인이 출장 가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와 맛있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표현 아닌가! 곧바로 함께 출연한 패널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맛난 음식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연관된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국민여행조사>에 의하면, 여행지에서의 활동 중 ‘음식관광’ 비중이 56.5%(2019년)에서 74.3%(2023년)로 무려 17.8%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여행을 가면 누구나 별점 높은 맛집을 찾아 현지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접해보지 못한 현지식의 욕구에 대한 만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연 및 풍경 감상, 휴양, 역사 유적지, 쇼핑 등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먹는 것은 때운다는 정도로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3년 전, 홀로 여행 중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마르세유항 한 식당에 들어서면서 오늘 점심은 황교익 음식 평론가가 돼보는 거야는 마음을 먹었다. 주문한 해산물 세트가 나왔는데 얼음을 밑에 깔고, 미역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먼저 굴 껍데기에 간장 소스를 넣고, 입에 닿자마자 ‘와 신선하다’라고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 쑥 하고 넘어갔다. 굴 껍데기 안에 국물까지 마시니 깔끔했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니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소라 덮개판을 떼고 포크로 살짝 튀어나온 부위를 찔러 쭉 빼고 마요네즈 소스를 찍었다.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입으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다음은 조개, 한쪽만 달린 한국 조개와 달리 양쪽 모두 조갯살이 붙어 있다. 비린 맛이 전혀 없고 아주 싱싱하고 쫄깃했다. 홍합도 한국 것과 다르게 옆으로 길쭉한데 떼는데, 약간 신경 써야 한다. 끝맛이 살짝 비리지만 일품이었다. 마지막으로 새우는 머리를 자르고 마요네즈 소스를 찍어서 껍질째 먹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글로 묘사해 보았다. 당연히 음식 평론가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않는 수준임을 잘 안다. 그 당시에는 신나서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갔다. 흥미로운 점은 옆에 앉아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나를 자꾸 쳐다봤다. 실제 음식 평론가로 착각한 듯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식당을 나서면서 주인에게 맛이 최고였다고 칭찬해 주었더니 “고마워요. 내가 넘버원이고, 옆에 있는 친구가 이인자예요.”라고 한다.
누가 물어봤냐고? 남부 프랑스 식당에서는 음식 맛도 최고지만 늘 밝은 표정의 직원과 즐거운 대화가 음식의 뒤끝 맛을 더 해준다.

음식은 이렇게 표현해야 함을 알려 준 교과서 같은 책이 있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책에서 박찬일 셰프는 홍합의 맛을 이렇게 한 차원 높여 표현한다. “홍합 같은 조개는 그가 사는 물의 역사를 살과 껍데기에 담는다. 무수한 물이 수관을 통해서 그 조갯살에 아로새겨진다. 홍합마다 제각기 맛이 다른 것은 결국 그 물의 역사, 물맛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재미로 한 것이지만 음식을 글로 표현한 나 자신을 민망하게 만든 명문장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묘사를 뛰어넘는 음식에 대한 다른 시선이 생겼다. 흑백요리사에서 요리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유명해진 에드워드 리(이 균) 세프가 낸 책 《버터밀크 그래피티》를 본 이후다. “페퍼로니 롤이 노동자 계층의 음식이었다. 이 음식의 역할은 ‘연결’이다. 깊은 탄광에서 하루를 보낸 이는 이 작은 페퍼로니 롤 하나로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정체성, 지상의 삶과 다시 연결되었을 테니까.” 자기가 배우고 싶은 레시피를 얻기 위해 각 도시, 음식점을 찾아가는 독특한 음식 여행기가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나는 셰프가 아니기에 그와 같은 여행은 어려울 것 같지만 음식에 얽힌 음식점 주인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최근 친구 부부와 강릉 여행을 갔을 때다. 예기치 않게 가려고 계획된 식당이 단체 손님으로 인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맛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를 하면서 근처 조그만 식당을 찾았다. 주문한 곤드레 메밀전과 묵전이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쫄깃하고, 곤드레와 메밀 향이 코를 자극하며 입맛을 돋운다. 추어탕을 시켰는데 미꾸라지가 아닌 현지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넣어 맛이 독특하다. 44년 요리 경력의 여주인 손맛이 가득 담겨있는 청국장도 별미였다. 마지막 메뉴가 압권이었다. 바로 번데기다. 이렇게 윤기가 잘잘 흐르는 번데기가 있다니! 잘근잘근 씹히는 번데기에 6개의 숟가락은 쉴 새 없이 들락날락했다. 번데기가 왜 메뉴판에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예전 번데기 맛이 그리워 찾아오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메뉴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에 그녀의 마음이 전해지면서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정감이라는 맛이 더하고, 감동이 맛에 정점을 찍었다. 여주인은 나에게는 ‘감동 셰프’다.

평가 점수가 높은 맛난 음식점을 찾아서 거기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글로 묘사하는 시도를 해 보니 식재료, 향, 맛에 대해서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또한 맛난 음식을 먹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셰프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음식이 세상과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숨겨진 스토리텔링이 드러나면서 음식이 때론 감동이라는 깊은 맛을 우려낸다는 사실까지도. 음식에 대한 나의 시선이 확장된 듯하다.
나는 라면 요리를 잘 한다. 요리를 못 한다는 의미다. 내 입맛에 맞는 나만의 레시피를 언제든 만들어 먹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거기까지 못 갈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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