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과일가계에 소비쿠폰 가능 상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매장에 붙어 있는 모습.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이 시작되자마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청 개시 나흘 만에 전 국민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신청을 마치면서, 이번 정책이 침체된 소비 심리를 되살리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행정안전부는 25일 기준 소비쿠폰 1차 신청 접수자 수가 총 2889만874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체 대상자의 57.1% 수준이며, 지급 예정 금액은 5조2186억 원에 이른다. 이번 소비쿠폰은 실생활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어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시장 상인들이 직접적인 낙수효과를 누리며, 수많은 시장에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이에 서울 도심 속 한 전통시장을 방문해 그 분위기를 취재해 보았다.

서울 동작구 사당2동. 도심 속 왕복 8차선 옆에 형성된 남성사계시장. 지하철 4호선 이수역(총신대역) 14번 출구 바로 앞이 시장 입구다. 이곳은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상권에 맞서 뚝심 있게 수십년 세월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지난 수년 동안 불경기에 따른 내수침체의 여파는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 며칠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졌다. 이유인 즉, 정부의 소비쿠폰 지급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과일가계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영상 34도에 체감온도는 이미 40도에 육박한 25일 오후 2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낯에도 시장엔 장을 보러 온 시민들로 활기가 느껴졌다. 시장 입구에는 “정부 소비쿠폰 사용 가능합니다”라는 손팻말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매장 입구에 들어서 플라스틱 의자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두집, 정겨운 구수한 말씨가 뒤섞인 공간이 펼쳐졌다. 그 중심엔 한결같은 웃음기가 감도는 상인들의 얼굴이 있었다.

무더위에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면서도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만두가게의 한 직원은 기자에게 “제가 너무 더워서 본의아니게 인상이 좀 찡그러져 있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더워도 너무 더워서 그래요. 요즘처럼 손님들이 많으면 이보다 더 더워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장난끼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요즘은 더워서 인상은 찡그러져도 마음만은 항상 웃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들 둘 키우며 30년 했는데, 요즘 정말 일할 맛 나죠”

시장 곳곳에는 소비쿠폰 가능 매장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여 있었으며 이날 시장에서 만난 시민들 중 주로 젊은 사람들은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 충전을 받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폭염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면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시장에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의외로 많아 보였다.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장 중간쯤에 있는 김순자(65) 씨의 반찬가게 ‘순자네 밥상’. 진열대엔 동태전, 깻잎장아찌, 오징어채볶음, 코다리조림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김 씨는 손님에게 따끈한 나박김치 국물을 종이컵에 따라주고 있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자주 와요. 스마트폰으로 쿠폰 보여주면서 ‘이거 쓰면 얼마예요?’ 하고 묻는단 말이죠. 그러면 자연스레 말도 트고, 이런저런 반찬도 사가고… 덕분에 하루가 참 빨리 가요.”

3 지하철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도넛가계에 소비쿠폰 가능 상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매장에 붙어 있는 모습.


김 씨는 이 시장에서만 30년을 장사했다. IMF, 카드사태, 코로나19까지 수많은 고비를 겪었지만, 최근 몇 년은 불경기로 인해 힘들었다고 했다. “한 달에 냉장고 전기세도 못 벌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침에 가게 문 열면 설렙니다. 진짜로.”

그녀는 “소비쿠폰이 없었다면 손님은 여전히 마트로 갔을 것”이라며 “정부가 우리처럼 낡은 시장도 돌아봐줬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덧붙였다.

“쿠폰 들고 온 젊은 부부는 이 시장이 처음이래요”

한 정육점의 사장 박영훈(52)씨. 내내 삼겹살을 썰고 진열하느라 분주한 그에게 말을 붙이자, 박 씨는 더워도 너무 덥다면서도 손님이 부쩍 늘어 일할 맛 난다며 땀을 닦으며 한참을 웃었다. “오늘 오전 일찍 젊은 부부가 애기 유모차 끌고 와서, 소비쿠폰으로 삼겹살 1.2kg을 샀어요."라며 옆에 서 있던 남편에게 "소비쿠폰으로 이렇게 시장에서 이것저것 장도 보고 너무 좋다"라며 환하게 웃음짓던 모습을 보며 저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라고 말했다.

8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정육점에 소비쿠폰 가능 상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매장에 붙어 있는 모습.


박 씨는 “쿠폰이 단순한 할인 그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한 번 와본 사람은 ‘시장도 괜찮네’ 하고 두 번, 세 번 오게 되는 거죠. 이 시장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그래도 아직도 와보지 않은 주변 동네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소비쿠폰으로 시장도 더 알려지고 활기가 넘치니 이까짓 더위쯤이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네요."라며 환하게 웃음지었다.

골목 초입의 야채가게 ‘명진청과’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로 북적였다. 쌈채소, 가지, 고추, 참외, 감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 앞에서 허리를 굽힌 이명진(71) 사장은 무게를 재며 손님과 정을 나누고 있었다.

“시장에서 사는 재미는 깎아주고 덤 얹어주는 맛인데, 요즘은 그 재미를 처음 느낀다며 웃는 손님들이 많아요. 특히 쿠폰으로 장보는 분들, 기분이 정말 좋아 보여요.” 이 사장은 “사람이 오니까 전을 부치든, 국을 끓이든, 고기 팔든 다 잘된다”며 “사람이 곧 돈이고, 정책이 그 사람을 데려오니 시장도 사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또 “옛날엔 시장이 동네 중심이었잖아요? 지금은 좀 외진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시 사람들이 모여요. 골목길에 웃음이 돌아왔어요.”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반찬가계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손님도 행복, 우리도 행복…근데 언제까지일까, 그게 걱정”

그러나 시장 상인들이 전하는 현실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칼국숫집 주인 김춘희(54) 씨는 “요즘은 장사할 맛 나지만, 쿠폰이 끝나면 어떡하냐”며 “이 기회를 제대로 이어가야 시장도 살아남는다”고 말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시장을 많이 찾도록 상인들도 다양한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바로 옆 떡갈비집을 운영하는 사장 조한재(58)씨는 “장사꾼이 단기적인 것에 기대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솔직히 지금은 그 한 장짜리 쿠폰 하나가 매출 절반이에요. 끊기면 예전으로 돌아갈까 겁나요.”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쿠폰이 사람의 발길을 시장으로 이끌어줬다면, 그다음은 시장 자체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화장실 냄새나고, 비 오면 천장에서 물 떨어지고, 불친절하고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면 아무리 쿠폰 줘도 다시 안 와요. 우리 상인들도 정말 단합해서 노력해야 해요.”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제는 시장이 정책을 따라가야...

남성사계시장 상인회 회장 이재열 씨는 “소비쿠폰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생태계를 살리는 방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은 전통시장이 정책의 변두리에 있었어요. 이번에는 중심에 놓였죠. 그러니 반응이 이렇게 뜨겁잖아요.”

그는 상인회 차원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결제 도입 확대, SNS 홍보 교육 같은 것들도 추진 중입니다. 쿠폰 덕분에 발화는 됐고, 이제는 우리가 연료를 넣어야죠.”

푹푹찌는 폭염 속에서도 남성사계시장의 상인들 얼굴엔 웃음이 돌고 있다. 소비쿠폰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전통시장을 일깨우는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그 불씨를 어떻게 지필 것인가. 그것은 이제 상인과 시민, 그리고 행정의 몫이다. 소비쿠폰은 끝나도, 시장은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 조그만 쿠폰 한 장이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비쿠폰 지급이 시작된 지 나흘 째 되는 25일 오후 1시께 서울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의 한 안경점 출입문에 소비쿠폰 가능 상점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매장에 붙어 있는 모습.

한편 이번 민생쿠폰의 지역별 신청률을 보면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에서 특히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졌다. 인천은 61.0%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신청률을 보였고, 세종 역시 60.0%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제주와 전남은 각각 53.2%에 머무르며 비교적 조용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 시민의 경우 520만3626명이 접수해 신청률은 57.0%로 집계됐다.

지급 수단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가장 많은 국민이 선택한 방식은 신용·체크카드로, 전체의 약 74%인 2140만 명 이상이 이 방법을 이용했다. 이어 지역사랑상품권(모바일·카드형)이 444만6475명, 선불카드는 254만3600명, 지류형 상품권은 50만1047명 순이다. 이러한 선택의 폭은 각자의 소비 성향과 지역 인프라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정부는 혼선을 줄이기 위해 신청 첫 주에는 ‘요일제’를 적용했다.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요일별 신청이 가능하도록 했고, 25일 금요일은 ‘0’과 ‘5’로 끝나는 해 출생자들이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주말부터는 이러한 제한이 사라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다. 단, 1차 신청 마감일인 9월 12일 오후 6시 이후에는 신청이 불가능하므로 기간 내 접수가 필수다.

신청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게 설계됐다. 카드사 홈페이지, 앱, 콜센터, ARS 외에도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주요 간편결제 플랫폼에서도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국민을 위해 각 카드사와 연결된 은행 영업점이나, 지역사랑상품권·선불카드 신청을 위한 읍면동 주민센터 창구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번 소비쿠폰 정책은 단순한 현금성 지원을 넘어, 내수 활성화와 지역경제 회복을 동시에 노린 전략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부는 신청률이 고르게 분포되지 못한 지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안내와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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