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 기자]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폭우·폭설·폭염이 일상이 된 요즘, 지방 공직사회의 ‘비상근무 체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이나 폭설이 내리면, 새벽부터 운전대를 잡고 근무지로 향하는 공무원들은 “이게 과연 필요한 일인가”라는 회의감에 빠지고 있다.
한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은 “지난 겨울, 새벽 눈보라를 뚫고 교대를 나가다가 미끄러운 도로에서 사고 날 뻔했다. 공포감보다 허무함이 더 컸다”고 털어놨다. 그
는 “비상근무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지금의 기후 위기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구시대적 시스템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전시행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스코 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해 읍면동장의 위치를 감시하거나, 형식적인 상황보고를 반복하는 등의 행위는 실효성 없이 시간만 낭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이 악화된 날, 전화기를 재택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상체계가 작동할 수 있다”며 “날씨 때문에 어차피 현장 출동도 제한되는데, 자칫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사람을 억지로 내모는 것이 과연 책임 행정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일선 공무원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방안으로 ▲재택근무 중심의 민원접수 체계 전환 ▲응급복구 전담팀 시 차원 조직 ▲이통장과 연계한 비상 민원 수집망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관련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현재의 비상근무 규정은 10년, 20년 전 기준에 머물러 있다. 노조 차원에서도 중앙정부에 개정을 강하게 촉구해야 할 때”라며 “일개 9급 공무원이 혹서 혹한 속에 거리로 나가 있다가 다쳐야만 행정이 달라지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허둥대는 대응’은 결국 행정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물리적인 인내와 희생에만 의존하지 말고, 재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적·기술 자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시민의 안전뿐 아니라 공직자의 생명과 인권도 지켜야 하는 시대다. “누군가 또 피를 흘려야 멈출 것인가”라는 절절한 외침은 지금도 거센 눈보라와 함께 행정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시사의창 소순일 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