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2025년 7월호=김차중 작가(글/사진)]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안성에는 사시사철 푸르름이 풍긴다. 산과 호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산 아래 펼쳐진 계곡과 자연휴양림까지 모두 품은 안성은 한여름의 시원함을 즐기고 일상의 복잡한 생각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최적의 고장이다. 더위를 피해 몸과 마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 안성에 들었다.
2025년 구리에서 안성까지 개통된 세종-포천 고속도로를 타고 고삼하이패스 IC로 나오면 곧 심상치 않은 크기의 저수지가 펼쳐진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의 배경이 된 고삼호수다. 이 호수는 일출의 명소로도 알려져있지만 새벽 안개가 자욱해 몽환적 신비감을 느끼게 해 주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넓은 94만 평 규모의 호수는 마치 바다를 연상케 한다. 호수 위로 피어오른 새벽 물안개는 호숫가 어디에서도 일품이다. 하얀 안개의 베일을 드리우고 물 위로 오른 수상가옥처럼 생긴 낚시 좌대의 풍경은 근사한 동양화다.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다가 멈추면 고단한 생각도 잠시 덩달아 멈추게 한다. 호수 너머의 일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고삼면 향림마을회관 부근이다.
고삼호수의 아침 풍경을 가슴에 담고 호수 반대편 꽃뫼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가는 길 또한 호숫가를 끼고 달리는 빼어난 풍광의 드라이브 코스다. 봄에는 벚꽃이 피고 수면 위로 봉긋봉긋 피어오르는 여름의 연꽃, 가을에는 단풍 터널이 울긋불긋하고 겨울에는 온갖 철새들이 머무는 곳이다. 향림마을이 일출의 명소라면 이곳 꽃뫼마을은 일몰의 명소로 알려져있다.
호숫가 근처 꽃뫼카페휴게소라는 곳이 시선을 끌었다. 카페 앞마당처럼 펼쳐진 초록의 연잎이 밭을 이룬다. 아이들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물에서 뛰노는 거위와 오리 그리고 잉꼬도 날씨처럼 즐거운 모습이다. 양평 두물머리에 연잎 핫도그가 있다면 꽃뫼카페휴게소에는 초록 연잎으로 만든 연잎빙수가 있다. 한여름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커다란 연잎에 담긴 싱그러운 팥빙수를 주문했다.
이름까지도 어여쁜 향림마을과 꽃뫼마을을 돌아보고 차로 20여 분을 달려 금광호수 ‘하늘전망대’에 도착했다. 호수의 둘레길로 ‘박두진문학길’이 조성되었다. 2024년 9월에 완공된 하늘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박두진 길가에 설치된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곳이다. 무장애 길로 설계된 나선형의 전망대에 오르면 V자형 드넓은 호수가 한눈에 펼쳐지고 멀리 안성 시가지도 내려다보인다. 금광 호수의 풍경과 시원한 숲의 바람은 잠시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해준다. 녹음이 짙은 숲속 산책을 마치고 서운산으로 향했다.
조선 영조 시대 지리학자 신경준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 국토의 산맥을 정리한 산경표(山經表)를 만든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작은 정맥들이 뻗어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지형을 구분하였다. 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뻗어 나온 한남금북정맥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이며, 안성시 칠장산에서 서운산을 거쳐 태안반도의 지령산까지 295km에 이른다. 특히 서운산은 산에서 발원한 깨끗한 물을 담아낸 마둔호수와 680년에 창건한 고찰 석남사가 있고, 키가 큰 소나무와 활엽수로 울창한 숲을 이루어 숲에는 언제나 서늘함이 스며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배우 공유가 왕과 누이의 안위를 빌며 풍등을 날렸던 곳 석남사에 들렀다. 이 사찰은 고려 시대부터 수많은 승려가 참선했던 수행 도량이다. 사천왕상을 지나 금광루 아래 계단을 통해 오르면 대웅전에서부터 검고 묵직한 돌계단이 위용을 드러낸다. 예스럽고 웅장하여 계단을 디딜 때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느낌이다. 계단을 모두 올라 대웅전 앞에서 금광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서운산 숲속에 내려앉은 산사의 고요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5층 석탑은 수십 번 무너져 깨지고 세월에 마모되며 천년을 넘게 이곳을 지켜냈다.
숲에서 품어 나오는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석남사 계곡에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400m쯤 걸어 올라 암벽에 새겨진 불상을 마주했다. 또렷한 광배를 드리우고 연꽃 문양의 연좌대 위에서 수인 중 하나인 전법륜인(轉法輪印)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이 사선으로 흘러내리는 부분에는 이끼가 피어 더욱 오랜 과거에 묻힌 느낌을 준다.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보니 부처님 앞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할 수 있는 명당임이 틀림없다. 고른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명상에 빠져들었다.
마애불과 석남사 사이에는 작은 계곡이 흐른다. 돗자리를 매고 간식과 음료를 들고 물소리를 따라가면 자리를 펴기 적당한 곳도 있다. 산새 소리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발을 담글 수 있는 계곡물을 힘들이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고 잠시 쉬었다 간다.
여름 안성은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휴식의 공간이 된다. 고삼호수의 몽환적인 물안개와 일출, 꽃뫼마을의 푸른 자연, 금광호수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속 호수의 풍경 그리고 서운산 자락의 울창한 숲과 천년 고찰 석남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여름의 휴식처다. 그곳에서 만나는 바람과 물소리 그리고 천년의 흔적까지 소중한 기억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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