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4일 상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국내 기업지배구조가 반세기 만에 가장 큰 전환점을 맞았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을 3%로 묶는 이른바 3%룰이 부활했고, 모든 상장사는 2026년부터 전자투표·전자위임장을 상시 도입해야 한다. 또 자본시장법 위반까지 집단소송 대상이 확대돼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대폭 강화된다.
이번 법안은 2024년 말 임시국회에서 보수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자동 폐기된 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여야 정책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라 7개월 만에 극적으로 부활했다. 찬성 227·반대 53·기권 12로 가결됐으며, 여야는 “재벌 개혁”과 “투자친화 제도”라는 서로 다른 명분을 내세우며 손을 맞잡았다.
3%룰은 2021년부터 논란이 이어진 조항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측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경영 감시 기능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도 의결권이 급격히 희석되는 부작용이 지적됐다. 이번 개정안은 ‘집계 3%’ 방식을 도입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자회사 의결권을 합산 3%로 묶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중견·중소기업까지 동일 규제를 적용해 경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으나,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주 민주주의가 최소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았다”고 평가했다.
전자투표 의무화는 코로나19 이후 가속화된 비대면 주주총회 흐름을 제도화한 결과다. 주주들은 모바일로 의안을 확인·의결할 수 있고, 상장사는 주총 성립을 위한 참석률 확보 부담을 덜게 된다. 다만 IT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소규모 코스닥 기업은 시스템 구축 비용이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집단소송 대상 확대는 그동안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아닌 일반 민사소송으로 처리되던 ‘주가조작·분식회계’ 사건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송 리스크를 경영 비용에 반영하지 않은 기업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면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행령·감독규정 개정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단계적 시행을 예고했다. 법무부는 하반기 중 ‘상장사 ESG 공시 가이드라인’과 ‘전자투표 표준 플랫폼’ 구축 계획을 발표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도 K-ESG 인증제와 연결해 상법 개정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개정안 통과 직후 코스피는 1.34% 상승해 3,116선을 회복했고, 외국인 순매수 규모도 4천억 원으로 확대됐다. 블룸버그는 “상법 개정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향한 구조적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재계는 “3%룰과 집단소송 확대가 경영 불확실성을 키워 장기투자를 저해할 것”이라며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3%룰이 대주주 경영권 방어 수단 재편을 촉발할지 여부. 둘째, 전자투표 의무화에 따른 주총 문화 혁신 속도. 셋째, 집단소송 활성화로 기업 보험·컴플라이언스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지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실제 시장 신뢰로 이어지려면 감독당국의 일관된 집행과 기업의 진정성 있는 거버넌스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투자자·정부가 서로 다른 계산을 안고 있지만, 모두의 공통 관심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재평가’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KOSPI 5,000’이 허황된 구호로 끝날지, 개정 상법이 그 디딤돌이 될지는 앞으로 18개월간의 이행 과정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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