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판단하지 않은 채 듣는다. 나는 최초인 것처럼 듣는다. 나는 놀라면서 듣는다. 나는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했는지를 써낸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갖고 있고, 품고 있고, 담고 있는 주인, 품, 그릇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지금 만나는 작가의 유명세, 지위와 무관하게 내 앞의, 내 옆의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한다. -본문 중에서-

양효실 지음 ㅣ 현실문화 펴냄


[시사의창=편집부] 비평가 양효실이 지난 10여 년간 시각예술 현장에서 직접 만난 작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비평을 한 권으로 묶었다. 회화, 사진, 설치, 퍼포먼스, 퀴어 아트, 공동체 지향 작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45인 작가의 세계를 섬세하게 풀어낸 이 책은, 단순한 평론집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평가”가 예술가들과 함께 ‘함께 써낸 이야기’로 구성된다. 45인의 작가와 엮은 공동의 문장들이 나와 타자, 작가와 관객, 비평과 창작의 경계를 유연하고 흐릿하게 만들면서, 비평이란 이름의 감응적 나눔의 실천으로 탈바꿈시킨다.

《대화 비평》은 비평가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듣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양효실은 비평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거나 해석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판단하지 않은 채 듣는다. 최초인 것처럼 듣는다. 놀라면서 듣는다”라고 말하며, 비평을 감응적 나눔의 실천이자 관계 맺기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프롤로그에 담긴 여러 이야기-소년과의 조우, 강남에서의 사기 사건, 엄마의 글쓰기, 아버지의 치매-를 통해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듣기의 훈련’으로 예비된다.

양효실은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짜는’ 과정을 통해, 비평을 공저의 글쓰기 또는 공동체적 수행으로 바꿔놓는다. 이때 비평가는 정답을 내리는 주체가 아니라 “이야기의 목울대”, “메신저”이며, 이야기가 머무는 그릇이 된다. 비평이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신체와 삶의 언어가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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