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


‘전직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공권력 면허가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8일 특검 조사에 출두하며 그 말을 ‘만능 통행증’으로 둔갑시켰다. 지하 주차장으로 숨어들겠다던 그는 특검이 출입문을 봉쇄하자 5분짜리 카퍼레이드로 돌변해 창문을 내리고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포토라인에선 무쇠 입술로 침묵했으니, 드라이브 스루 민주주의의 신형 바이러스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진짜 파열음은 조사실 안에서 터졌다. “경찰에겐 조사 못 받겠다”는 변호인단의 고함이 나온 순간, 피의자가 수사관을 골라 입맛대로 조사받으려는 초유의 풍경이 펼쳐졌다. 특검은 “누가 나를 수사해달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타일렀다.

230년 전 프랑스 대혁명기 귀족들은 ‘판사가 우리 동료여야 한다’고 외쳤다가 단두대로 향했다.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계몽주의적 상식이 2025년 서울에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오후 조사도 그는 강철 같은 버티기로 일관했다. 대기실 의자에 몸을 묶고 시간을 갈아 넣는 사이, 내란 혐의 서류 더미 역시 그대로 정지했다. 특검은 “선 넘었다”고 일갈했고, 변호인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겠다고 경고했다. 내란·외환 혐의를 받는 자의 도 넘은 뻔뻔한 당당함에서 국민 대다수는 12·3 계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치를 떨어야 했다.

‘시간이 곧 무죄’라는 환상 위에 세워진 방탄 피난처, 하지만 시계는 계속 돌고 있다. 화면이 병원 현관으로 전환되면 또 다른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11일 전 긴급 입원했던 김건희 씨가 휠체어에 앉아 나타나고, 남편 윤석열이 땀 한 방울 없이 손잡이를 잡는다. 셔터 소리는 죄 없는 요람처럼 울리지만, 부부는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재벌 총수들이 즐겨 쓰던 ‘병보석 퍼포먼스’가 이번엔 전직 대통령 부부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셈이다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측근의 멘트는 로마 황후의 손수건처럼 사법 리스크를 닦아내려는 소도구다. 병상이 전략이 되고, 휠체어가 면죄부가 되는 세태, 이것이 공정의 ‘뉴노멀’이라면 우리가 알던 법치는 희극이 된다.

윤석열 부부의 쇼맨십은 그리스 비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연상시킨다. 위기마다 하늘에서 내려와 사건을 봉합하지만, 관객은 이미 작위적 장치를 알아차렸다. 실존주의자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정의 없는 질서에 맞선다고 썼다. 지금 반항해야 할 주체는 시민이다. 법이 멈춘 자리에서 조롱받는 건 약자가 아니라 제도 자체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렸을 때 그는 항공모함이 아닌 백악관 현관을 통해 걸어 나와 진술했다. 사르코지는 파리 경찰청에서 묵묵히 조서를 열람했다. 우리는 의전과 눈요기로 무장한 전직의 ‘프리패스 쇼’를 생중계로 소비하고 있다. 특검은 방청객이 아니라 무대 감독이어야 한다.

결국, 이 칼럼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형벌이 아니다. 단 한 번,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법 앞에 서서 똑같은 질문을 듣고 똑같이 대답하는 평등의 장면이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민주공화국의 마지막 자존심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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