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미국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 핵시설 3곳을 전격 공습하며 중동 무력 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가운데, 한국 산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으로서는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되자 에너지·운송·건설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광범위한 여파가 우려되고 있다.

폭 39㎞ 호르무즈에 관심…세계 석유 20% 수송./연합뉴스


이번 미국의 공격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혹에 따라 이뤄졌으며,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핵개발의 핵심 시설이 주요 타격 대상이 됐다. 미국이 이스라엘-이란 간 무력 충돌에 직접 군사력을 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란 의회는 미국의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해협 봉쇄 여부는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의 결정에 따라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35%, LNG 수송량의 33%가 통과하는 요충지로, 이 해협의 봉쇄는 단지 중동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에너지 공급망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은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 해협을 지나오는 구조여서, 실제 봉쇄가 이루어질 경우 한국의 에너지 수급 체계는 즉각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는 이미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약 10% 이상 급등한 상태며,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될 경우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가 상승은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연쇄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원유·가스 수입 단가가 오르면 전력 생산, 산업용 연료, 교통, 물류 등 전반적인 산업활동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유업계는 이미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유 수입 단가가 달러 기준으로 오르게 되면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최근 세계 경기 둔화로 석유화학 수요까지 줄고 있어 수요 위축과 원가 상승이라는 이중 악재를 동시에 맞고 있는 상황이다. 해운업계도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 18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GPS 교란으로 인한 유조선 충돌 사고가 발생했으며, 일부 선사들은 안전을 이유로 항로 우회를 검토 중이다.

항로 변경은 운항 시간과 연료 비용 증가로 이어지며, 이는 곧 운임 인상과 공급 지연이라는 악순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운임 상승이 실적 호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운임 인상과 동시에 유가와 전쟁 보험료가 함께 오르면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역시 중동 지역 리스크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이란 시장에서 철수한 한국 기업들이 많지만,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인근 국가에서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파급 효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란 핵시설 타격과 인근국의 방위비 증대가 한국 건설기업이 참여 중인 중동 프로젝트의 발주 지연 또는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한 대응을 당부했다. 항공업계도 혼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항공사들은 이미 텔아비브 노선의 운항을 전면 중단한 상태이며, 국제 항공사들도 미사일 및 드론 위협으로 인해 카스피해 북쪽이나 사우디, 이집트 남쪽 우회 항로를 이용 중이다. 이로 인해 운항 시간이 길어지고, 운영 비용 역시 상승하는 중이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에너지 전문가 스티븐 쇼크는 “이란이 해협을 봉쇄할 경우 자국의 주요 석유 수출 대상국인 인도와 중국까지 피해를 보게 돼 경제적으로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란 핵시설 공격이 궁극적으로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긴장 국면 속에서도 시장 안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란이 군사적 자존심을 이유로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2일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석유·LNG 수입, 선박 운항, 공급망 점검 등 각 부문별 상황을 면밀히 점검했다. 기획재정부도 중동 사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주재하며 중동 리스크의 실물경제 파장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비축물자 활용, 공급처 다변화, 해운·항공 노선 재조정, 기업 금융지원 등 전방위적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적 무력 충돌이 현실화되며 촉발된 이번 위기는 단순한 외교 갈등이 아닌,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시험하는 중대한 변수가 되고 있다. 유가 급등, 물류 불안, 투자 지연 등 복합적 충격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과 위기 대응 역량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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