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제 회장 이진삼 참모총장 이광은 전 LG감독(우측)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5월 23일 개최된 조철제 회장 구순 잔치를 겸한 퇴임식장에서 조철제 회장의 아내 강혜산 여사는 200백 명의 하객(賀客)들 앞에서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우리 조 회장님 백 세 잔치에 다시 한번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조철제 회장은 주지하듯이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혈손이다.
그리고 1946년 서울 태생의 강혜산 여사의 조부는 한국복싱의 원조 강낙원 선생이다. 그뿐 아니라 강 여사의 외조부는 한국 의학의 선구자 해관 오긍선 박사다.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 식으로 표현하면 조철제 회장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같은 진골이고 강혜산 여사는 한 등급 높은 성골(聖骨) 출신인 셈이다. 강혜산 여사의 외조부(外祖父) 이자 세브란스 의전 교장 오긍선 박사는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귀국, 1909년 전북 군산에 4년제 영명학교(現 제일고)에 축구부를 탄생시켰다. 1910년에 군산 초등학교 야구부를 창단시켰고 그 후에 군산시 영화동에 권투부를 포함한 <종합체육관>을 개설 군산 체육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홍성민 sm대표 강혜산 여사 조철제 회장(우측)
세월이 흘러 오 박사가 군산에 뿌린 한 알의 씨앗은 야구에 김봉연, 김성한, 김일권, 조계현, 박경완, 차우찬, 정대현 복싱에는 김득구, 박구일, 김광선, 김의진, 테니스에 전미라, 농구에 최부영, 최철권이 탄생했다, 중요한 사실은 역대 올림픽에서 양궁 박성현, 배드민턴 정소영. 야구 정대현. 복싱 김광선 등 군산시 출신 체육인들이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축구로 눈을 돌리면 김용식 선생과 더불어 <한국 축구 선구자>로 불리는 채금석 선생도 전북 군산 출신이다. 이분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고 지도자로 변신 고향 군산에서 고려대 축구 감독 남대식 을 필두로 유동춘, 최재모, 노수진, 김이주, 노상래, 조긍연, 조덕재 등 국가대표 선수를 20명을 배출하였다. 해마다 군산에서 열리는 <채금석 배> 전국 중고. 선수권 축구대회는 군산이 한국축구의 요람임을 증명해 주는 대회이다.
정태원 홍수환 챔프 전지원 소익성 이창욱 우경식 (좌측부터)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50년 보스톤 마라톤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송길윤, 한국 유도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한 정경미, 배구 국가대표 김철용, 감독도 군산 출신이다. 외조부( 오긍선 박사)와 연결된 군산지역과 인연 때문인지 강혜산 여사는 평소 3살 연하의 군산 출신 탤런트 고(故) 김수미 씨와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다. 마침 오늘 이 자리에는 오긍선 박사의 배재학당(現 배재고) 후배인 이광은 전 LG 트윈스 야구 감독도 참석, 자리를 빛내주었다. 배재고 재학시절 이광은 투수는 1973년 청룡기대회에서 군산상고와 대결 연장 15회 김일권에게 결승타를 맞고 2ㅡ1 로 패하면서 고개를 숙인 경기가 불현듯 떠오른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 시인 김소월, 한글학자 주시경, 독립운동가 지청천, 세브란스 의전 교장 오긍선 박사, 야구선수 이광은, 하기룡, 노찬엽 등을 배출한 명문이다. 프로야구에서 골든 글러브상을 4회 수상한 이광은 감독은 복싱 대통령 장정구 챔프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고 그 후 필자의 초등학교 친구인 싸움닭이라 불리던 조계현과의 연결고리(연세대학 선후배)로 더욱 친밀도를 높였다.
원로가수 박일남 선생이 1963년 발표한 <갈대의 순정>을 부르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낯익은 한 분이 필자의 시야에 포착된다. 주인공은 1996년 하계 올림픽 여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의 부친이자 원로 코미디언인 방일수 선생이었다. 순간적으로 “수현이 아빠” 하고 필자가 부르자 방일수 선생은 “어 그래, 반가워.” 하면서 필자의 손에 이끌려 강재구 김오랑, 채명신, 과 함께 참군인으로 불리는 이진삼 참모총장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사실 필자는 방일수 선생과 생면부지의 초면이었지만 희극배우답게 살갑게 대해 주셨다. 현장에서 필자는 박동안 국제심판,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챔프,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 등 3명의 복싱인과 함께 짧은 담화를 나누었다. 박동안 국제심판은 고(故) 정대은 심판처럼 지난날 한국 프로복싱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때 한 축을 담당한 엘리트(동국대) 심판이다.
1980년 5월 프로에 데뷔한 백인철은 육상과 레슬링, 축구에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만능 스포츠맨이다. 또한 바둑과 당구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재질을 보유했다. 백인철은 1988년 12월 동시대 최고 라이벌 박종팔과 대결할 때 계약체중 80Kg으로 경기를 치렀다. 69.85Kg 주니어 미들급의 백인철이 79.38Kg급 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과 불합리한 체중으로 경기를 치른 것이다. 여기에 극동 전호연 회장과 동아 김현치 회장 간에 모종의 밀약(密約)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백인철은 경기 5일 전까지 후배 복서 전주도를 파트너 삼아 연일 폭음 부족한 체중을 알콜의 도움을 받아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철은 박종팔을 상대로 9회 1분 47초 KO승을 거둔다. 햄머 펀치로 무장한 박종팔이 스타 복서였다면 침묵의 도살자 백인철은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1990년 프랑스 원정 방어전 때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은 파이트머니 문제로 전호연 매니져와 난항에 부딪친다. 이에 백인철은 훈련을 포기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등 시종일관 사보타지(Sabotage) 즉 태업(怠業)으로 일관한다. 결국 백인철은 6회 KO패를 당한 후 링을 떠나게 된다. 전호연의 극동 프로모션은 백인철의 패배와 맞물려 프로모션 폐업도 앞당겼으며 얼마 후 전호연 씨도 75세를 일기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홍성민. 이정호. 이종남. 조철제 이진삼 김영관(좌측부터)과 sm 체육관 임직원들
한편 이날 행사장에는 조철제 회장의 오랜 지인이자 사업가인 이종남 대표도 참석 동양 웰터급 13차 타이틀 방어에 빛나는 황충재 챔프를 이진삼 장군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1943년 함경도 출신의 이종남 대표에게 필자가 관심을 보인 까닭은 이 분이 전직 야구선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1960년 경기상고 재학시절 백인천, 오춘삼, 이재환이 버틴 경동고와 자웅을 겨루면서 기량을 인정받아 이듬해 경희대학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낭만이 넘치던 60년 고교야구를 평정한 경동고를 필두로 1962년 김소식, 하일의 부산고, 1966년 강문길, 임신근, 조창수의 경북고, 1969년 유남호, 이해창의 선린상고팀이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때 시절이었다. 행사장에는 또 박일규, 신성수, 이용장 대한 복싱협회 심판위원이 참석했고, 이용장, 신성수 위원과 트로이카를 형성한 현천일 위원은 야간업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축의금만 전달했다.
황충재 챔프를 이진삼장군에게 인사시키는 이종남 (중앙) 대표
한편 홍성민 대표의 SM 체육관 사단에서 그의 친동생인 SM 2관 홍성원 관장을 필두로 우경식, 정태원, 전지원, 소익성, 이창욱, 소현우, 등 10명의 젊은 관장들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대거 참석 이번 행사에 빛과 소금 같은 역할을 독톡히 하였다. 살다 보면 잠깐 만났어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매 순간 친밀하게 만났어도 잊고 지내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사연들을 종합적으로 반추(反芻)해 볼 때 이번 행사에 참석한 홍성민 SM 대표를 위시하여 SM 체육관 10명의 관장들, 이용장, 신성수, 박일규, 현천일 대한 복싱협회 심판위원, 임동술 동부 ENC 전무, 이정호 국민대 교수, 김영관 용인대 복싱부 회장에게 더욱더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신성수 이용장 박일규 심판위원 조철제 회장(우측)
조철제 회장은 지난날을 뒤로하고 원로회 회장직까지 내려놓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복싱판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분의 업적을 우리는 그분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조철제 회장이 70년대 한국 아마복싱을 아시아 무적함대로 끌어 올리면서 무소불위(無所不爲) 영향력을 발휘할 때 현장에서 그를 지켜본 당시 신문기자들이 <컴퓨터 달린 탱크>라는 닉.네임을 선물했다. 지략과 추진력을 겸비한 인물임을 함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런 뜻깊고 의미 있는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든분들에게 복싱인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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