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마술계는 전례 없는 붐을 경험했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국내 최초의 경연방식의 마술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코로나 펜데믹의 종식과 함께 전국의 축제와 행사장에서 다양한 마술공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의 확산이 자연스럽게 마술계의 발전을 이끌었고, 더 많은 마술업체와 마술사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현재 공연계에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마술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마술사의 홍수 속에서 과연 한국 마술은 정말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시사의창 2025년 6월호=하지훈 미디어컨텐츠 본부장] 지난 20년간 국내 대학에 두어개의 마술전공학과가 개설되었다가 소리없이 사라졌다.
마술학과는 프로마술사를 양성하는 곳으로, 매년 70~80여 명의 전문 마술 교육을 받은 이들을 배출하였다. 이 중에는 마술올림픽의 입상자도 나왔고 해외 유명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은 마술사도 있다.
세계 유명 마술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어떻게 마술을 학교에서 가르친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했었다. 이는 긍정적인 놀라움이라기보다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학과는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아무리 문화적인 학과라도 학문의 정립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마술학과는 개론부터 준비해야 했다. 마술학 개론이라는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2만 여쪽의 마술원서 [타벨의 마술교실]을 전문가 그룹과 함께 번역 출간했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위하여 무대연출과 축제기획의 정상급 전문가를 교수진으로 합류시켰다.
2004년부터 2023년까지 만 20년간 유지된 마술학과를 졸업한 졸업생 중 일부는 자신만의 마술 레퍼토리가 없다. 마술은 무대공연만을 위한 장르가 아니다. 마술학과의 전공 교수진은 대부분 한국 마술의 거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실력과 경험이 풍부하지만, 이론적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마술이론에 대한 것은 개인의 주관적인 실무 개념이 대부분이었다. 마술과 관련된 주변 산업 [연극, 무대기술, 영상, 광학, IOT 기술]이 학문적 영역의 마술과 접목되어 다양한 마술 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다.
매직크리에이터는 수십만의 구독자를 가진 컨텐츠 기업이 되었고 방과후 교실의 마술강좌는 전국적으로 수만명의 어린이 마술사를 키워내며 마술강사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었다.
마술의 비밀을 밝히는 게 수익이 되는 시대
마술의 기본은 비밀유지다. 비밀은 마술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넘쳐나는 디지털 정보는 거침없이 마술의 비밀을 공개했고 공중파 방송에서의 마술공개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던 마술계의 목소리를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으며 대학의 마술학과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술은 희소성으로 빛을 발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확산으로 생긴 부작용 중 하나가 ‘마술공개강의의 산발적 생산’이다. 마술해법은 이미 많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제는 기초적인 마술기술들이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의 소셜컨텐츠 계정들은 조회수와 수익을 위해 고가의 마술 자료들을 무분별하게 공유하고 있다.
마술사를 꿈꾸는 청소년들도 이런 자료들을 접하며 자신의 꿈을 굳이 대학이 아닌 곳에서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멸되어가는 지방대학의 마술전공보다는 수도권의 연관된 문화예술전공 대학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마술전공학과를 개설해야한다면 더 이상 온라인에서 접할 수 없는 고급 마술과 첨단 기술과 접목되어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공연의 영역을 발굴하는 강의를 구성하고, 최신 정보와 최고 수준의 자료들로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한국 마술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를 통해 마술이 공연예술로서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 마술이 과거처럼 고급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마술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마술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개선해 나갈 때, 비로소 한국의 마술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