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하루에도 수십 대의 고급 차량이 드나들었다던 그곳은 지금,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간판이 내려진 건물 1층 출입문에는 '미성년자출입금지' 및 '19세 미만 출입·고용 금지업소'라는 통상적인 문구만 붙어 있었다. 해당 업소는 청담명품거리와 인접해 있었으며, 업소 주변에는 빌딩과 주거시설들이 혼합되어 있었다. 큰 대로변에서 골목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 옆 주차공간이 외부의 눈에 잘 뛰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외부위 눈을 피해 접대 받기에는 좋은 구조라는 말이다.

20일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 장소로 지목된 A업소의 출입구가 닫혀 있는 모습. 현재는 간판까지 떼어 놓은 상황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을 제기하며 지목한 현장(샤르망)이다. 하지만 이 업소는 ‘룸살롱’이 아닌 ‘단란주점’으로 확인됐다. 법적으로 유흥종사자를 둘 수 없는 업소다. 이른바 고급 접대가 오가는 룸살롱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이곳은 하루아침에 정치권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번 룸살롱 접대 논란의 중심에 선 지귀연 판사는 현재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내란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핵심 재판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사 개인에 대한 접대 의혹과 정치권의 교체 압박이 맞물리며, 재판의 중립성과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간판 내린 건 15일쯤이에요. 그 전까지는 차들이 줄을 섰어요. 또한 상당수의 차들이 기사 딸린 고급 외제차들이었어요. 장사가 상당히 잘 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문을 닫으니...”

해당 업소 인근 건물이 주차관리인 A씨의 말이다. 20일 오후 현장을 찾은 시사의창 기자에게 A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래 조용한 업소는 아니었어요. 수많은 외제차들이 매일 오고 갔어요. VIP들이 오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지난주부터 조용해졌어요. 직원들도 다 안 보여요.”

A씨의 말에 의하면 해당 업소는 주로 평일에 영업을 했으며, 주차장에는 항상 외제차들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언젠가 갑자기 영업을 안하는 것 같더니 간판까지 내렸다며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문을 닫아서 좀 의아했다고도 했다.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 장소로 지목된 A업소 주변은 여러 상업용 건물과 주거시설이 혼합되어 있다.


기자가 해당 업소의 출입문 등 주변 사진을 찍자,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또 여기 기자 왔네. 며칠 전에도 와서 사진 찍더만….”

왜 하필 중요한 의혹이 터질때면, 우리는 '공교롭게도' 또는 '왜 하필'이라는 말을 여렵지않게 듣게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지 판사 룸살롱 접대 위혹을 제기한 즈음에 그렇게 장사가 잘 되던 업소가 돌연 문을 닫았을까. 간판까지 때면서까지.

20일 시사의창 취재 결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의혹을 최초 제기한 바로 다음날인 15일 해당 업소는 영업을 중단했고, 그 다음날인 16일에는 간판까지 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역시 단순 우연의 일치로 봐야할까.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관련 업계 종사자 ㄱ 씨는 21일 시사의창에 "지귀연 판사와 연루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단란주점으로 등록됐지만 불법적으로 접대부를 고용해 영업을 이어 온 상황이라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영업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영업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전했다.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 장소로 지목된 A업소의 출입구가 닫혀 있는 모습.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법적 구분은 명확했다

서울 강남구청에 문의한 결과, 이 A업소는 1993년부터 단란주점으로 신고돼 지금까지 같은 업종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업종 변경이 없었고, 단란주점의 기준상 접대부 동석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음악, 노래, 술은 허용되지만 ‘유흥종사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것은 불법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해당 업소는 단란주점으로 등록돼 있고, 단속 사항에서도 변경된 내역은 없습니다.”며 해당 업소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된 사항 또한 전혀 없다고도 했다.

정치권의 프레임은 빠르게 형성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귀연 판사가 청담동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제보를 확보했다며 대대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담당 판사로서 이번 룸살롱 접대 의혹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논란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확인차 접대장소로 지목된 해당 업소를 찾아 확인한 결과 정작 현장은 ‘룸살롱’이라 부르기엔 법적 기준조차 충족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른바 접대가 오가는 곳이 아닌, 테이블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단란주점이 전부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룸살롱 접대 의혹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명확한 사실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주당은 해당 업소가 룸살롱인지, 단란주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설령 단란주점일이라도 영업 방식이 룸살롱이었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강남에 있는 수많은 단란주점들이 출장식 접대부를 고용해 룸살롱식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단속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업소 외부에 설치된 수많은 CCTV를 통해 단속을 피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법적인 접대부 고용 영업을 뿌리뽑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단속이 이뤄져도 미리 준비된 통로를 통해 도망가거나 미쳐 빠져나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접대부와의 관계가 아는 지인이라도 둘러대면 당장 단속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 장소로 지목된 A업소의 출입구 주변에 CCTV카메라가 달려 있는 모습.


날이 갈수록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서 의혹 당사자인 지 부장판사는 “그런 데(룸살롱) 가서 접대받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평소엔 삼겹살에 소맥 한잔하며 삽니다.”라며 이례적으로 직접 해명을 내놓았다. 그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그런 데(룸살롱) 가서 접대받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평소엔 삼겹살에 소맥 한잔하며 삽니다.”

지 판사 본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반박한 모습은 단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바라보는 의혹에 대한 시선은 확신에 가까운 상황이다. 지난 14일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해당 업소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14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 부장판사가 1인당 100만~200만원 상당의 룸살롱에서 수차례 술자리를 가졌으며, 단 한 번도 본인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면서 접대 정황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노종면 원내대변인도 지 부장판사가 2023년 8월께 청담동의 해당 업소를 방문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접대 의혹을 거들었다.

이에 대해 논란이 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유흥주점의 운영자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ㄱ씨는 “우리 가게는 룸살롱이 아니다. 양주는 병당 20만~30만원으로 판매되며, 1인당 가격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지귀연 판사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년 12월에 가게를 다시 인수해 운영 중이며, 8월 당시의 운영 실태는 잘 모른다”면서도 “그때도 룸살롱처럼 운영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해당 업소 인근에서 근무 중인 ㄴ씨 역시 “여성 손님들도 자주 출입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룸살롱 같지는 않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지 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과 관련해 "당장 지 판사의 법복을 벗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아직은 무엇이 진실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 기자는 해당 업소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같은 곳을 계속 반복하며 혹시 놓친 곳이 있나 살피며 사진촬영을 하던 기자에게 다가온 한 시민은 이렇게 물었다. “여기 진짜 룸살롱이에요? 뉴스에서 그렇게 나오던데….” 기자가 “강남구청에 확인해 보니 단란주점이라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또 정치 싸움이네. 접대는 모르겠고, 이젠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지귀연 판사의 룸살롱 접대 장소로 지목된 A업소 입구 옆 주차공간이 외부의 눈에 잘 뛰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외부의 눈을 피해 접대 받기에는 좋은 구조로 보인다. 차량은 최대 15대 가량 주차가 가능해 보였다.

“이런 판사에게 역사적 재판을 계속 맡겨도 되나”

논란의 중심에 선 A업소, 굳게 닫힌 문은 말이 없다

정치적 진실 공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란주점으로 신고됐더라도 실제 운영 실태가 중요하다”며 추가 의혹을 예고했고, 국민의힘 측은 “근거 없는 흠집 내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룸살롱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향해 “이런 판사에게 역사적 재판을 계속 맡겨도 되겠느냐”며 재판장 교체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윤 본부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선대위 본부장이기 전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국회의원으로서 말씀드린다”며 “사법부의 권위는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더 이상 신뢰와 권위가 무너지기 전에 사법부가 스스로 권위를 세워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법복을 입고 지엄한 재판정에서 신상 발언을 하고, 그것도 몇 시간 안 되어 드러날 거짓말을 한 판사가 어떻게 중대한 국가적 재판을 담당할 수 있느냐”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취소한 황당한 결정이 왜 나왔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귀연 부장판사는 전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사건 재판 과정에서 “그런 데 가서 접대받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며 룸살롱 접대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이에 민주당은 지 판사가 강남 유흥주점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동석자들과 함께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의혹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연합뉴스


윤리감사관실은 현재 해당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한 상태다. 사법부 관계자에 따르면, 윤리감사관실은 국회 자료 및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기초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지 판사와 동석자들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지 판사는 현재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내란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핵심 재판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사 개인에 대한 접대 의혹과 정치권의 교체 압박이 맞물리며, 재판의 중립성과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편, 법원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잇단 의혹 제기가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명되기 전 이루어진 정치적 압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띤 폭로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법부는 현재 윤리감사관실의 조사를 바탕으로 해당 의혹이 법관 윤리에 저촉되는 사안인지 판단할 예정이며, 위법 소지가 확인될 경우 법관징계위원회 회부 등의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중요한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청담동 A업소는 문을 닫았다. 의혹도, 손님도, 진실도 떠나간 자리. 간판 없는 건물 앞에서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그 진실을 둘러싼 믿음이었을까. 정치는 시끄러웠고, 현장은 고요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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