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마복싱 살아있는 전설 조철제전무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주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주인공은 7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국내에서 기록적인 104연승을 기록하고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박일천 챔프였다. 사연인즉 강동구 모처에서 조철제 전(前)대한 복싱협회 전무와 함께 식사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현장으로 향하면서 직감적으로 1935년 5월생인 조철제 전무의 구순 잔치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조철제 전무를 만나 뵙고 식사를 함께하였다. 서두에 조철제 전무가 회장이 되어 운영해 오던 <복싱 원로회>라는 단체에 최찬웅 대한 복싱협회 회장이 매달 50만 원씩 정기적으로 지원을 해줘 감사하다는 말을 필자에게 전하면서 서문을 열었다. 조철제 전무는 70년대 대한체육회장, 대한 복싱협회 회장을 두루 역임한 김택수, 박종규 두 분과 함께 트라이앵글을 구축, 한국 아마복싱을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다.

조철제 전무가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아내 강혜산 여사의 조부(祖父)가 바로 1934년 1월 아마복싱 산파역을 담당한 한국복싱의 원조(元祖) 강낙원 선생이었던 데에 기인한다. 당시 강낙원 선생이 운영한 무도관에는 복싱과 유도를 배우기 위해 김두한을 비롯, 신마적 등 장안의 주먹들이 대거 운집해 수련을 하였다.

홍성민 SM 대표 (좌측)조철제전무 부부


이런 김두한과 인연으로 조 전무와 강혜산 여사가 결혼식을 올릴 때 김두한은 주례를 주선하였고 하야시에게 직접 부탁해 조철제를 건설회사 상무로 취직을 시켜주었다. 그렇게 김두한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필자는 이러한 전력을 보유한 한국 아마복싱의 살아있는 전설 조철제 전무의 지난날 걸어온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과거 SM 프로모션 홍성민 대표와 함께 조 회장님 자택을 수차례 방문, 담화를 나눈 바 있다.

조철제 전무는 한국 독립당을 창당한 애국지사 조소앙 선생의 혈손(血孫)이다. 조소앙 선생의 출생지가 파주인 관계로 파주 출신 영화배우 최무룡과 특별하게 친분이 두터웠고 더불어 복싱에 관심이 많은 최무룡이 프로복싱 매니저를 겸직하면서 복싱 전면에 등장하자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단계 발전되었다. 여담이지만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도 일화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한 프로급 실력을 보유한 배우였다.

조철제 전무는 무소불위의 대한 아마복싱협회 전무 자리를 10년간 담당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대회로 1974년 제7회 테헤란 아시안게임을 꼽았다. 폐막 직전까지 사격에서 강세를 보이며 금메달 14개를 획득한 북한에 밀려 한국은 금메달 11개로 종합 5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조철제 사단의 한국 아마복싱은 7체급에서 결승에 올라 박찬희, 유종만, 김태호, 김주석, 김성철 등 5체급에서 차례로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를 발판으로 한국은 북한을 간발의 차로 힘겹게 따돌리면서 일본, 이란, 중국에 이어 종합 4위를 달성하였다.

영화배우 최무룡씨와 조철제전무(우측)


탄력을 받은 조철제 사단의 한국복싱은 1975년, 1976년, 1978년 3회에 걸쳐 킹스컵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박태식, 박찬희, 황철순이 대회 최우수복서(MVP)로 선정되면서 한국복싱의 위상을 높였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무명의 고교생 황충재를 전격 발탁, 본선에서 그가 황철순, 김인창, 최충일, 박일천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뤄 금메달을 합작 북한을 따돌리는 데 복싱이 선봉이 되는 역할을 하였다.

미당 서정주가 자신을 키운건 8할이 바람이라 했듯이 황충재를 키운건 9할9푼이 조철제 회장이었다. 이 같은 내용은 황충재가 방송에 출현 직접 밝힌 내용이다. 그 대회에서 숨어있는 비화가 탄생한다. 미들급으로 출전한 장영길이 북한 선수에게 패하자 북한의 IOC 장웅 위원이 흥에 겨워 기쁨의 퍼포먼스를 연출하였다. 이에 크게 격분한 조철제 전무가 득달같이 달려가 그의 뺨을 후려갈기면서 경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뉴욕에서 제1회 월드컵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를 앞두고 조철제 전무는 김성은 박형춘 김상만 등 30대 젊은 지도자를 발탁 대표팀에 합류시켜 세대교체를 과감하게 단행하였다. 이 대회에서 황철순과 박일천이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월드컵, 올림픽,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획득, 한국 아마복싱을 탈 아시아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월드컵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창출하자 이에 크게 고무된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은 조철제 전무에게 전지훈련비 5만 불을 지원한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 전지훈련에서 폭넓은 인맥으로 현지에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그곳 선수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5만 불 전액을 대한 복싱협회에 반납했다.

황충재 챔프 조철제 전무 박일천챔프(우측)


1981년 1월 전국에 생중계된 한일 국가대항전이 일본에서 개최되었다. 그때 라이트 헤비급 에 출전한 김유현(경희대) 의 라이트 일격에 일본 사토 선수가 실신, 앰뷸런스에 실려 간다. 이때 KO승을 현장에서 지켜본 한 독지가가 김유현에게 1천만 원을 쾌척한다. 그 독지가는 삼우 트레이딩 유병언 회장이었다.

이 돈 역시 식대를 제외한 7백만 원 전액을 김유현에게 전달하자 그가 한사코 사양해 이를 조철제 전무가 협회에 쾌척, 1982년 5천6백만 원의 기금이 탄생한다. 역사적, 정치적 평가를 떠나 유병언 회장이 복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품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훗날 유병언 회장은 김치복 선수의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복싱에 강한 애착을 재확인시켰다. 세월이 흘러 유병언 회장이 타계하자 조철제 전무는 복싱인을 대표해서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였다.

킹스컵 3연패 감사패를 받는 조철제전무(좌측)


한편, 그 대회를 끝으로 10년에 걸쳐 대한민국 아마복싱을 통치한 조철제 전무는 아름다운 퇴장을 한다. 그러나 그가 떠났어도 조철제 전무에 의해 형성된 이 시드머니(Seed money)는 1997년 김승연 회장이 퇴임하면서 김운용 회장에게 인수인계 할 때 16년 사이에 17억 6천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현재도 19억 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잘 관리했다면 복리 효과로 인해 더 많은 기금으로 불어났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현장에서 지켜본 대한 복싱협회 사무국장 박형춘 선생의 전언이다. 조철제 전무는 언젠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을 앞둔 김형규, 김인규 선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최선을 다해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 눈빛에 살기를 품고 사력을 다해 강렬한 투혼으로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진삼 장군과 조철제 전무(우측)


이렇듯 한평생을 복싱과 함께 한 조철제 전무께서 필자의 예상대로 이번 주 금요일 종각역 3번 출구에 위치한 <파노라마 뷔페>에서 구순 잔치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조철제 전무 막역지우인 제28대 육군참모총장 이진삼 장군, 가수 박일남, 텔런트 조춘, 김승미 전 대표팀 감독, 프로복싱 4대 기구 국제심판 박동안 회장, 필리아시스 박치순 회장, 용인대학 복싱동문회 김영관 회장, 박형춘 전 한국체대 감독, 김진영 전 동국대 감독. 국민대학 생활체육학부 학부장 이정호 교수. 그리고 복싱 대통령 장정구 챔프를 위시하여 문성길, 유제두, 백인철, 홍수환, 박찬희, 김지원, 그리고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국위를 선양한 박일천, 황철순, 장흥민, 김인창, 김태호, 이거성, 장윤호 호계천 박인규 등 다수의 복싱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일생을 대한민국 복싱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오신 이 시대 복싱계 살아있는 복싱계 최후에 영웅(英雄) 조철제 전무의 구순 잔치를 앞두고 지난날 그분이 걸어온 길을 재조명해 보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

조철제 전무 가수 박일남씨 장정구챔프(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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