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뒤 정계은퇴와 탈당을 선언했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15일 "국민의힘에서 은퇴한 것"이라며 "대선이 끝나면 돌아가겠다"고 밝혀 정치권 복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는 사실상 정치 은퇴 선언을 뒤집는 것이자, 향후 새로운 정치 행보를 예고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국민의힘 3차 경선 진출자 발표 행사에서 경선에 탈락 후 정계은퇴 의사를 밝힌 홍준표 후보가 당사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홍 전 시장은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글에서 "나는 국민의힘에서 은퇴한 것이다. 정치 그 자체를 떠난 것은 아니다"며 "대선이 끝나고 정치 지형이 정리되면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정치 이력을 되짚으며 국민의힘의 지원 없이 홀로 승부해온 점을 강조했다. "다섯 번의 국회의원은 당의 도움이 아닌 내 힘으로 당선됐고, 두 번의 경남지사는 친박 세력의 견제와 음해를 뚫고 경선에서 승리했다. 대구시장 선거도 터무니없는 15% 경선 패널티를 받고도 당의 방해 속에 이겼다"고 밝혔다. 이어 "그 당이 나에게 베풀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궤멸한 당을 되살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대선 경선 당시를 언급하며 불공정한 경선 과정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3년 전 윤석열에게 민심에서는 압승하고 당심에서는 참패했을 때도 탈당을 고민했지만, 마지막 도전을 위해 참았다. 그러나 이번 경선에서도 사기 경선을 목격하고, 내 청춘을 바친 그 당을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홍 전 시장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드러내며, 과거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는 "30년 전 정치를 모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를 따라 꼬마 민주당에 갔더라면, 이런 의리와 도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당에서 가슴앓이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홍준표 전 시장은 검사 시절인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통합민주당 대표였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홍 전 시장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그의 자택을 찾아갔으나, 이미 신한국당 입당을 결심한 상태였다는 일화도 있다.
15일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지자 소통 채널인 '청년의꿈'에 올린 글. /청년의꿈 캡처
이번 발언은 홍 전 시장이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한 직후 밝힌 정계 은퇴 선언과는 상반되는 메시지다. 당시 그는 "이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 깨끗하게 정치 인생을 졸업한다"고 말했고, 다음날 곧바로 국민의힘 탈당계를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보름여 만에 입장을 바꿔 “대선 이후 정계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집중되고 있다. 특히 "누군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이 몹쓸 정치판을 대대적으로 청소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현 정치 구조에 대한 뼈아픈 비판이자, 홍 전 시장이 새로운 정치 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한편 홍 전 시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민주당에 갔더라면'이라는 발언을 두고 홍 전 시장이 민주당에 합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국민의힘을 탈당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에 대해 “국가경영의 꿈과 좌우 통합정부 구상에 깊이 공감한다”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홍 전 시장의 정치적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낭만의 정치인 홍준표를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홍 전 시장을 향해 “첨단산업강국을 위한 규제혁신, 첨단기술 투자 확대, 모병제 도입 등 정책 비전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홍 선배님은 상대 진영에 있었지만 밉지 않은 분이셨고, 유머와 위트, 통합의 정신을 지닌 진정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는 특히 “이번 대선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상대는 홍 선배님이었다”며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했으나, 정계 은퇴 선언으로 일합을 겨룰 기회를 잃어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앞서 홍 전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당에 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과거와는 다른 정치적 스탠스를 시사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홍 전 시장이 향후 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 전 시장 측 일부 지지자들은 13일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홍 전 시장 측은 “개별 지지자들의 행동일 뿐, 본인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홍 전 시장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홍 전 시장이 정계 복귀를 모색할 가능성, 국민의힘과의 관계 재정립, 또는 제3지대 정치 세력 형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글 말미에 “이념이나 진영이 국익보다 중요하겠는가. 모두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길 바란다”며 “미국 잘 다녀오시고, 귀국하시면 막걸리 한잔 나누시자”고 덧붙였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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