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소답청, 신윤복, 18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시사의창 2025년 5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신윤복(1758~1814)은 조선 후기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당시의 사회와 인간 군상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정제되고 간결함이 특징인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연소답청」은 단순한 봄나들이 풍경을 넘어서, 시대와 인간의 욕망,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서 피어난 청춘의 상징을 담고 있다.
파릇한 새싹들이 솟아오르고, 가벼운 새소리들이 귀를 간지럽히며 흐드러진 벚꽃은 바람에 눈꽃을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참으로 어울릴 만한 작품인 듯하다.

봄날의 유희, 청춘
‘답청(踏靑)’이란 봄의 푸른 풀밭을 밟으며 자연을 즐기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을 전후로 나들이를 나서는 풍습이 성행했는데, 이는 단지 계절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 억눌린 일상 속에서 욕망이 해방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화창한 봄날에 조랑말 타고 꽃놀이 가는 기생과 한량들의 행락 장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젊은 남녀로 구성되어 있다.
한껏 멋을 부린 청년들, 고운 옷차림의 여성들, 장난기 어린 표정, 은근한 눈짓과 몸짓. 봄날의 풍경이지만, 어쩐지 긴장과 묘한 설렘이 뒤섞인 감정선이 흐른다.
이는 단순한 자연 유희가 아니라 도시 청춘들의 감정적 교류, 나아가 조선 후기 도시 문화의 한 단면을 암시한다.

연소답청에서 보여진 푸름의 미학과 은밀한 메시지
신윤복의 그림은 섬세한 필치만큼이나 뛰어난 색채감각으로 유명하다. 「연소답청」에서도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코드와 심리적 표현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림 전반을 감싸는 푸른 들판과 하늘의 톤은 단지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靑春)의 시간과 감정을 상징한다.
‘답청(踏靑)’이라는 단어 자체에 푸르름(靑)이 들어있듯, 이 푸른빛은 억압된 도심의 일상을 벗어난 자유의 상징, 감정이 피어나는 계절의 메타포로 기능한다. 푸른 치마나 옷자락, 부드러운 잔디의 색은 새롭게 움트는 욕망과 가능성의 색이다.
특히 당시 유교적 규범 아래 억눌렸던 여성의 존재를 고려하면, 이 그림 속 여성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색채는 매우 은유적인 해방의 코드로 읽힌다.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붉은 포인트-여성의 치맛단, 장신구, 청년들의 허리띠-이 붉은색은 그 자체로 욕망의 불꽃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는 단지 장식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이 장면의 감정 온도를 상승시키는 장치다. 조선 후기 도시 문화의 은밀한 풍류와 연애감정, 그리고 감춰진 에로티시즘이 이 붉은색을 통해 드러내는 듯하다.
일부 인물의 도포나 저고리의 흰색은 조선의 절제된 미의식과 동시에 사회적 위계, 공적 세계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 속에서 여성들이 입은 연분홍, 연두, 하늘색은 개인성, 감성, 사적인 욕망을 담고 있어 대비 효과를 이룬다.
「연소답청」은 겉으로는 봄 소풍을 다룬 유희적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감정,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 사회 규범과 욕망의 이중성이 겹겹이 배어 있다.
신윤복은 그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감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회학적 기록화이기도 하다.
신윤복의 「연소답청」은 봄날의 풍속화를 가장한 감정의 풍경화이다.
색은 이 풍경 속 감정의 온도이자, 시대의 무언을 대변한다.
푸름은 자유를, 붉음은 유혹을, 흰빛은 규범을 상징하며, 이들이 어우러져 그려낸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감각적이고 상징적이다.
이 그림은 결국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색의 계절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청춘은 어떤 감정의 옷을 입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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