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삶의 대명제다. 정해진 성공의 방정식을 풀어내느라 오늘도 해야 할 일에만 매달리며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 것인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면 가능하다. 또한 좋아하는 재미를 즐기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더 재밌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일상 곳곳에 있으니 함께 누려보자.

물에 빠져 죽기살기로 빠져 나오려는 나와 웃고 있는 처형


[시사의창 2025년 5월호=서병철 작가] 누구나 어린 추억이 담긴 장소가 있을 것이다. 대천해수욕장이 나에게는 그런 곳이다. 쪼들린 살림에도 거리가 가까워서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자주 갔기 때문이다.
내가 5살 때였다. 해수욕장에서 튜브를 타고 놀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내 머리를 눌렀다. 허우적대다가 바닷물 위로 올라왔는데 한 번 더 누르는 것이 아닌가. 코와 입으로 짠물이 다시 들어가면서 눈물, 콧물로 내 얼굴은 범벅이 되었다. 끔찍했던 그 경험이 내 마음속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약점’ 방 하나가 만들어졌다. 자연스럽게 물과 멀어졌다. 물과의 첫 번째 이별이다.
이별한 친구를 만나고 싶었는데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 졸업 후 입사한 회사가 ‘신경영’을 외치며 직원들을 위해 취미 활동비 지원금을 준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갑자기 수영을 배우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막상 물에 들어가니 공포감이 여전해서 몸이 물 위에서 뜨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힘을 빼야 하는데도 몸은 더욱 경직되어서 자꾸 가라앉거나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물속에 머물기도 버거웠다.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호흡이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팔과 다리 그리고 호흡이 따로 놀고 있었다. 같이 진행했던 수강생들보다 뒤처지자 그만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두 번째 헤어짐이다.
결혼 후, 처가 식구들과 포항 보경사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커다란 물웅덩이에 몸을 담갔다. 시원해서 기분 좋았던 순간은 잠시 웅덩이 바닥이 갑자기 훅하고 꺼졌다. 내 몸이 쑤욱 밑으로 내려가며 물을 먹기 시작했다. ‘아, 폭포수가 있었는데’ 후회는 이미 늦었다. 무엇인가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옆에 아내를 잡으려 시도했는데 야속하게도 육지 쪽으로 헤엄쳐가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무척 서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만약 내가 아내를 잡았다면 둘 다 물귀신이 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내 머리는 물 안과 밖을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했다. 살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 멀리 앉아서 지켜보던 큰 처형은 나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신나게 웃기만 했다. 수영대회 메달도 땄던 물개라는 별명을 가진 처형이기에 더욱 화가 났다. ‘이러다가 죽겠구나!’라는 공포의 순간이 찾아왔다. 내 인생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가 수십 배속으로 내 눈앞에서 보이다가 그 짧은 몇 초안에 사라졌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하고 체념하는 순간,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옷을 벗어 내게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필사적으로 옷의 팔뚝 부위를 부여잡고 마침내 육지를 밟았다.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했다. 즉시 처형에게 다가가 왜 웃기만 하고 구조를 하지 않았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내가 수영을 전혀 못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는 시늉한다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죽음의 순간을 맛본 이 경험으로 인해 수영과 영영 이별을 고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결함을 지니고 있다”라고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디어도어 루빈(Theodore Rubin)은 말한다. ‘결함’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하거나 완전하지 못하여 흠이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결함을 의도적으로 감추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강점은 보여주려 안간힘을 쓰는 반면에 약점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면에 한 성공비즈니스를 위한 워크숍에서 한 강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나도 결점을 숨기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상대방에게 약점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것이 싫은 마음이 있었다. 그 약점 중 하나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이다. 물이 무서워서 수영장조차 가는 것을 꺼렸고, 더 나아가 바닷가 여행은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수영을 잘하려면 물과 먼저 친해져야 함에도 나는 물과 친해질 기회를 많이 놓쳤다. 결국 나에게는 수영이 좋아하는 취미가 아닌 결함이 된 것이다. 여러 차례를 시도했으나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단점이 있으면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은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감정적 충격인 ‘트라우마’로 발전할 수도 있다. 굳이 극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행하며 함께 살 수는 없을까? 나는 공존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구명조끼를 입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더라도 물에 대한 공포감을 없앨 수 있다. 만약 주변에 구명조끼가 없다면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인 가슴 깊이까지 물과 함께 하면 된다. 결함을 숨기지 말고, 함께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된다. 약점과 함께 살기로 한 후, 수영이라는 이별했던 결함이 나의 친구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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