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취재를 통해 속 시원하게 해결책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지난 호에 이어 연속 보도로써 ‘젠트리피케이션’에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재생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냥 바라만 볼 순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저소득층 지역의 지역민 또는 상인들이 거대 자본과 부유층들의 유입으로 인해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쫓겨나거나 해당 지역이나 마을이 갖고 있던 고유의 문화 역시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이 아닌,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문제점은 명확하지만, 해결책 또한 명확할 수 없는 난제인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요. 지난 4월호에 실린 기사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시사의창 2025년 5월호=정용일 기자] “가로수길 메인 도로는 평당 80만원이고요, 30평 매장 기준 보증금 2억 9천에 월 2400만원이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당 100만원이었는데, 80만원으로 내린 거예요. 세로수길 등 옆 블록은 평당 50만원에 가능해요.”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했던 가로수길의 현재 임대료에 대한 얘기다. 그 명성은 이미 뒤안길로 사라져 가지만, 임대료만큼은 여전히 ‘억’ 소리가 난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번화가로서 ‘신사동 가로수길’이라 불린다.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70여 미터 직진 후 좌측에서부터 약 300m 직선거리 양쪽에 다양한 카페와 패션숍, 브랜드 매장 및 팝업스토어 등이 주를 이루며 젊은 층이 가득한 장소로도 유명했다.
과거에 이곳은 그림을 파는 화랑들이 꽤 많았던 거리다. 하지만 상업화로 인해 삼각지나 홍대거리 등으로 이동하며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가로수길은 어쩌다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나..
주인 찾는 ‘팝어스토어 임대’, ‘통임대’ 글구만
“가로수길 오랜만에 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황폐해진 거리에 발길 뚝...빈 공실만 늘어나
애플스토어 20년 치 600억, 임대료 상승 견인
1년 이상 빈 공실 이어져도 건물주 ‘여유만만’
팝업스토어만 겨냥한 건물주의 이유 있는 셈법
높은 임대료·상권침체에 암흑기 지속될 전망..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길이라는 뜻이다. 멀지 않은 강남대로에 비하면 그 규모는 작지만 매우 다양한 점포들이 몰려 있고, 국내 최초의 애플 공식 매장인 Apple 가로수길이 오픈한 이후 주목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2018년 애플이 국내 최초의 애플스토어를 가로수길에 오픈하면서 자그마치 600억 원에 달하는 20년 치 임대료를 선지급한 사건은 가로수길 임대료 상승에 불을 붙였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후 우려했던 대로 가로수길 주변 건물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그렇게 한번 솟구친 임대료 상승은 공실이 넘쳐나는 요즘까지도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가로수길 젠트리피케이션의 후폭풍은 예상대로였다. 대기업들이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앞 다퉈 가로수길에 진출했지만, 이후 예상했던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거대 자본들이 떠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자라(ZARA)와 스와로브스키(Swarovski)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의 철수다. 이같이 가로수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었지만, 몰락의 길을 걸었던 다른 핫플레이스들과 가로수길이 다른 점은 국내에서의 압도적인 인지도를 등에 업고 꽤나 오랜 기간 나름대로 잘 버텨왔다는 것이다. 가로수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지는 이미 수년 전부터다, 가로수길이 쇠락기에 접어든 것은 이커머스 시장의 확대와 내수경기 침체, 코로나19 등의 악재가 겹겹이 터지면서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코로나19의 여파가 큰 이유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엔데믹 이후 명동 상권이 되살아난 것과 대조적으로 가로수길의 경우 공실률이 더욱 늘어난 것은 비단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고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가로수길에서 9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다가 2021년 매장을 닫았다는 김소영 씨는 시사의창에 “가로수길의 몰락은 제가 카페 문을 닫은 4년 전에도 그 분위기가 충분히 느껴졌다”면서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임대료에 예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해 온 영세한 상공인들이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돈’ 되는 곳에 자본 몰린 후 상권 죽는 ‘아이러니’
젊은 층의 수요를 다시 유입시킬 수 있는 특별한 상권의 색을 찾지 않는 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서울서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가로수길이다.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기고 곳곳의 빈 공실 유리창에 큼지막한 ‘임대’ 현수막이 내걸린 모습은 흉흉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롱런할 줄만 알았던 가로수길의 몰락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성수동의 급성장은 가로수길의 몰락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 주말이면 젊은 층의 성수동 쏠림 현상이 극명하며 한때 최전성기를 맞던 가로수길의 모습이 지금 그대로 성수동으로 옮겨진 듯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패션의 성지이자 가장 트렌디했던 가로수길도 이미 수년 전부터 곳곳에 공실이 눈에 보이더니 2025년 4월 현재 10여 곳이 넘게 공실인 상태다. 이 같은 모습이 더욱 눈에 잘 띄는 것은 상당수 매장들이 중대형 평수이기 때문이다. 건물이 통으로 매물로 나온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09년~2010년 가로수길의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메인도로의 양 옆 골목길로 파고들면서 지금의 세로수길, 나로수길, 다로수길과 같은 새로운 길이 파생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파생된 곳이 바로 가로수길이라는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패션과 트렌드를 선도했던 압구정 로데오 상권이 붕괴되면서 오랜 기간 극심한 침체기를 겼었지만, 요즘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1990년대 외국 유학생들의 영향으로 이국적인 취향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갖추며 ‘오렌지족’과 ‘야타족’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상권이 쇠락하며 변화를 맞았다.
압구정 로데오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개인 디자이너들은 점차 신사동 가로수길로 이동했다. 초기 가로수길은 개성 있는 소규모 브랜드와 독창적인 감각의 디자이너 매장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에 따라 상권이 점차 확장되며 가로수길은 한때 대한민국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수길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유명세를 타며 대형 브랜드와 프랜차이즈가 속속 입점했고, 초기의 개성 있는 상점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가로수길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상권의 활력이 감소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가로수길에서 파생된 세로수길 역시 주말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이다.
현재 압구정 로데오 상권은 다시 활성화되는 추세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들이 입점하고,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상업 공간이 조성되면서 젊은 층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상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한 상권의 이동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와 상업적 흐름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와 가로수길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향후 도시 개발과 상권 형성 과정에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 유지가 관건
그렇다면 이야기의 초점을 다시 가로수길로 옮겨보도록 한다. 가로수길의 바로 뒤 블록 일대인 세로수길의 경우 가로수길 서쪽 평행도로이며, 나로수길과 다로수길은 가로수길의 동쪽 평행도로다. 가로수길의 '가로'를 길[街路]이 아닌 가로[橫] 및 가나다순으로 재치 있게 해석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현재 가로수길을 대체하고 있는 세로수길의 경우 2010년 후반부터 이곳에도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 브랜드 매장들이 많이 입점하며 임대료가 폭등하게 되었고, 역시나 가로수길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매매를 원하는 건물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건물 값이 떨어지는 상황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료를 낮추는 것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차라리 공실로 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판단하는 것도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상권이 죽어가는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건물주들이 공실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이유는 대체적으로 가로수길의 건물주들이 젊고 탄탄한 재력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솟은 임대료는 떨어질 줄 모르고, 지역을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대형 평수의 공실들을 보면서 상권이 죽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공실이 많을수록 거리를 가득 메우던 다양한 콘셉트의 매장들도 당연히 줄어들기 마련이고,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해서 줄어들면서 악순환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자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가로수길에서 파생된 세로수길 역시 주말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이다.
분기별로 폐업하는 매장들이 50여 곳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일로다. 상권분석서비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4년 4분기 가로수길의 1ha당 유동인구는 8만861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가 빠진 수치이며, 이곳의 유동인구 역시 꾸준히 감소세다. 뿐만 아니라 가로수길 상권의 전반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모든 지표들도 계속해서 악화하고 있는 상태다.
지금 가로수길의 명성과 거리 분위기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몇몇 매장들마저 떠난다면 그야말로 죽은 거리나 다름없는 상황. 가로수길이나 세로수길에는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지닌 일부 매장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 건물주들 및 임차인들은 단지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홍보 및 브랜딩을 위해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원더랜즈 팝업스토어 신사’를 꼽을 수 있다.
가로수길의 경우 애플의 팝업스토어가 위치해 있는데, 이는 애플의 수익적인 측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가로수길에 해당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나 팝업스토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로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로수길이 갖는 상징적 이미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애플 매장이나 원더랜즈 등의 유명 팝업스토어마저 자리를 옮긴다면 추락하는 가로수길의 옛 명성 되찾기는 기약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차피 가로수길이 갖고 있던 기존의 정체성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개성 강한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매장들만이 즐비해진 현 상황을 롱런의 길로 이끌어갈 강력한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엣 정체성을 살리기도, 그렇다고 기존의 트렌디했던 거리로서의 명성을 되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있는 지역들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각 거리들이 갖고 있던 독특한 감성과 특징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젊은 세대들만을 위한 거리로 조성되면서 그 성격이 너무나 획일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뀐 거리는 카페, 베이커리, 디저트카페, 편집숍, 팝업스토어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기업이나 거대 자본이 아닌 이상 소상공인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살인적인 임대료에 거리는 완전히 자본가들이 잠식해 버린다.
화려하게 바뀌어버린 거리에 유동인구가 넘쳐나고 임대료는 천장을 뚫고 계속해서 치솟는다. 하지만 그렇게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린 거리도 결국 그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른 유명 거리와 다를 게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생명줄이 다하는 건 시간 문제다, 언제라도 또다시 그 열기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느 한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할지라도 자기만의 개성이나 특별함이 있지 않은 이상 특정 지역이 뜨고 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순환적으로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소위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지역, 거리는 사실 행정적인 주소 차원에서의 이동만 있을 뿐이지, 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항상 똑같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지역이나 거리의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뜨고 지는 과정은 무한 반복될 것이며, 그로 인한 소상공인들의 피해 역시 막지 못할 것이다.
지역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던 지역민이나 임차인들과 건물주 사이에서의 상생협약도 좋은 방법 중 하나지만, 지역이나 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협약도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공산이 크다. 더욱이 그러한 상생협약 자체도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기에 정부나 관할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마련이 중요하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1년 이상 공실에도 끄떡없는 건물주
팝업스토어 수개월에 1년 치 임대료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몰락’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는 가로수길의 그 실태를 보다 자세히 조사해 보기 위해 지난 성수동 취재에 이어 본지 취재진은 지난 4월 15일 오후 12시경 가로수길 일대를 방문해 보았다. 이날은 4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때아닌 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다시 겨울로 되돌려놓은 듯했다.
우선 신구초등학교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현대고등학교 맞은편 가로수길 초입부터 메인도로의 끝 부분인 신사대로까지의 구간과 바로 뒤편 세로수길과, 가로수길 맞은편 나로수길, 다로수길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가로수길의 명성이 가득한 시절, 해가 저물면 통창을 모두 개방한 대형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세련된 음악과 거리엔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약 10여 년 전 방송인 홍석천씨와의 화보촬영 후 인터뷰를 가로수길의 한 대형 카페에서 진행했는데, 당시 가로수길의 밤 풍경은 마치 365일 파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유럽의 어느 거리를 연상케 했다.
또한 그 열기는 태국의 카오산로드와도 흡사해 보였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세련미 넘치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딱히 어느 매장을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걷기만 해도 가로수길만의 그 젊고 세련된 분위기에 절로 흥이 날 정도였으니, 지금의 흉흉해진 가로수길과 비교하면 그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다. 기자가 찾은 이날 가로수길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이 맴도는 수준이었다. 거리에서 중국 및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만이 간혹 보일 뿐,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핫하다는 가로수길의 옛 명성과는 너무 큰 이질감이 느껴졌다. 특히 왕복 2차선의 가로수길 메인도로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1층 매장 유리창에 큼지막하게 붙은 ‘FOR RENT’, ‘임대’ 문구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가로수길의 현주소를 더욱 실감케 했다. 심지어는 3층이나 5층 건물이 통으로 매물로 나온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애플 팝업스토어와 몇몇 대형 매장이 그나마 가로수길의 체면치레를 해주는 모양새였다. 바로 뒤 블록 세로수길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일단 공실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대고 맞은편 초입부터 시작해 길의 중반부까지는 여러 카페와 개성 가득한 식당, 몇몇 대형 팝업스토어가 분위기를 이끌어 가지만, 길의 중간지점부터 끝 부분까지는 별다른 개성이 없는 강남 일대의 거리에는 볼 수 있는 그저 흔하디흔한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찻길 건너편으로 이동해 나로수길과 다로수길을 걸어 보았다. 이 두 거리는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에서 파생된 거리로서 주로 평수가 작은 매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는 위치는 아니지만, 개성 강한 카페나 식당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매장들이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나로수길에서 작은 퓨전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가로수길의 높은 임대료는 엄두를 못 내고 세로수길에서 매장을 운영했는데, 역시나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라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됐다”면서 “하지만 음식점은 결국 맛으로 승부해야 하는 만큼, 맛의 품질에 최선을 다하니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일부러 찾아와 주신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나로수길의 뒤 편 라인에 상권이 조성된 다로수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가로수길 대부분이 대기업의 사업장이 되어 버렸다”면서 “결국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가로수길을 거닐면서 보이는 요즘 모습은 그저 씁쓸할 따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거대 자본이 다 빠져나가고 만신창이가 된 가로수길이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가로수길 인근 부동산중개소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1층의 경우 평당 100만원이라는 철옹성 같았던 시세가 그나마 조금 떨어져 현재 80만원 수준이며, 세로수길의 경우 50만원, 나로수길, 다로수길의 경우 30만원 수준에서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기자가 주변을 둘러본 결과 건물이 통으로 공실로 되어 있는 경우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이미 상당기간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A부동산의 윤 모 대표는 “동일 건물이 상당기간 통으로 공실 상태인 상황이 맞다.”면서 “하지만 건물주의 경우 대기업 팝업스토어 몇 달만 임대해 줘도 1년 치 임대료가 나오니 아무리 공실 상황이 계속 이어져도 건물주는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로수길 주변의 건물 곳곳에는 ‘팝업 스토어 임대 문의’란 글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식이어서는 안 돼
젠트리, 결국 임차인·건물주 모두에게 피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저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만 봐도 가로수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말기 상황에 가까워 보인다. 즉, 현실적으로 죽은 상권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또 현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고 단정 짓기도 애매하다. 밤이면 공중에 설치되어 거리를 밝히는 아름다운 조명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보고자 발악을 하는 모습이랄까. 그래도 다행인 건 메인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튼 여전히 작은 평수의 개인 매장과 가게들이 상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메인거리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그중 효자노릇을 하는 건 아이돌 팝업 카페와 같은 몇몇 장소들이 다수의 젊은 층 유입에 앞장서고 있었다.
또한 세로수길의 끝자락에서 자연스럽게 신사역 주변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먹자골목의 성격을 띠면서 해가 저물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하지만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가로수길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다. 볼 것이 없고 갈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수익만을 쫓아 자본이 투입되고 새로운 성장을 거듭한 거리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치면서 그 화려함의 거품이 빠질 경우 얼마나 처참한 상황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이날 세로수길에서 만난 한 상인은 “차라리 신사역 주변의 먹자골목에서 세로수길을 거쳐 가로수길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통합해 하나의 문화거리로 조성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상권의 몰락은 막을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음식문화의 거리든, 한류를 타깃으로 한 거리 조성이든 하나의 명확한 정체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동인구가 좀 몰린다 하면 어김없이 획일적인 카페, 베이커리, 편집숍, 팝업 스토어 등이 생기고 열기가 식으면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식의 과정을 언제까지 자본주의경제체제의 논리로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요즘 열에 아홉은 가로수길에 가면 할 게 없고, 볼 게 없고, 살 게 없으니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로수길은 마치 인공호흡기를 떼기 직전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미 기존의 개성도 사라졌고, 반드시 새로운 리뉴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로수길 주변 골목으로 밀려난 상공인들은 임대료의 현실화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현재의 임대료를 낮춰 공실을 줄이고 소상공인의 재입점을 장려해야 하며, 이와 더불어 소상공인 지원을 통해 과거 가로수길 특유의 독립적인 매장을 되살리기 위한 창업 지원과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또한 다양한 업종 유치도 중요하다. 서울시는 상업 시설 다양화를 위해 식음료 업종에 대한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는 상권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온라인 및 체험형 콘텐츠 강화도 상권 회복의 방안으로 꼽을 수 있다. 오프라인 상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과 연계한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 신사동 가로수길 모습. 상당수의 건물이 공실 상태다.
가로수길의 몰락은 높은 임대료와 상권 특색의 상실이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상권 부흥을 위해서는 임대료 조정, 소상공인 지원, 그리고 특색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스쳐간 대부분의 지역들은 기존의 개성을 없앴음에도 당장은 수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매번 똑같은 도시재생이나 개발, 발전의 형태는 그 결과도 항상 처참했을 뿐이다. 이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서 상권이 붕괴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방지대책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아직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 4월호에 보도된 성수동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 성동구청은 방지대책의 일환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하고, 임대료 안정 협약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적 다양성 감소 및 상권이 획일화되는 과정에서 지역적 특성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중장기적으로 볼 때 상당한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책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나로수길의 한 건물 1층에 임대 문구가 적혀 있다.
사실 경리단길이나 신촌 상권의 사례만 보더라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임차인과 건물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적절한 상생 방안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모든 문제를 법적인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사람들이 가볼 만한 새로운 상권이 생긴다는 것은 어찌 됐든 반길 일이다. 하지만 성수동이나 을지로 인쇄골목처럼 특색 있는 상권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을지로의 경우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힙한’ 장소로 불렸던 을지로가 더 이상 그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힙하다’와 ‘을지로’를 합쳐 만든 ‘힙지로’라는 표현이 등장한 지 5년 만에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을지로는 낮에는 인쇄소와 공장이 가동되고, 밤이 되면 주점과 식당이 활기를 띠며 남녀노소가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독특한 분위기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들은 젊은 층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지역의 정체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힙지로의 몰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과거에는 오래된 건물과 공업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공간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개성을 잃고 획일화된 주점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던 공간들은 점점 사라지고, 을지로는 단순한 술자리 명소로 변모했다.
결국, ‘힙지로’가 힙하지 않게 된 것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을지로는 또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상업화로 인해 매력이 희석된 지금, 다시 한번 개성을 되찾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제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식이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특색 있는 상권들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해결 방안 모색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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