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3시, 잠결에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긴급 속보’라 적힌 알림을 열어보니 국민의힘 비대위가 후보 등록 창구를 단 한 시간, 그것도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로 열었다는 소식이다. 새벽형 인간이라도 혀를 내두를 시간표다. 결국 등록장은 한덕수 전 총리만 홀로 입장했고, 김문수 후보는 ‘알람 꺼진 사이’에 간판이 내려갔다. “정당 민주주의”라는 현수막도 함께 접혀 트럭에 실려 사라졌다니, 여의도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쓸쓸하다.
이 장면은 마치 무대 조명이 꺼진 뒤 소품팀이 슬그머니 세트를 통째로 바꾸는 상황극 같다. 그러나 관객은 전 국민이고, 티켓 값은 우리의 세금이다. 안철수·홍준표 등 당내 인사들이 “정치 쿠데타” “파이널 자폭”이라며 고성을 질러도 조연의 목소리는 생방송 음향에 묻혔다.
생각해보면 ‘체리따봉’으로 최고위원을 몰아내고, 이준석을 끌어내릴 때부터 예고편은 충분히 길었다. 김기현을 낙하산으로 내려 헌금처럼 얹고, 나경원을 솎아내고, 기세등등하던 한동훈도 강제 퇴장시킨 전적이 있지 않은가. 한 놈만 팬다는 ‘쌍권총’이 아니라, 마음에 안 들면 누구든 갈아끼우는 ‘쌍권력’의 구태다.
문제는 이 코미디가 전혀 웃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노동당 최고위도 이 정도의 기습 시나리오는 쓰지 않는다. 적어도 평양은 “수령님의 뜻”이라며 사전 예고라도 한다. 여의도판은 “깜짝 단일화”라는 핑계로 모든 절차를 뒤집었다. 정말 ‘깜짝’이긴 하다. 맛없는 부대찌개에 캡사이신만 들이부어 매운맛이라 우기는 꼴이다.
그렇다면 쿠데타의 흑막은 누구일까. 누가 귀에 대고 “이대로는 진다”고 속삭였을까. 대통령실? 친윤 직계? 아니면 언제나 무대 뒤 벽에 붙어 있던 ‘윤핵관’의 그림자?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가장 평범해 보이는 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추리만 무성하다.
더 기이한 것은 이 모든 상황이 ‘자유’와 ‘평등’을 외친다는 정당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크쇼 패널이 “정당 내 경쟁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읊기도 전에 꽃잎은 모조리 뜯겨나갔다. 당원 투표, 공정 경쟁, 후보 검증—모두 새벽 3시에 전등 꺼지듯 소등됐다. 당 내부에서도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분노가 터져 나왔지만, 사과 대신 껄껄 웃음으로 덮는 모양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뛰어난 기술보다 거짓 없는 마음이 나라를 살린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기술도 양심도 방기한 채 시계 조종술만 부리고 있다. “광야에 서서 헛되이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런 전광석화식 교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새벽에 몰래 바꾼 후보는 낮 햇빛을 못 견디고 시들기 마련이다. 삼국지의 동탁이 황제를 갈아치웠다가 서슬 퍼런 민심에 무너진 장면이 데자뷔처럼 겹친다.
희망은 남아 있다. 새벽의 헛웃음은 낮의 냉소로 이어지고, 냉소는 투표함 앞에서 결기로 변한다. 총선에서 이미 경고장을 받고도 귓등으로 들은 정치가, 대선 무대에서는 어떤 반전을 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야식 정치’ 뒤끝은 언제나 체증으로 돌아온다. 타이밍으로 포장된 무리수는 바람 앞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새벽 3시에만 피는 꽃이 과연 진짜 꽃인가. 그 꽃잎이 아침 햇살에 타들어가 쭈글거린다면, 그 무도회의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관객은 기억하고 기록한다. 역사의 기록부는 늘 정시 출근한다. 새벽 쿠데타가 아무리 화려해도 그들은 조만간 대낮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지금 국민의힘 본부 앞 시계는 거꾸로 달려 있으나 국민의 시계는 앞으로만 간다. 민주주의를 목 졸라 얻은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 코스프레일 뿐이다. 코미디라면 웃겨야 하고, 비극이라면 울려야 한다. 그런데 이 서툰 각본은 양쪽 다 실패했다. 민심의 자판기에 동전만 삼키고 음료를 뱉지 못한 채 철컥거리는 고장 난 기계처럼 서 있다.
정치는 관객이 없는 연극일 수 없고, 유권자는 소품이 아니다. 다음 씬에서 터질 웃음은 조롱이지 환호가 아닐 것이다. 국민의힘이 새벽 3시에 남긴 ‘짬짜미’의 뒷맛은 길게 남아, 결국 그들을 다시 무대로 불러내 책임을 묻는 날이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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