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규제 철회’ 카드로 맞불



[시사의창=김세전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대통령이 도입한 첨단 AI(인공지능) 칩 수출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며 ‘철회‧단순화’ 방침을 천명했다. 미 상무부는 기존 규제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관료적”이라며 “미국 혁신을 저해한다”는 판단을 내놨고, 로이터는 이를 두고 “바이든 시대 규제의 사실상 폐기를 예고했다”고 보도했다.

핵심은 ‘3단계 국가 분류’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호 동맹 18개국(한국‧일본‧대만 등) ▲중간 단계 약 150개국(인도‧사우디 등) ▲제한 국가 20여 개국(중국‧러시아‧이란‧북한)을 나눠 칩 접근 권한을 차등 적용했다. 1단계 국가는 사실상 무제한, 2단계는 연산 능력 상한선을, 3단계는 사실상 전면 차단을 받는다. 오는 5월 15일 시행을 앞두고 있었지만, 트럼프 캠프는 “우회 수출만 복잡해질 뿐”이라며 말레이시아·태국 등 ‘중개 허브’를 겨냥한 별도 통제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움직임은 미국 내 반도체 기업들의 반발과 맞물려 있다. 엔비디아 주가는 규제 완화 기대감 속에 3% 가까이 상승했다. 업계는 “규제보다 협약 기반 라이선스가 낫다”는 논리를 폈고, 상무부 역시 “더 단순한 글로벌 허가 체계”로 선회하겠다고 공언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카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HBM 등 고부가 라인업을 미국 고객사에 공급하며 AI 서버 시장을 빠르게 확대해 왔다. 바이든 체계가 유지될 경우 동맹국 지위 덕에 수출은 무제한이지만 중국‧동남아 생산 거점을 거치는 복잡한 물류망과 라이선스 절차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었다. 규제가 완화되면 공급망 탄력성은 높아지지만,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장비·소재 수출 ‘우회 단속’이 강화될 수 있어 득실 계산이 필요하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스타트업에도 기회와 부담이 교차한다. 미국 빅테크와 직접 거래 창구가 넓어질 수 있지만, 기술 이전 심사가 강화되면 R&D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국 정부의 모니터링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정부 차원에서도 ‘안보 동맹-경제 실리’ 균형점을 찾는 정교한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트럼프의 규제 철회 시도는 중국 AI 굴기를 더 강하게 견제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규제 틀을 바꾸되, 중국·러시아·이란·북한 같은 ‘3단계 국가’에 대한 봉쇄는 그대로 두겠다는 복안 때문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를 “친구에게는 열고 경쟁자에게는 더 닫는 선택적 디커플링”으로 해석한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대중 강경 기류’를 고려하면, 트럼프식 완화 역시 중국 견제 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 5월 15일 시행 예정이던 바이든표 3단계 분류 규정은 시행 직후에도 ‘잠정 동결’ 또는 ‘병행 집행’ 가능성

- 트럼프 행정부는 연내 새로운 ‘국가별 직접 협상 라이선스’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

- 말레이시아·태국 등 우회수출 허브에 대한 표적 제재 강화 시,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조립 라인도 재점검 필요

- 동맹국 내부에서도 미국산 칩 의존도를 낮추려는 ‘세컨드 소스 전략’ 확산 가능성

전문가들은 “한국은 동맹 프리미엄을 활용해 고부가 AI 칩 수주를 확대하되, 중국·동남아 경유 물류망이나 합작 공장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 역시 미국 규제가 ‘일시 완화→재강화’로 급변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복수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미·중 기술 패권 구도 속에서 ‘AI 칩’은 반도체를 넘어 국가 안보·디지털 주권의 핵심 전장으로 떠올랐다. 트럼프의 칩 규제 철회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회일지, 변수일지는 향후 미국 상무부의 세부 지침과 중국의 맞대응 수위를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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