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

이재명 후보의 재판 연기로 민주당은 모처럼 고무적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선거판은 벚꽃처럼 화사하다가도 한 줄기 바람에 잎이 흩날린다. 지난 20여 년의 대선 막판을 되돌아보면 진보 진영은 언제나 스스로 던진 ‘말폭탄’ 하나에 넘어졌다. 2004년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60·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노년 비하 논란을 자초했다. 여야 격전지에서 1~3%포인트 차이였던 판세가 이 발언 이후 대거 뒤집혔고, 한나라당은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환호했다. 정 의장은 “백배 사죄”를 외쳤으나 여론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건은 ‘노인 폄하’라는 레이블로 영구 기록됐다. 진보 진영이 입으로 제 발등을 찍은 최초의 대형 사고였다.

2012년엔 딴지일보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이름을 날린 김용민 후보가 서울 노원을 공천을 받았다. 과거 방송에서 “박정희에게 개XX” “청와대 벙커에서 야한 방송하자” 같은 저급한 농담을 내뱉은 녹취가 재생되자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패닉에 빠졌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리얼미터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총선 판세를 결정한 최대 변수를 ‘막말 파문’(22.3%)으로 꼽았고, 수도권 접전지에서 야권표 1~3%가 허공으로 날아갔다고 분석됐다. 한 후보자의 혀끝이 ‘정권 심판론’ 흐름 전체를 덮어버린 냉혹한 사례다.

같은 해 대선 두 달 전에는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했다”는 정상회담 대화록 폭로전을 펼쳤다. 문재인 캠프가 “사실무근”이라 반박했지만, 내부 참모가 “해상공동구역이면 오히려 유리”라고 언급하며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동아일보 보도대로 대화록 공개 공방이 연일 지면을 장악하자 ‘종북 프레임’이 부활했고 중도 표심은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지지율 격차는 3% 안팎으로 좁혀졌고, 대선 막판 야권은 공세보다 방어에 에너지를 허비했다.

2017년 TV 토론장에서 유승민 후보가 “북한이 주적이냐”고 묻자 문재인 후보는 두 번 머뭇거린 뒤 “대통령이 규정할 문제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선일보 등 보수 매체는 즉시 “안보 무능” 제목을 뽑았고, SNS에는 “지뢰 밟았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그 열흘 동안 문 후보 지지율은 멈췄고, 안철수 후보와의 격차도 일시적으로 오차 범위까지 좁혀졌다. 나중에 “평화 협상 상대를 주적으로 부르면 어떻게 대화하느냐”는 해명이 나왔으나 한 번 새겨진 프레임은 좀처럼 씻겨나가지 않았다.

네 차례 사고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내부에 “이 정도는 괜찮다”는 방심이 있었고,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 프레임을 씌웠으며, 부동층은 눈 깜짝할 새 등을 돌렸다. 한국갤럽 분석에 따르면 선두 캠프가 투표일 3주 안에 실언이나 악재를 맞으면 평균 4.8%포인트가 빠졌다. 선거판에서는 빈틈이 아니라 핀셋만 한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홍수가 된다. 공자는 “군자는 말조심을 덕의 첫걸음으로 삼는다”고 했다. 지지율이 높을수록 겸손과 절제가 승리의 갑옷이 된다는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즉흥적 발언 원천 봉쇄, 메시지 라인 단일화, 24시간 실언 감시 체계 가동, 그리고 후보·참모·지지자 대상 공직선거법 교육 강화다. 현장의 작은 농담도 중앙 메시지팀 검증을 거쳐야 한다. 승기를 잡았다고 무릎을 펴는 순간, 말이 먼저 달아나고 지지율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링컨은 “사람은 말할 때보다 들을 때 재난을 피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선거는 내일을 약속하는 거래다. 거래 조건 중 첫째가 믿음, 둘째가 겸손, 셋째가 일관된 메시지다. 겸손과 절제, 그리고 한 발 낮은 자세가 승리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여는 열쇠다. 방심은 곧 패배다. 지금은 혀끝에 고삐를 물려야 할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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