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한국 증시가 또다시 정치 테마주의 광풍에 흔들리고 있다. 주가는 기업의 실적이나 산업 전망, 기술력보다는 정치인의 이름 석 자에 휘둘리고, 정치 뉴스 한 줄에 수백억 원의 시가총액이 오르내린다. 투자자들은 그 정치인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누구와 동문인지, 과거 어떤 기업에 근무했는지를 추적하며 종목을 사고파는 시대다. 이 모든 비정상적인 움직임의 배후에는 한국 증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정치 테마주라는 이름의 투기적 흐름이 있다.

지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탄핵심판 선고 뉴스를 시청하는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자 7일 폭락장에도 정치테마주는 급등했다.


4월 7일, 국내 증시는 미국발 충격으로 인해 ‘블랙 먼데이’라 불릴 만큼 급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하루 만에 5.57%, 코스닥 지수는 5.25% 하락했다. 투자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대부분의 종목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날도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은 무려 17개에 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가운데 13개가 정치 테마주였다는 점이다. 경제 상황이 아무리 악화되어도 정치인의 이름 하나면 주가는 치솟을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는, 한국 자본시장이 처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태양금속의 사례는 이 비정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 회사는 회장이 특정 대선후보와 같은 ‘청주 한씨’ 성씨라는 이유만으로 정치 테마주로 편입됐고, 별다른 사업 호재도 없이 주가가 급등했다. 오텍은 특정 정치인이 과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저상버스를 많이 도입하자”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14년 전 한 정치인의 발언이 특정 기업의 주가를 26% 넘게 끌어올릴 수 있다는 현실이 과연 정상이기나 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테마주로 묶인 종목만 해도 이미 20개를 넘는다. 시장에서는 7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동신건설은 본사가 이 후보의 고향인 안동에 있다는 이유로, 오리엔트정공은 후보가 계열사인 오리엔트시계에서 근무한 적 있다는 이유로 정치 테마주로 분류됐다. 그 외에도 사외이사가 캠프에 참여했다거나, 대표가 동문이라는 등의 간접적인 인연만으로 정치 테마주로 엮이는 종목은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단기적인 해프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치 테마주는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병폐이며, 그 결과는 언제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로 귀결되어왔다. 특정 세력은 미리 저가에 종목을 매집하고, 정치적 이벤트에 맞춰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한다. 이후 뒤늦게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급락장 속에서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는다. 주가는 다시 본래 수준으로 돌아가지만, 그 사이 누군가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누군가는 큰 손실을 입고 시장을 떠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한국 증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정치 테마주가 시장을 잠식할수록 투자자들은 점점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정치인이 어느 지역을 방문했는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누구와 사진을 찍었는지가 기업 분석보다 더 중요해지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바탕으로 한 투자문화는 설 자리를 잃는다. 더 나아가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정치 변수에 과도하게 노출된 시장을 회피하게 되고,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글로벌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정치 테마주의 기형적인 번성은 단지 개인 투자자의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특정 종목을 ‘대선 관련주’로 포장하고, 커뮤니티에서는 관련 루머가 빠르게 유포된다. 기업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치적 연관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금융당국은 형식적인 경고와 모니터링 수준에 그칠 뿐, 실제로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의 광풍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후보가 확정되고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가 시작되면, 또다시 수많은 종목이 정치적 연관성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것이며, 주가는 실체 없는 기대감 속에 널뛰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 과정을 방치한다면, 시장은 정치에 종속된 투기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정치 테마주에 대한 정밀 분석과 시세조종 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마련해야 하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은 특정 정치인과의 무관함을 명확히 공시하고, 허위 루머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투자심리를 자극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정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자들 스스로가 정치적 환상에 기대어 손쉬운 수익을 추구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가 주가를 결정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본질로 평가받지 못한다. 이러한 시장이 지속될수록, 결국 무너지는 것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신뢰다. 정치 테마주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을 병들게 하는 만성 질환이다. 지금 이 질환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선거, 또 그 다음 선거에서도 같은 혼란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 투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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