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기 내린 대통령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지는 이른바 '알 박기' 인사 논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공공기관과 위원회, 재단 등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무더기로 임명되거나 임명이 추진되는 현상은, 단순한 정권 말기 인사 관행을 넘어 헌정 위기 상황에서조차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로 읽히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할 공공 영역이, 특정 정권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거세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4월 2일 한국광해광업공단 신임 사장에 임명된 황영식 전 조선일보 주필이다. 황 신임 사장은 자원·에너지 관련 전문성이 전무한 인물이다. 그의 주요 경력은 언론사 논설위원과 대변인직으로, 산업정책이나 광물자원 분야에서 활동한 이력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단장 임명 이후 “자원과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명했다. 공공기관 수장의 자격 기준이 단순한 ‘관심’의 유무로 치환된 셈이다. 이 같은 인사는 결과적으로 해당 기관의 전문성과 운영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며, 공기업이 정치권 인사의 ‘자리 나눠먹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두 달간, 문화·체육·여성·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공공기관에 윤석열 정부 및 캠프 출신 인사들이 연이어 선임됐다. 이들 중 다수는 낙선하거나 정계에서 밀려난 정치인 출신으로, 특정 정권과의 연계성이 강한 인물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이를 두고 “정치실업자 재활용 시즌2”라고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의 핵심 인사들이 정권의 말미, 그것도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계속해서 요직에 기용되고 있다는 점은, 정권 이양에 따른 책임정치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진=한국광해공업공단, 한국마사회, JDC 홈페이지 캡처


논란은 더 깊어지고 있다.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이완규 전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 이 지명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에도, 그의 측근 인사를 헌정기관 요직에 앉히는 시도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이 후보자는 검찰 출신으로,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결고리가 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탄핵 이후의 권한대행 체제에서 이러한 인사가 강행되는 것은 사실상 헌법이 부여한 ‘현상 유지’ 원칙을 위배한 행위에 가깝다. 야당은 이를 ‘한덕수의 사사오입 인사’라고 비판하며, 위헌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관리하는 대통령기록관장 자리를 두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자리는 법에 따라 임기가 보장되는 독립적 지위이지만, 윤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이 자리에 앉히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기록물의 관리권을 쥐고 향후 진상규명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증거 인멸용 알박기’라는 지적까지 낳고 있다. 한 전직 기록관 관계자는 “대통령실 내부 정보를 잘 아는 인사가 기록관장이 되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숨길지도 다 안다. 그게 무섭다”고 털어놨다.

국민을 위한 조직(공공기관)이 아닌, 정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

정권 말기의 이 같은 인사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말기 관행을 넘어, 헌정 질서가 정지된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비상식적 행위로 평가받는다. 특히 대부분의 임명이 3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라는 점에서, 다음 정부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헌정 질서가 회복되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 ‘인사 폭주’는 민주적 정권교체의 맥을 끊고, 특정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장기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인사 행태가 공공기관의 고유한 역할과 책무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은 각기 명확한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성과 공공성을 겸비한 기관장이 요구된다. 기관장은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해당 조직의 철학과 정책 방향을 주도하고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중추적 인물이다. 그러나 정치적 필요와 정권의 이해에 따라 인사가 이뤄질 경우, 그 기관이 수행해야 할 본래 기능은 뒷전으로 밀리고,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춘 행정이 자리잡게 된다. 결국 공공기관은 국민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공성의 파괴로 이어진다.

정치권에서는 제도적 대응을 논의 중이다.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연동시키는 방안이나, 권한대행 체제에서의 인사권 제한을 명문화하는 개헌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제도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치권의 책임감이다. 권력은 유한하고, 권한은 공공을 위한 것이지 정파적 이해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탄핵은 헌법이 국민의 뜻에 따라 작동한다는 최소한의 경고였지만, 그 뒤에도 반복되는 정치적 욕심은 여전히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국가의 방향이 재설정되는 지금, 공공의 영역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떠나는 권력은 흔적을 남기려 해선 안 되며, 남은 권력은 자제와 절제 속에서 새 정권을 위한 공간을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권력을 쥐느냐’보다 ‘어떻게 놓느냐’에서 진정성이 드러난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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